[창간 8주년 기념 세미나]만두식품과 국민건강
[창간 8주년 기념 세미나]만두식품과 국민건강
  • 식품음료신문
  • 승인 2004.09.1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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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류 중에 으뜸…귀한 손님 대접하는 음식여러 고문서에 기록 주식이자 특별 음식

[만두세미나 특집①-만두의 역사적 고찰 : 신민자 교수(경희대 호텔관광대학 조리학과)]

■ 만두의 유래와 역사 

△신민자 교수

면 요리는 생일, 혼례, 빈례용 음식이었다. 면은 일찍부터 상품화한 식품이지만 만두는 면보다 더욱 품귀한 음식이다. ´임원십육지´ ´정조지´에는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음식이고 면류 중에 으뜸이라고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만두는 떡국이나 국수와 마찬가지로 간단한 주식이면서 특별 음식의 하나이다. 조선 시대에는 가정에서 정월이나 그 밖의 빈례에서 만두를 숭상하였는데 만두는 중국의 진대(晋代, 3세기 후반) 속석(束晳)의 병부(餠賦)에 만두(曼頭)란 이름이 비로소 나타나는데 “만두는 무후(武侯) 제갈공명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曼頭란 말은 이것이 식품이기에 饅頭로 표기하게 되었는데 송대(宋代)의 사물기원(事物紀原)에 의하면 “삼국시대 촉(蜀)의 제갈공명이 맹획(孟獲)을 정복하고 돌아오는 길에 노수(濾水)의 풍랑이 심하여 건널수 없으니 水神을 위로하기 위하여 만지(蠻地)의 풍속에 따라 人頭를 제단에 바칠 것을 권하니 공명은 개선도상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죽인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노릇이라 하고 양과 돼지의 고기를 밀가루 반죽에 싸서 人頭처럼 만들어 이를 대신 바쳤는데 만두란 이름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또 명대(明代)의 망수유고(亡修類稿)에는 “본디 蠻人의 목을 본 딴 것이기에 이것을 蠻頭라 하였으나 후에 蠻과 饅의 音이 같아서 饅頭가 되었다.” 고 하였다.

거가필용(居家必用)에는 만두를 “밀가루를 발효시켜 고기나 채소를 소로 넣고 시루에 둥글게 쪄낸 것이라”고 하여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생각하는 만두와 다르다. 우리의 ´음식디미방´이나 ´주방문´에 밀가루 반죽을 발효시켜 고기나 채소를 소로 넣고 쪄낸 상화(霜花)와 비슷하다.

이 만두는 상화란 이름으로 고려 시대에 이 땅에 들어왔음을 고려가요인 쌍화점(雙花店)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육전조례´에는 “상화는 그 모양과 성질이 중국인의 기호에 맞는 관계로 중국 사신이 오면 그들을 대접하 는데 썼다.”고 하였는데 송대의 ´연익화모록´에 의하면 “인종의 탄일에 신하에게 包子(paotzu)를 내렸다.

포자의 별명은 만두로서 발효시킨 것으로 소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쪄서 만드는데 이것을 만두라 한다.”고 하여 중국의 만두가 우리의 상화이며 이것을 포자라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밀가루나 전분의 반죽으로 얇은 껍질을 만들어 육류, 채소류 등의 소를 싼 것을 교자(餃子) 소마(燒賣, shau may)라 하고 밀가루로 비교적 두꺼운 껍질을 만들어 속에 여러 가지 소를 싼 것을 包子, 속에 소를 넣지 않는 것을 만두(man tour)라 각각 부르기도 한다.

이같이 우리 나라의 만두는 중국으로부터 배운 음식이기는 하나 그 이름에 있어 다르게 쓰이고 있다. 즉 우리의 만두는 중국의 餃子(파오즈)에 가까우며 중국의 만두(만토우)는 밀가루에 이스트를 넣고 반죽하여 부풀려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 찐 것으로 찐빵에 가까운 것이다.
이스트 반죽에 소를 넣으면 包子(빠오즈)라 하는데 이것을 우리 나라에서는 고기 소 넣은 것을 왕만두라 하고 팥소 넣은 것을 찐빵이라 한다.

일본의 옹주부지(雍州府志)에 의하면 1341년 (고려 충혜왕 시대)에 임정인이란 중국 사람이 만두를 처음 일본에 전했다고 한다. 일본 만두의 소는 육류를 쓰지 않았고 설탕이나 채소를 사용하였다. 또 해유록(海游錄·1719)에 의하면 “일본에 만두란 것이 있어서 우리 나라의 상화병과 같은데 겉은 희고 안은 검고 맛은 달다”고 하였다.

만두는 우리 나라와 일본에 비슷한 시기에 전해진 것이다. 다만 우리 나라에서만 만두가 무슨 이유인지 상화란 이름으로 불린 것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소를 넣고 찐 것을 흔히 만두라고 하는데 이것은 개화 이후 일본을 통하여 들어온 명칭이다.

■ 고 조리서의 만두
재료·모양별로 명칭 수십 가지
시대별로 새 제품 잇따라 등장

고 조리서에는 오늘날과 같이 밀가루 반죽에 소를 넣고 싸서 만드는 만두 이외에도 생선이나 육류를 얇게 저미거나 채소 잎을 넓게 펴서 그 속에 소를 넣은 만두 등 재료와 만드는 방법 등이 다른 여러 가지 만두가 수록되어 있다.

고 조리서에 기록된 만두를 살펴보면 사용된 재료, 조리 방법, 크기와 모양, 양념 등이 다양하여 만두의 종류를 구분하는 데 있어서 만두에 사용되는 재료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조리서에 따라 명칭이 다르기도 하고 같은 명칭이지만 다른 재료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만두를 종류별로 분류하여 보면 만두피 재료, 만든 모양, 만두를 삶는 장국에 등에 따라서 여러 가지가 있고 조리 방법에 따라 찐만두, 지진만두, 탕만두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만두피 재료에 따른 분류=밀만두, 메밀만두, 감자 막걸리 만두, 굴림만두, 감자만두, 어만두, 생치만두

◇소재료에 따른 분류=소만두, 재강만두(조만두), 꿩만두(생치만두)

◇모양에 따른 만두=보만두(대만두, 보찜만두), 도토리만두, 난만두

◇조리방법에 따른 만두= 편수, 규아상(미만두), 변씨만두, 동아만두, 두부만두, 준치만두, 파만두, 대합조개 만두

밀만두, 메밀만두, 어만두, 생치만두 등은 대부분의 문헌에 수록되어 있으며 굴이나 전복을 이용한 만두는 1800년대, 변시만두는 1815년 이후부터 있었고 준치만두는 1939년에 처음 소개되었다. 특정적인 만두로 지진만두, 감자만두, 보만두 1943년, 두부만두가 1952년, 규아상, 동아만두가 1957년에 기록되었다.

1854년에 기록된 건치만두, 제육만두, 전복만두, 준시만두, 호두만두는 명칭은 만두로 되어 있으나 일반 만두와는 조리 방법과 재료 면에서 차이가 있으며 안주나 육포의 일종인 포쌈으로 사용되었다.

■ 가루반죽을 만두피로 이용한 만두

◇ 만두피=재료로 메밀가루, 백면가루(고운 메밀가루), 녹말, 밀가루 등을 단독 또는 혼합하여 사용하였으며 그 외에 보리와 수수, 귀리, 옥수수, 감자 등도 쓰였지만 백면가루가 제일이라 하였다.

만두피에 사용한 가루의 종류뿐만 아니라 반죽 방법도 다양한데 메밀가루는 물로 반죽하면 점탄성이 생기지 않으므로 1670년대의 ´음식디미방´에서는 메밀가루 일부로 죽을 쑨 다음 나머지 메밀가루를 넣어 반죽하여 전분의 호화에 의한 점성을 이용하였고 1740년의 ´수문사설´에서는 냉수로 반죽하여 떡을 만들어 밀어서 이용하였다.

1800년대말 ´시의전서´에서는 익반죽하거나 생반죽 시에 연한 두부를 넣어 반죽하였고 1935년 이후에는 달걀을 넣었는데 부족 시 물을 보충하거나 갈분 또는 녹말로 미음을 쑤어 넣고 반죽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메밀가루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밀가루나 녹말가루를 혼합하여 사용하였으며 녹말로 만두피를 만들 때도 녹말풀을 반죽에 넣어 끈기를 보완하였다.

메밀가루를 사용하여 만두를 빚을 때에는 얇게 밀어서 만두피를 만들기 어려우므로 송편을 빚을 때와 같이 속을 파서 만두소를 넣어 빚었다.

밀가루만으로 만두피를 만드는 경우에는 대부분 냉수로 반죽하였으나 1952년 ´우리 나라 음식만드는 법´에서는 익반죽을 하기도 하였다.

예전에는 메밀가루를 주로 만두피에 이용하였으나 메밀가루가 밀가루보다 귀하게 되면서 밀가루 반죽의 만두피가 일반화되었다.

예외로 가루 반죽을 만두피로 이용하지 않고 만두소를 둥글게 빚어 녹말가루나 밀가루에 굴려서 만든 굴린 만두가 있는데 1952년 굴린만두는 소의 재료가 살코기, 두부, 표고, 석이, 배추 등으로 여러 가지 양념을 하여 달걀에 넣었다가 밀가루나 물을 번갈아 묻혀 장국에 삶았다.

◇만두소=육류로는 쇠고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였으나 생치(꿩고기)나 쇠고기 중 한 가지를 단독으로 또는 돼지고기와 닭을 섞어서 사용하기도 하였다. 육류는 잘게 썰어서 볶은 후 다졌고 채소는 다진 후 기름에 볶아서 사용하였는데 이는 저온 저장이 어려운 시기에 만두를 빚은 후 비교적 오래 저장할 수 있고 만두를 익힐 때 빨리 익힐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만두소의 재료 중 무는 삶아 으깨거나 무나물을 이용하였으며 1940년대 이후에는 사용하
지 않았다. 또한 여러 가지 버섯을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있는데 주로 표고, 송이, 석이 등이 쓰였으며 1800년대 말부터 배추김치, 숙주, 두부, 표고버섯 등이 주재료로 이용되기 시작하여 1900년대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사용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1800년대 말의 메밀만두에는 무, 미나리, 김치를 섞어서 사용하기도 하였다.

두부는 1800년대 말 메밀만두에 넣기 시작하여 그 후 대부분의 만두에서 사용되었으며 잣은 1670년의 ´음식디미방」에서부터 넣기 시작하였는데 가루 형태 또는 왼잣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달걀은 메밀가루 반죽 시 주로 사용하였는데 1935년의 밀만두에서는 만두소에 넣기도 하였다.

´음식디미방´의 만두는 무를 삶아 으깨고 생치나 쇠고기를 볶고 잣, 후추, 산초로 조미하여 만들었으며 소만두(素)는 고기 없이 표고, 오이 등 채소만을 썻으며 잣은 넉넉히 넣었다.

■ 만두의 모양 및 크기

만두 모양에 대한 기록은 1896년에는 녹말 반죽을 아주 얇게 하여 송편 빚듯이 하였고 1935년에는 궤불 모양으로 만들었으나 1939년에는 백면가루와 밀가루를 혼합하여 반죽을 얇게 펴서 한 쪽 귀를 남기고 빚은 경우도 있다.

크기는 음식디미방에는 개암 크기, 1935년 이후에는 밤톨 크기, 도토리 크기, 큰 한 입 또는 작은 두 입 정도의 크기로 빚었다.

■ 기타

◇편수=수교이, 수고아, 숙교, 숙교의 등 조리서에 따라 명칭이 다양하며 변씨가 만들었다 해서 변씨만두라고도 하였고 1800년대 말 ´시의전서´부터 편수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만두피는 메밀가루에 밀가루를 혼합하거나 밀가루만으로 반죽을 하였고 1854년 이후부터는 주로 밀가루만 사용하였다. 반죽은 대부분 찬 물로 하였고 반죽에 기름을 넣기도 하였으며 익반죽을 하기도 하였다. 만두소는 슈교이는 육류를 사용하지 않았고 그 후로는 주로 쇠고기를 사용하거나 닭고기 단독 또는 닭고기와 쇠고기를 섞어서 사용하였다

채소와 버섯류는 오이, 표고, 석이가 주로 사용되었고 1948년에는 애호박을 넣기도 하였다. 1800년대 말에는 느타리, 고추를 넣어 감잎을 깔고 쪘으며 1952년에는 양파와 당근을 넣기도 하였고 그 후에는 숙주를 넣기도 하였다. 1800년대 말에는 달걀지단을 채로 썰어 넣기도 하였고 두부를 넣기도 하였다.

만두 모양은 1670년대는 얇게 밀어서 동그랗게 오렸고 그 후 귀가 생기도록 썰어서 귀를 싸는 모양으로 하거나 빚은 후 가장자리를 도려내었다. 그 후로부터는 네 귀를 한 데 맞닿게 하여 네모진 모양 또는 둥근 보쌈 모양으로도 만들었다.

개성 편수는 반달 모양으로 빚은 다음 양끝을 마주 붙여서 아기의 모자와 같은 모양으로 빚는다. 크기는 개암, 대추알, 밤 크기로 반죽을 떼어서 밀은 후 빚었으며 1800년대 말에는 크기가 대체로 사방 한 치 또는 한 치 서푼이었다.

◇ 대만두(보만두, 보찜만두)=´도문대작´에서 대만두는 의주 사람이 중국인과 같이 잘한다고 하였으며 ´해동역사(권 19)´ 의 ‘조선 연의조’에는 “맨 끝에는 대만두 한 그릇이 나온다. 대만두 그릇에는 은제 뚜껑이 덮어 있고 대만두의 껍질을 자르면 그 속에 호두알 만하여 한입에 먹을 수 있는 소(小)만두가 가득 들어 있다”고 하여 일반 가정 보다는 상층 일부의 특별 연회에 쓰였던 것 같았다.

대만두는 작게 만든 만두 여러 개를 밀가루 반죽을 얇고 넓게 밀어 보자기처럼 만든 것에 싸서 부리를 접어 부친다. 보에 싼 만두를 찌거나 삶아 먹을 때 껍질을 벗기면 여러 개의 만두가 쏟아져 나온다.

작은 만두를 각색으로 물을 들여 소를 넣고 붕어나 조개 모양으로 만들어 얇게 밀은 밀가루 반죽에 싸서 찌거나 탕으로 끓여 큰 합에 국물과 함께 담는다. 젓가락으로 대만두의 껍질을 벗길 때 붕어가 튀어나와 마치 산 붕어같이 보이게도 하였다.

◇소마, 난만도, 감자만두, 동아만두, 규아상, 병시=1680년경의 소마는 밀가루 반죽으로 빚은 만두의 윗부분을 석류 모양으로 하였고(석류탕) 1856년의 난만도는 만두소 위에 달걀을 풀어 중탕한 후 족편같이 썰어 안주나 반찬으로 사용하였다.

1943년의 감자만두는 만두소로 붉은 팥, 감자, 멥쌀가루, 사탕을 으깨어 사용하여 오늘날 강원도 토속 음식인 감자떡과 유사하였다.

1957년의 동아만두는 동아 절인 것을 만두피로 하고 닭고기를 소로 하여 녹말을 묻혀서 쪘다. 또한 규아상은 일명 미만두라고도 하는데 오이, 표고, 쇠고기를 넣고 해삼 모양으로 빚어 담쟁이 잎을 깔고 쪘으며 병시는 동그랗게 밀은 밀가루 반죽에 소를 넣고 반만 접어서 주름을 내지 않고 반달 모양으로 빚은 것으로 규아상이나 병시는 궁중의 만두이었다.

이외에 ´임원십육지´의 ‘정조지’에는 염장한 배추로 소를 넣은 송채만두, 밀가루에 콩가루를 넣어 만든 박만두, 노란 꿩고기를 소로 한 황작만두, 술지게미를 이용한 조만두 등이 있다.

또한 건치만두, 제육만두, 전복만두, 준시만두, 호두만두 등은 1854년 ´음식법´에 수록되어 있는데 잣 또는 잣가루를 소로 하였고 명칭은 만두로 되어 있으나 조리 방법과 재료 사용면에 있어서 안주나 육포의 일종인 포쌈으로 사용된 듯 하며 모양이 소를 넣고 싸기 때문에 만두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사료된다.

■ 양념

주로 간장, 소금, 파, 마늘 ,생강, 참기름, 깨소금, 후추 등을 사용하였는데 이 중 마늘은 1800년대 말부터 가루 반죽을 만두피로 이용한 만두에 사용하였고 육류를 만두피로 이용한 만두에는 1939년, 생선을 만두피로 이용한 만두에는 1952년부터 주로 사용되었다.

1670년 음식디미방의 만두법에는 ‘마늘은 냄새가 나므로 생강만 못하다’고 되어 있고 1800년대까지는 대체로 생강을 주로 사용하였다.

또한 천초가루와 초피를 사용하였는데 1800년대 말 이후부터 고춧가루가 첨가되기도 하였으며 계피가루를 넣기도 하였다. 또한 설탕은 1939년 이후에 상용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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