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황 교수 활용한 농림부 전시행정
[기자수첩]황 교수 활용한 농림부 전시행정
  • 김병조 기자
  • 승인 2005.07.13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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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조 기자

“황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저 농림부 장관 박홍수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장관님이 바쁘신데 어떻게 이렇게 전화를 다 주시고, 감사합니다.”
“요즘 많이 바쁘시죠? 진작 연락을 한번 드려야 하는데 이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별 말씀을요. 제가 먼저 한번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송구스럽습니다.”
“천만에요. 그렇잖아도 제가 교수님을 한번 찾아뵙고 여러 가지 조언을 좀 구할까 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장관님 국정에 바쁘실 텐데 제가 찾아뵈어야죠.”
“그렇지 않습니다. 저보다는 교수님이 더 바쁘시고, 제가 필요해서 만나고 싶으니 당연히 제가 찾아뵈어야죠. 연구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내일 연구실로 잠깐 찾아뵐까 하는데 어떠신지요.”

박홍수 장관은 비서관 한 명 외에는 일체의 수행원 없이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연구실로 찾아가 그동안의 연구성과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농림부와 관련된 광우병과 조류독감 등 각종 인수공통 전염병 예방을 위해 정부가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지 진지하게 고견을 들었다.

농림부 공보관실은 장관이 집무실로 돌아오고 나서야 박 장관이 황 교수를 연구실로 찾아가 면담했다는 사실을 사진 한 장 없이 짤막하게 보도자료를 냈다.

이것은 현실이 아니고 가정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의 상황이었다.

농림부는 12일 “박홍수(朴弘綬) 농림부장관은 7.12일 서울대 황우석(黃禹錫)교수를 초빙하여 동물생명공학 부분의 위상을 크게 높인데 대해 치하하고, 앞으로 광우병 조류인플루엔자 등 인수공통전염병 방지를 위해 적극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는 내용의 장관 동정 보도자료를 냈다.

물론 황 교수와의 면담 이전에 배포했다. 그리고 면담 이후에 박 장관과 황 교수가 장관 집무실에서 악수하는 장면과 면담하는 장면의 사진 2장을 추가로 배포했다. 면담 시간에 황 교수가 어떤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코멘트도 없었다.

그야말로 전시행정의 표본이다.

국보급 과학자 내지는 세계적인 석학으로 국민적 추앙을 받는, 바쁜 황 교수를 불러 발표할 내용 하나 없이 사진 한 장 배포하는 그런 전시행정을 농림부는 자랑거리로 삼았다.

이에 앞서 지난 7일에는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알맹이 없는 행사에 역시 황우석 교수를 초청해놓고 대대적인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황 교수를 이용(?)해 눈살을 찌푸린 적이 있었다.

정치권이나 관료집단의 황 교수를 이용한 전시행정을 언제까지 국민들은 눈요기로 봐야 할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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