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국 소비자운동의 허와 실①-MSG의 불매운동
[기고]한국 소비자운동의 허와 실①-MSG의 불매운동
  • 식품음료신문
  • 승인 2009.07.06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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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반대 일본 업체 도운 꼴
국내 생산 공백 아지노모토 진출 채비
이철호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교수

소비자운동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또는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소비자운동도 지난 30여 년간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소비자의 목소리를 모아 좀더 합리적인 사회로 진입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한 많은 순기능과 기여가 있었지만 일부 집단의 잘못된 판단과 순수하지 못한 의도로 국민을 오도하거나 사회경제적인 부담을 가중시킨 오류도 적지 않다.



나는 식품학자로서 우리나라 소비자단체들의 활동에서 식품산업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사회적 부담을 야기한 몇 가지 사례를 지적함으로써 앞으로 우리나라 소비자운동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해보고자 한다.



1980년대 초 어느 소비자단체가 주최하는 MSG(모노소디움글루타메이트)의 유해성과 불매운동을 위한 세미나에 불청객으로 참석했다. 축산업을 일으켜 육류생산을 크게 늘릴 수 없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고기 맛을 내는 MSG를 조미료로 사용하지 않으면 엄청난 양의 육류를 수입해야 하고, 이는 국가 식량경제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이 집회를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세미나는 예상대로 외국의 소비자단체들이 발표한 극단의 실험조건에서 얻은 자료들을 제시하면서 MSG의 인체 유해성을 크게 부각시켰다. 나는 세미나의 끝 부분에서 발언권을 얻어 그들의 주장과 반대되는 반론을 폈다. 미국식품과학회(IFT)가 이와 관련한 수백편의 연구논문을 수집, 검토한 후 MSG의 무해함을 공식견해로 이미 1983년도에 발표한바 있고, 우리 식품학자들이 보기에도 MSG는 식품에 대량 들어있는 단백질의 구성요소인 아미노산 글루탐산과 동일한 물질인데, 이를 유해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했다.



그랬더니 그 소비자단체의 모 이사가 대뜸 “업계에서 돈을 받는 사람은 저렇게 말한다.”고 몰아붙였다. 이것은 명백한 명예훼손이며 부당한 인신공격이다. 그러나 나는 ‘제 거울에 비쳐보는 사람들이구나.’ 생각하고 참았다.



그들의 잘못된 시각은 수년 후 내가 일본 학회에 참석했을 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동경의 비싼 호텔 값 때문에 변두리의 쌈직한 비즈니스호텔에 머물면서 길에서 파는 우동으로 아침식사를 간단히 해결하며 학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MSG 생산회사의 동경지사장을 만났다.



그는 요즘 대단히 바쁘다고 했다. 한국에서 온 모 소비자단체 대표를 동경에서 비싸기로 소문난 호텔에 모시고 매일 관광시켜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부아가 치밀었다. 소위 소비자의 권익을 위해 봉사한다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게 됐기 때문이다. 이들을 부패시키고 있는 기업도 문제지만, 그런 부끄러운 일을 해야 하는 지사장이 불쌍해 보였다.



결국 소비자단체들의 MSG 불매운동은 크게 성공한 사례가 되었으며, 국민의 대부분이 MSG를 기피하도록 만들었다. MSG를 생산하던 두 대기업 중 하나는 회사 명칭을 바꾸고 국내 생산을 크게 축소했으며, 다른 한 회사는 아예 MSG 국내생산을 중단했다. 그런데 최근 MSG 생산의 원조인 일본 아지노모도 사가 국내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이미 TV를 통해 회사 광고를 하고 있다.



원래 MSG 불매운동은 동남아국가들에서 반일 감정과 맞물려 일본 상품을 배척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일본의 소비자단체들은 이 문제를 국내 이슈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한국에 불똥이 날아온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MSG 생산 기업들은 인도네시아 등지에 생산 공장을 세우고 세계시장에서 일본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고, 일본에서는 한국 기업들의 도전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한국 소비자단체들이 한국 기업을 무장 해제시키는 기막힌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일본 기업들이 이 호재를 놓칠 리 없다. 일본은 그동안 세계 MSG 관련 산업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고 조만간 일본에서 생산한 복합조미료로 한국시장을 석권할 채비가 되어 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과연 우리 소비자단체들은 누구를 위해 MSG 불매운동을 해왔는지 묻고 싶다.



어느 좌석에서 내 옆에서 이 말을 들은 한 소비자단체 지도자는 ‘그래도 나는 MSG가 들어간 식품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분이 먹고 있는 음식에 들어있는 글루타메이트의 양을 분석해주고 싶었다. 대충 잡아 하루에 5그램 이상의 글루타메이트를 먹고 있을 것이다. 콩, 고기, 우유 등 단배질 식품의 주성분이 글루타메이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 1그램 정도는 그분이 MSG가 들어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복합조미료를 포함한 가공식품에 첨가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문제는 이 첨가된 MSG와 식품 단백질에 들어있는 글루타메이트는 동일한 물질로서, 구별하여 분석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일부 국내 기업에서는 MSG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복합조미료를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가격이 기존 복합조미료의 10배가량 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유기농 제품의 수준을 넘어 귀족식품이나 명품의 반열에 속한다. 과연 이런 제품을 사먹을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식품과학의 관점에서 전혀 인정할 수 없는 MSG 유해론을 온 국민에게 교육하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 관련 기업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결국 일본 기업들에게 세계시장뿐만 아니라 국내 시장마저 내어주게 된 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관련 소비자단체들은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본지에 연재되고 있는 고려대 이철호 교수의 ‘한국소비자운동의 허와 실’ 기고문과 관련, 한국소비자연맹 정광모 회장이 ‘MSG의 불매운동’에 대해 “소비자단체 중에서도 MSG사용을 반대하는 단체는 유일하게 1곳뿐이며, 다른 단체는 전혀 동조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을 밝혀왔음을 독자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또한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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