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식품안전 리스크 커뮤니케이션과 신뢰
[특별기고]식품안전 리스크 커뮤니케이션과 신뢰
  • 식품음료신문
  • 승인 2009.07.09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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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사고 ‘언론 선정성+국민 불신’이 사건 키워
정확한 사실 전달보다 속보 경쟁 다반사
나서기 꺼리는 식품 전문가도 일부 책임

최근 우리나라에서 식품안전과 관련해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른 것은 2008년 5월에 시작되어 8월까지 계속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우려였던 것 같다. 많은 국민들이 동요했고 정권을 어지럽게 뒤흔들 정도의 파괴력을 가졌던 사회적 현안이었다.

 

사실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우려는 일시적인 ‘사회 문제’였을 뿐이지 우리가 통상 말하는 식품안전 이슈라고 말할만한 대상은 아니었다. 지난해에 큰 사회적 소용돌이를 일으켰던 멜라민 파동 역시 식품안전사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 사건의 발단은 식품안전사건이 아니었다.

멜라민 파동은 식품을 매개로 저지른 범죄사건으로서, 식품안전 측면에서 1차적인 방비 대상은 아니었는데, 그에 따르는 2차적인 방비를 적절히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우리나라 식약청과 일부 식품산업체는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에서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만큼 우리나라 언론의 역할과 언론에 바라는 희망사항을 짚어보고, 효율적인 식품안전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의견을 제안하고자 한다.

광우병 우려나 멜라민 파동 때도 그랬듯이 언론은 마치 특종거리를 건진 것처럼 신바람 난 듯 했다. 각종 언론사들은 앞 다퉈 특집을 제작했고, 우리나라는 온통 광우병과 멜라민 정보로 뒤덮였다.

이러한 식품안전 등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언론이 바르게 판단하고 중심을 잡아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식품안전사건이 발생하면 언론은 새로운 일거리가 생겨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도록 행동할 뿐 정확한 정보의 전달에는 의미를 두지 않는 듯했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불량만두소 사건 때에도 언론은 ‘쓰레기 만두’라며 혐오성 단어를 서슴없이 사용하며 선정적인 보도로 일관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언론이 정보제공을 통한 사회정화라는 바람직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했다기보다는 남들 다하는데 우리만 빠질 수 없지 않느냐는 생각으로 오히려 경쟁 매체보다 더 자극적이고 눈에 띄는 제목으로 구독률을 높이려 했던 것 같다. 나쁜 관행을 고치고, 건전하고 안전한 식품을 공급하자는 생각에서 문제를 다루었다면 ‘쓰레기 만두’와 같은 저질의 선정적인 제목이 생겨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식품산업체나 식품학자들은 언론이 식품과 관련한 정보를 전달할 때 정확하고 균형 잡힌 내용을 제공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뉴스를 전달할 때에는 타 언론사에 뒤지면 이미 뉴스로서의 가치가 상실되기 때문에 선두 경쟁을 하는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경우에는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정확하게 전달하기보다는 급한 대로 먼저 던져놓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때로는 부정확한 보도가 나갈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식품첨가물이나 GMO(유전자재조합유기체)같은 아이템은 시간을 다툴만한 급한 사안이 아니다.

일반 소비자들은 식품의 안전정보에 대해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독자나 시청자를 확보해야 하는 언론에게 식품안전이라는 아이템은 시청(구독)률을 올려주는 효자품목이다. 식품안전정보 전달과 관련해 보다 심각한 것은 TV 오락프로그램에서 오락성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또는 비의도적으로 왜곡시키는 것이다.

오락삼아 정보를 전달할 때는 선정성이 심해져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더 크며, 오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식품산업체는 억울하다고 호소하고, 소비자는 우리나라 식품의 안전성과 제조자의 신뢰성을 의심하며 우왕좌왕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언론이 다루는 아이템 중에는 촌각을 다투는 정보가 있는가 하면, 식품첨가물이나 GMO처럼 전혀 그렇지 않은 아이템이 있다.

식품처럼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아이템에 대해서는 여유를 가지고 종합적인 판단을 한 뒤에 유용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국민의 건강생활에 공헌할 수 있다. 그런데도 식품(안전)과 관련해 부정확하거나 잘못된 정보가 자주 눈에 띠는 것은 언론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지적(知的)수준으로 미루어보아 식품안전에 대한 이해가 모자라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프로그램 제작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오해를 받게 되는 것이다. 소비자의 눈을 더 끌기 위한 선정성도 있을 수 있고, 이를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도가 지나친 경우가 아주 많다.

언론에서 식품 안전문제를 다루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특히 식품첨가물의 경우는 일반인들에게는 개념이 없는 화학물질들로서 대부분이 낯선 이름이고 발음하기도 쉽지 않으며, ‘식품첨가물은 화학물질’이라는 말 한마디가 소비자를 공포로 몰아넣기에 충분하다.

프로그램 제작자나 일반인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지 천연식품에 들어있는 물질들도 모두 화학물질이고, 그 물질의 명칭을 열거해 놓으면 전문가들조차도 무슨 물질인지 모를 것들이 아주 많다. 우리가 마시는 물(H2O)은 수소(H)와 산소(O)원자로 구성된 화합물이며, 쌀도 탄소(C), 수소(H), 산소(O) 외에 적은 양의 질소(N), 그리고 칼슘(Ca)이나 철(Fe)과 같은 여러 가지 무기질이 들어있는 화학물질 덩어리이다.

이와 같이 물이나 쌀처럼 우리가 매일 먹는 화학물질 덩어리들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고 안전한 천연식품인데, ‘식품첨가물은 화학물질’이라는 말에 공포감을 갖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서 사족으로 보태었다.

식품 전문가들이 개인적으로나 단체입장에서 국민이나 정부를 상대로 식품안전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너무 많다. 우선 국민을 상대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면 언론매체를 활용해야 하는데, 영향력이 큰 주요 전국 일간지나 공중파 방송은 지극히 정상적인 식품 안전정보는 취급하지 않는다. 식품이 안전하다는 얘기는 기삿거리가 되지 않고 그 역(逆)만이 중요한 기삿거리가 된다.

즉, 지구 어느 한 구석에서라도 식품(첨가물)이나 GMO가 안전하지 않다는 발표가 있으면, 거의 모든 언론은 그 내용을 발표한 사람이나 발표내용의 신뢰성 등을 검증하지 않은 채 일단 기사화하고 본다. 안전의 반대인 경우에는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이 아주 쉽다.

이러한 언론의 행태에 대해서 언론종사자들의 설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경종을 울려 미리 대비하도록 함으로써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언론 본래의 의도라고 한다면 고마운 일이다.

신뢰 못 받는 정부 대신 시민단체가 득세
해당 업체 솔직한 사과로 조기 수습 바람직

식품의 비효율적인 리스크 커뮤니케이션과 잘못된 식품안전정보의 전파에 있어서 식품전문가들에게도 책임이 없지는 않다. 식품전문가들이 언론의 인터뷰에 적극 호응하지 않으니까 식품과 별로 관계가 없는 타(他) 직종의 전문가들이 식품의 안전성을 얘기하는 경우가 흔하다.

식품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진짜 전문가 대신에 때로는 언론의 접근이 용이한 만능전문가나 반(半)전문가들이 언론에 많이 활용된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경우 적절한 진짜 전문가를 추천하는 것은 미덕이다.

식품안전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의 궁극적인 주체는 정부라고 할 수 있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은 신뢰인데, 우리나라 정부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국민의 신뢰를 많이 얻지 못하고 있다. 나름대로 노력이야 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조사에 의하면 시민단체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많다.

아마도 시민단체들이 일반 국민을 위한 의견을 제시하고 정부를 견제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인데, 이러한 현상은 정부에 대한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풍선효과일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일반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는 단체들도 진실하지 않은 방법으로 활동을 하다보면 신뢰를 잃어 회복 방안을 강구해야하는 우리나라 정부의 전철을 밟을 소지가 있다. 시민단체들은 자신의 노선을 위해 활동하기보다는 시민의 이익을 위한 활동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시민운동가(또는 단체)의 위세에 눌려 주눅 들지 말고 자신감 있는 정책을 수립, 집행하기 바라며, 시민단체의 활동가들은 정당한 의견을 정당한 채널을 통해 전달하고 대화하며, 전문성과 신뢰도가 높은 개인이나 학술단체 등과 협력하여 치우치지 않은 식품안전 정보를 확산시켜주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나라 일반 국민들은 언론에 보도되는 식품(안전) 정보를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신문이나 TV에 식품에 대한 정보가 나오면,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그렇게 따르고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기도 한다. 언론에 나오는 식품(안전) 정보는 사실인 것도 있지만, 지극히 작은 일부분만 사실인 경우가 많으며, 전혀 근거가 없는 정보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식품에 관한 한 너무 급격한 유행에 편승하지 않을 것을 권고하고 싶다.

어떤 경위로 인해 우리나라 (식품)산업체가 소비자의 신뢰를 잃게 되었는지를 얘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식품제조회사가 식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시판되기 전에 개발자들이 먼저 수도 없이 먹어보고 자기라면 그 식품을 돈을 주고 사먹을 만한 것인지를 평가한다. 개발하는 사람 자신이 먹고 싶지 않은데 다른 소비자가 좋아할 리 없고, 안전하지 않은데 자기가 먹어볼 리 없다. 식품제조자들이 남에게 팔 음식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먹지 않을 성분이나 원료를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매우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식품을 사먹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될 테니 소화가 잘 될 리가 없고 따라서 건강할 수도 없을 것이며, 먹는 즐거움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이 불신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 불신이 식품안전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불신이 있다면 대체적으로 불신의 원인제공자가 있게 마련이지만, 때로는 아주 무의미할 정도로 작은 것이 언론의 전달과정을 거치면서 증폭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 때 식품산업체는 억울하다고 불평한다.

어떤 언론학자는 식품산업체가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기 전에 언론이 끼어들 빌미를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제품에 크고 작은 문제점이 사회에 노출되었을 때 무조건 발뺌하려고만 해도 안 될 것이다. 회사제품의 문제점에 대해 솔직히 고백하고 백배사죄함으로써 문제를 쉽게 해결했던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소비자의 신뢰 없이는 식품안전 리스크 커뮤니케이션도 없다.

[경규항 교수(세종대 식품공학과/한국식품과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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