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식품 가격정책, 이대로 좋은가?
[기고]식품 가격정책, 이대로 좋은가?
  • 식품음료신문
  • 승인 2013.08.19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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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 명예교수)

△이철호 이사장
변질된 저급 원료로 ‘맛가루’를 만들어 판매한 사람이 구속돼 소비자들이 또 한 번 놀라는 사건이 일어났다. 유통기한이 지나도 한참 지나 버려야 하는 육재료를 곰탕집에 대량으로 공급해온 업자가 구속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소비자들의 경악과 식품에 대한 불안감은 한계에 달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불량식품을 반드시 척결해야 할 4대악의 하나로 규정하고 노력하고 있으나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왜 그럴까?

무리한 가격 억제 발전 저해

식품산업에 관여하는 사람들에게는 최근 일어나는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부정식품 사건들의 원인이 감지되고 있다. 혹자는 ‘올 것이 왔다’라고 자조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나는 식품공학과 교수로 30년을 봉직했던 사람이라 주변에 중소 식품기업을 경영하는 졸업생들을 많이 본다. 그들은 꽤 탄탄한 기술력으로 식품 중간소재를 생산해서 대기업에 납품하는 사업을 주로 하고 있다. 그들로부터 최근 자주 듣는 말이 있다. ‘00기업에 납품하던 저희 제품을 포기했습니다. 점점 심하게 후려치는 납품가격을 맞출 수 없었어요. 그런데 그 가격으로 납품하는 경쟁회사들이 있어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아요. 그 가격으로는 정상적인 제품을 만들 수 없어요.’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이 전국주부교실중앙회, 한국인정원과 공동으로 2011년 8월에 ‘식품안전과 식품가격 정책토론회’를 개최한바 있다. 2008년 세계 곡물파동 이후 MB물가에 묶여 고통 받는 식품산업의 현실을 알리고 식품안전을 보장하는 합리적인 가격정책을 도출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 세미나에서 국산 식품가격을 세계 식품가격 변동 추세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잉여농산물의 시대가 지나가고 식량 메이저들이 가격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 FAO식품가격지수가 200 이상을 계속 유지하는 상황에서 식품가격을 무리하게 억누르는 것은 미래에 대해 책임 있는 행동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장바구니 물가에 지나치게 민감해 하는 정부나 정치인들의 구시대적 인식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식품가격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통신비나 교육비, 주거비에 비해 훨씬 낮아졌다. 서민 물가를 잡는다고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수입해서 가격을 폭락시켜 농민을 울리는 일을 당연한 것처럼 반복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득을 보는 계층은 저소득층만이 아니라 농민보다 훨씬 형편이 나은 중산층과 고소득자들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정의에 위배되는 식품 가격정책이다. 저소득층에게는 정부 차원의 직접적인 식량지원을 하고 식품가격은 세계 추세에 맞게 적정선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최근 우유 값을 10% 정도 올리는 문제를 가지고 정부와 시민단체, 그리고 유통업체까지 가세하여 압박을 가하고 있다. 2008년 이후 사료곡물 수입가격이 2~3배 올랐고 앞으로 더 오를 기세이다. 우유 값 10% 인상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언젠가는 더 큰 폭으로 인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리하게 가격을 억누르면 안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식품의 안전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단체들이 우유 값 10% 인상을 반대하는 불매운동을 하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납품가 후려치기 안전성 위협

중국에서 수입하는 식품에 불량식품이 많다고 하는 한국인들에게 중국인들이 하는 말이 있다. 가장 싼 것을 찾아 수입해가면서 불량식품이라고 탓한다는 것이다. 일본이나 대만은 좋은 제품을 제값을 주고 사가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싸구려만 찾도록 만드는 식품가격 정책은 하루속히 재고되어야 한다.

값비싼 수입식품은 날개 돋힌 듯 팔리는데 국산 고급 식품에는 거부감을 갖는 사회에서 식품산업은 발전할 수 없으며 소비자들도 제대로 대접받을 수 없게 된다.

[외부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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