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트륨 저감화’ 정책 재조정 필요”
“‘나트륨 저감화’ 정책 재조정 필요”
  • 이재현 기자
  • 승인 2014.09.29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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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2000mg 적합성 의문…우리 실정 맞는 기준 설정 제기
식량안보연구재단 세미나

고혈압, 비만 등 만성질환의 원인인 나트륨 섭취를 줄이기 위한 정부, 업계, 학계 등의 노력 전개로 우리 국민 나트륨 섭취량은 2010년을 기점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물론 아직까지 우리 국민의 나트륨 섭취량은 WHO 권고량인 2000mg의 2.3배에 달하고 있어 나트륨 줄이기 운동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트륨 섭취 권장량이 나라마다 다르고 특히 전통발효식품 섭취 빈도가 높은 우리 음식문화를 고려했을 때 WHO의 나트륨 섭취 권고량 성인 1일 2g에 대한 적합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나트륨의 과다섭취가 고혈압의 발병 원인이라는 증거는 있으나 심혈관계 질환과 사망률의 증가와는 직접적인 관계를 찾기 어렵다는 주장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24일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이사장 이철호) 주최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나트륨줄이기운동의 성과와 발전방향’ 세미나에선 WHO 나트륨 섭취 권고량에 맞춰 건강한 삶을 영위하자는 의견과 나트륨 섭취 권장량을 국내 실정에 맞도록 실현 가능한 목표치를 가지고 관련 산업이 자율적으로 폭넓게 참여하는 합리적인 나트륨 저감화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 관심을 모았다.

△채수완 교수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채수완 교수는 나트륨과 질병 관계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나트륨 섭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실시하고 있는 가운데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소금의 양을 줄이는데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논문을 보면 일일 나트륨 섭취량을 2g 이상으로 섭취할 경우 심혈관 질환의 사망률을 증가시킨다고 발표한 반면 2g 이하 섭취할 경우 역시 심혈관 질환 사망률이 증가한다고 보고돼 있어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전제한 뒤 “오히려 칼륨 섭취 부족에 따른 심장병 및 사망률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더욱 신빙성이 있다”는 주장을 펼쳐 주목을 끌었다.

채 교수는 “국산 천일염은 정제염이나 천연소금에 비해 칼륨이 최대 16배 높고,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로 섭취하는 발효식품은 천일염을 첨가해 만든다는 점에서 지나친 소금섭취 억제 정책은 오히려 칼륨 부족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건강유지를 위한 적정 나트륨 섭취량에 대한 제안은 임상 결과 등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며, WHO에서 권장한 일일 나트륨 섭취량 2g 이하는 국내 여건상 제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숙종 박사
식량안보연구재단 이숙종 박사 역시 WHO 나트륨 섭취 권고량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WHO의 나트륨 상한 섭취량 2300mg 이하 권고는 일반인의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점을 들어 이는 WHO에서 풀지 못한 과제라고 화두를 던졌다. 게다가 영국의학회지에서 세계 187개국의 나트륨 섭취량을 조사한 결과 99.2% 이상이 권장량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러한 권장량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또 “전 세계 나트륨 섭취량에 대한 자료만 하더라도 대부분 유럽, 북아메리카 등 선진국 중심으로 편중돼 있다. 반면 아시아, 아프리카 등 자료는 절대 부족하다.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전 세계 국가의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지 재고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뿐만아니라 “전통발효식품이 섭취율이 높은 한국의 경우 어디까지 나트륨을 섭취해야 해롭지 않는가라는 상한 섭취량에 대한 연구가 더욱 필요하며, 나트륨 과잉섭취를 보이고 있는 30~40대에 대한 교육 및 홍보 노력이 더욱 시급하다”고 이 박사는 조언했다.

반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7년까지 나트륨 저감화 20%(3900mg)를 달성하기 위해 지자체와 나트륨 줄이기 협력체계를 구축, 나트륨 저감화 정책의 전국 확산을 기대하고 있다.

나트륨 과잉섭취 예방을 위해 단체급식의 경우 나트륨을 적게 쓰는 모범업소에 대해 ‘건강 삼삼 급식소’로 지정해 시범 운용하고, 외식업은 건강음식점 및 프랜차이즈 참여 기업을 대폭 늘린다. 또한 가공식품은 올해 즉석조리식품, 과자류, 절임식품, 조림식품, 드레싱류, 축산물 가공품 등 나트륨 저감화 가이드라인 개발 품목을 확대할 계획이다.

세계 187개국 중 99% 섭취 권장량 지키지 못해
소금 억제 칼륨 부족…국산 천일염은 문제가 안 돼
식약처 “건강한 식생활 환경 조성 위해 지속 추진”  

△권오상 과장
식품의약품안전처 권오상 영양안전정책과장은 “WHO 나트륨 섭취 권장량에 대한 문제 제기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지만 나트륨 저감화의 궁극적인 비전은 건강한 식생활 환경 조성에 있다. 이를 위해 소비습관, 식품의 특성 등을 모두 반영하며, 소비자·업계와 소통을 통한 의견을 반영해 정책을 수립하겠다”면서 “나트륨 저감화는 1~2년 안에 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 사안이 있는 만큼 장기적 안목을 갖고 꾸준히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패널토론에서도 WHO 나트륨 섭취 권고 기준에 대한 의견 대립이 팽팽했다. 보건산업진흥원 김초일 박사는 “WHO의 가이드라인은 특정 분야나 질병과 관련된 극히 소수의 논문에 근거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관련 문헌에 대한 엄격한 선별과 지극히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에 수십여 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결과로 도출된 것”이라고 전제한 뒤 “국내의 경우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9세 이상 우리 국민 중 나트륨 섭취량이 2000mg을 넘지 않는 사람은 4명 중 1명꼴로 WHO 권고 기준이 전혀 실현 불가능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국민의 보다 건강한 삶과 건강 수명 연장을 위해 노력해볼 가치가 충분함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소비자· 업계·학계 전문가 토론에서 WHO 나트륨 섭취량 권고기준을 놓고 국내 여건을 반영한 재설정 주장과 건강한 삶 영위를 위해 맞춰가야 한다는 이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소비자원 정윤희 선임연구위원 역시 “WHO 나트륨 섭취 권고 기준은 국가별 특성을 모두 감안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합산해 가장 합당한 근거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우리 청소년들은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져 채소 및 전통식품은 거의 먹지 않아 결국 비만 등 성인병을 유발하고 있으므로 입맛을 싱겁게 하려는 노력은 국민 건강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소비자가 나트륨 함유량에 따라 식품을 선택할 수 있는 표시 제도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WHO 나트륨 기준 싸고 의견 대립 팽팽
4명 중 1명 2000mg 이하…저감화 지속돼야

소비생활연구원 김연숙 이사는 “나트륨 저감화 정책을 빠른 시간 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식습관, 식문화 등을 반영하고, 향후 소비자의 패러다임을 예측해 점진적인 발전을 위한 중·장기적 로드맵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나트륨 섭취의 합리적인 기준을 평가하고 결정하는 데는 정부, 전문가, 소비자가 유기적인 관계 속에 지속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부산대 박건영 교수는 전통발효식품 김치가 나트륨 섭취 과다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개탄했다. 박 교수는 나트륨의 총량을 줄이는 것보다 칼륨의 섭취량을 늘려 나트륨·칼륨비를 낮추는 방법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 김치에 사용되는 소금은 칼륨이 높은 천일염이 대부분이어서 WHO 나트륨 섭취 권고 기준은 한국인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으므로 전통발효식품을 살리면서 과학적 연구를 통해 우리 국민에게 적합한 소금 섭취량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식품산업협회 김정년 부장은 “가공식품업계의 노력으로 현재 라면, 김치, 치즈 등 9개 식품군 165개 제품에서 평균 21%의 나트륨 함량 감소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나트륨 함량을 낮추는 전략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양적 저감화 추진과정에서 품질변화 또는 소비자 외면 등으로 출시 후 시장에서 도태된 상품도 많다”며 “가공식품의 나트륨 저감화 방향은 단순히 소금양을 줄이는 수준에서 관능 및 안전, 안정성, 기호성을 감안한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방법으로 전환돼야 지속적이고 실효성있는 저감화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치 등 천일염 사용…WHO 권고량 안 맞아
나트륨 줄이면 품질변화시켜 다수상품 피해 

목포대학교 함경식 교수는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소금의 영향을 받기때문에 소금은 인간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세계 어느 연구에서도 소금 5g 이하를 섭취했을 경우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지 찾아볼 수 없다”면서 “오히려 소금 제한이 인슐린 저항성을 일으키고, 소금섭취의 증가는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한 방어기능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함 교수는 “특히 대부분 연구에 사용된 소금은 미네랄이 없는 암염, 정제염 등인 반면 국내는 미네랄 함량이 높은 천일염을 대부분 섭취하고 있다. 소금의 양 만으로 기준을 정하는 것은 국내 여건상 맞지 않다.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좋은 소금 섭취는 오히려 권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시아스 최낙언 이사는 “소금 성분 한 가지에 대해 유해하다, 무해하다 판단하는 것은 오류를 범할 수 있어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하다. 흔히 소금이 건강에 해롭다고 적게 쓰는 것을 권하는데 간이 약하면 맛도 약해져 쉬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나트륨 저감화를 위한다면 식사량을 줄이는 방법이 보다 효과적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북대 신동화 명예교수는 “나트륨 줄이기 운동으로 식염 섭취량이 크게 감소했지만 모든 식품의 염을 줄이기 위한 획일적 강제는 옳지 않다. 규제기관이 기업체에게 저염 제품 개발을 위한 압력을 가해선 안된다”고 역설했다. 식약처는 그 대신 나트륨과 건강에 대한 폭넒은 연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소비자가 판단하도록 제공해야 하며, 이에 맞춰 기업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특히 전통발효식품의 저염화 강요는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하고, 발효식품에 사용되는 염은 미생물을 관리해 발효를 조절하는 기능이 있고, 장기간 발효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부패 혹은 식중독균의 증식을 저지하는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으며, 또한 김치 등 절임식품은 적절한 염 농도에서만 제 맛을 낼 수 있고 고유한 조직을 유지해 기호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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