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 물고 물리는 甲의 먹이사슬
식품업계 물고 물리는 甲의 먹이사슬
  • 이훈 기자
  • 승인 2014.12.15 0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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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체는 대리점에, 유통업체는 제조업체에 갑질
밀어내기 등 현상보다 구조 해결 법안 마련 시급

작년 남양유업의 영업사원과 대리점주의 통화 내용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갑(甲)의 횡포’라는 사회문제가 수면 위에 떠올랐다. 이후 민주당이 ‘을지로위원회’까지 만들며 사회에 만연한 갑-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팔을 걷고 나섰지만, 1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이러한 관행은 사라지지 않고 있어 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최근 ‘베지밀’로 유명한 두유업계 1위 업체 정식품이 매월 집중관리 품목을 선정하고 각 제품별 할당량을 설정한 후 대리점에 강매한 사실이 밝혀지며 식음료업계에 여전히 갑의 횡포가 존재함을 입증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정식품 부산영업소는 2011년부터 작년 6월까지 매월 말 집중관리 품목별 할당량을 정한 후 이를 팩스, 이메일, 구두 등으로 각 대리점에 전달하고, 대리점이 할당량 미만으로 주문하는 경우 주문내역을 영업사원이 임의로 변경하거나 주문여부와 관계없이 할당량만큼 강제 출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회사 측의 반품 불가 정책으로 대리점들은 밀어내기로 떠안은 물량을 반품하지 못하고 덤핑·폐기처분 등으로 상당한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건으로 정식품은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 2억35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간장업계 1위 샘표도 대리점과 특약점의 영업 구역을 임의로 지정한 거래처에만 제품을 판매토록 강요하고 요구 불응 시 계약 해지, 출고 정지 등은 물론 실적 이관, 장려금 미지급, 변상 등 불이익을 부여한 것이 들통 나면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7억6300만 원을 부과 받았다.

약주업계 1위 기업인 국순당은 도매점주들을 상대로 ‘불공정거래’를 하다 재판에 회부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국순당 임직원들이 도매점주들에게 매출 목표를 강제로 할당한 뒤 실적이 부진할 경우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퇴출시킨 혐의다. 이는 국내 약주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거래 구조를 악용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실제 약주시장은 영업사원이 실적 달성을 위해 대리점주에게 무리하게 물량을 내보내면 대리점주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관례다. 주목할 점은 물량 떠넘기기에도 대리점 판매실적이 저조할 경우엔 본사에서 3~6개월 단위로 단기계약이나 계약해지 위협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본사 방침에 비협조적인 대리점은 청결 등 사소한 의무위반을 이유로 계약해지 및 경영포기각서 등을 강요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식음료업계도 영원한 ‘갑’은 아니다. 대형 유통업체 앞에서는 을(乙)의 입장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음료업계에 따르면 대형 유통업체 요구에 따라 PB(Private Brand)제품을 생산해 납품할 시 전체 물량에 대한 결제가 아니라 판매된 제품만큼만 금액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면 10개의 제품을 납품했지만 8개만 팔리면 8개의 값만 받는 논리다.

이와 같은 유통구조에 대해 항공대학교 경영학과 이승창 교수는 “전속계약에 의한 도매유통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하며, “보이는 것만 해결하는 법안보다는 구조를 해결하는 법안이 시급이 마련돼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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