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무엇을 먹을 것인가②-어느 치과의사의 프로바이오틱스 관심(17)
[연재]무엇을 먹을 것인가②-어느 치과의사의 프로바이오틱스 관심(17)
  • 식품음료신문
  • 승인 2016.07.18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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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 탄수화물 흡수 빨라 과잉 영양 초래
장내 미생물엔 과소 영양…질병 발생 원인

△김혜성 원장<사과나무치과병원>
비만,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잇몸질환과 같은 만성질환이나 아토피 천식 같이 급증하고 있는 면역질환, 수많은 악성 암들의 원인은 무엇일까?

현대의학과 과학은 점점 더 마이크로한 방향으로 해답을 찾고 있다. 이러한 방향은 여러 질병을 사후에 컨트롤 하는데 분명 유용할 것이다.

필자는 이와 함께 질병이전의 건강관리를 위해 더 근본적인 문제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 문명과 함께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여러 질환들의 가장 큰 원인은 20만년 동안 진화해온 호모사피엔스의 DNA가 현대의 도시와 영양에 놀란 결과라는 것이다.

수렵이든 농경이든, 사피엔스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움직이고, 훨씬 덜 먹었다. 먹을거리도 정제된 음식이나 패스트푸드가 아닌, 들판과 숲과 냇가에서 찾은 덜 가공된 음식이었다.

하지만, 20세기 현대화된 도시와 식품산업은 사피엔스의 생활패턴과 먹을거리를 바꿔놓았다. 오늘날 너무 익숙해진 탄수화물이란 단어는 수화(水化)된 탄소(炭素)라는 뜻을 갖고 있다. 영어로 탄수화물을 의미하는 carbohydrate 란 말도 탄소(carbo)가 수화(hydrate) 되었다는 것이며, 물과 결합한, 물먹은 탄소라는 의미이다.

이 지구의 물질순환에서 가장 중요한 원소인 탄소가 순환되는 과정에서 잠시 만든 물질이 탄수화물이다. 즉, 대기 중에 있던 탄소(이산화탄소 형태로)를 식물이 자기 안의 물과 결합해서 만든 것이 탄수화물이다. 이때 햇빛을 이용하기 때문에 광합성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탄수화물은 음식의 특정 성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식물은 세포벽도, 줄기와 잎도, 꽃도 열매도 모두 탄수화물이다. 사피엔스는 그것들로 밥을 해먹었고 나물을 무쳐먹고, 과일로 먹어왔다.

그런데 현대의 식품산업은 이 과정을 바꿔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뽑고, 통밀에서 거친 탄수화물은 없애고 먹기 좋은 탄수화물만을 골라 정제한다. 현미에서 거친 껍질 탄수화물을 없애고 먹기 좋은 하얀 쌀 탄수화물만을 남긴다.

이렇게 정제된 탄수화물, 게다가 소화효소에 의해 금방 분해돼 흡수가 빠른 설탕은 사피엔스의 각 세포의 에너지원으로 쓰이지만 늘 과하게 될 여지가 많다. 게다가 사피엔스와 함께 진화해 오며 대장에 자신의 우주를 건설한 장내 미생물들에게는 먹을 것이 돌아가지 않는다. 정제 탄수화물들이 대장까지 도달하기 전에 사피엔스들에게 모두 흡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빵과 국수, 흰밥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장내에는 유익한 박테리아의 수가 훨씬 적고, 다양성도 떨어진다. 예컨대, 현대화된 정제 탄수화물은 사피엔스에게는 과잉 에너지를, 사피엔스와 함께 삶을 이어가고 있는 미생물들에게는 과소에너지를 주는 불균등한 상태가 된다.

이렇게 될 경우 변비에 시달리고, 피부가 가려우며, 당뇨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물론 고혈압, 잇몸병, 암 발생률이 높아진다. 20만 년 역사상 처음 맞이하는 에너지 불균형에 사피엔스의 DNA가 놀라게 됨으로써 많은 현대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 역시 현대의 '과학'적 마이크로한 설명일 수 있다. 인상적인 연구를 소개한다. 1984년 호주의 유명한 영향학자 오데어(Kerin O'Dea)는 고혈압 당뇨에 시달리는 호주 원주민들을 7주 동안 오지로 보내 사냥, 채집 등 원래의 라이프스타일대로 살게 했다.

호주의 많은 원주민들과 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은 대개 비만과 당뇨와 고혈압에 시달린다. 최근까지 초원을 달리며 사냥하고 물고기 잡아먹던 생활이 자동차를 타고 햄버거를 먹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관찰기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결과는 확실했다. 혈압이 크게 떨어졌고, 당뇨도 개선됐다. 그 이유는 마이크로한데 있지 않았다. 단순히 먹고 사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으로, 오데어 역시 저지방 식단에 많이 움직이는 생활습관이 체중감소로 이어진 것이 확실한 요인이라고 밝힌다. (O'dea 1984)

이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20만 년된 DNA와 300년도 안된 현대 자본주의, 50년도 안된 오늘날 식습관의 변화에서 오는 불일치를 표현하는 사소한 예일 뿐이다. 달달하고 부드러운 음식이 당장 혀를 즐겁게할 지는 몰라도 우리 신체와 DNA, 몸속의 또 다른 우주인 미생물과 미생물 DNA에는 좋지 않다는 것이다. 몸의 건강은 좋은 생활습관과 식이습관이 기본이라는 뻔한 상식을 확인시켜준 예이다.

이미 30년이나 지난 이같은 연구와 수시로 강조되는 전문가들의 권고가 왜 현대인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멋있는 세프, 유명 베이커리의 빵, 편의점의 아이스크림은 현대 문명의 산물일지라도, 사피엔스의 먹을거리는 그 뒤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James, P. A., et al. (2014). "2014 evidence-based guideline for the management of high blood pressure in adults: report from the panel members appointed to the Eighth Joint National Committee (JNC 8)." JAMA 311(5): 507-520.
대한고혈압학회 (2013). 2013 고혈합진료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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