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남아도는 농식품 수출 지원 자금 효율화 방안 시급
[논평]남아도는 농식품 수출 지원 자금 효율화 방안 시급
  • 김현옥 기자
  • 승인 2016.08.29 0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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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개 사 중 130곳 사용…예산 절반도 안 나가
금리 이점 적고 대출금 50% 수출의무 부담 큰 탓

△김현옥 편집국장
정부의 농식품 수출지원 자금이 남아도는데도 업체들이 좀처럼 갖다 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올해 대출 예산 4565억 원 중 8월 현재까지 1800억 원이 집행돼 2765억 원 정도가 잔고로 있다. 이 실적마저 연초 우대 금리 인하 덕분으로 작년 연간 실적(1900억)에 육박하지만, 대출기간을 4개월 남겨놓은 시점에서 예산의 절반도 채 사용하지 않은 부진성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세계경제 침체와 저금리 기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농식품 수출업체에 대한 자금 지원을 통해 수출경쟁력을 높이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막상 혜택을 받는 입장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1400개에 달하는 수출자금 지원 대상 업체 중 지난해 융자받은 기업은 130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나마 신선식품업체가 주를 이루고, 일반가공업체는 극히 드물다.

이에 따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돈 장사에 팔을 걷어붙였다. aT는 지난 2월 농식품부와 함께 농식품수출자금 사용업체들의 수출실적 등을 평가해 제공 중인 우대금리를 대폭 확대한데 이어 최근 변동금리 제도를 탑재해 금리 인하폭을 크게 낮췄다.

‘우수농식품구매지원자금’은 농식품 수출실적이 있거나 수출 계획이 있는 업체가 대출액의 50% 이상 수출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국내산 농산물 및 부자재 구입, 저장 가공 등에 소요되는 자금을 지원하는 돈으로, 업체당 200억 원(중견 및 상호출자제한기업은 150억원)으로 제한된다. 올해 1년 대출예산 4656억원 중 신선식품이 3000억원, 가공식품이 1656억원의 비중이다.

이 자금은 농식품 수출업체에 대한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선의의 제도인데도 불구하고 활용도가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aT, 올 초 우대금리 이어 변동금리 적용 인하폭 확대
수출 주도 대기업 지원금·가공식품 배정액 늘려야 

무엇보다 정책자금으로서의 금리메리트를 상실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2000년 농식품 수출 지원 금리는 5%로, 한국은행 기준금리와 같고 시중은행 기업평균 대출금리(8.23%)보다 훨씬 낮았다. 그러나 이후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계속 하향세를 보이면서 올해 6월 1.25%까지 낮아진 반면 농식품 수출 금리는 2004년부터 작년 3월까지 4~3.81%를 유지해 시중은행 기업평균 대출 금리를 웃도는 역전 현상까지 보였다.

이는 2006년부터 농식품 수출자금을 우대하지 않은데서 기인한다. ‘92년 1월 농식품수출자금 금리는 8%로 시중금리 10%보다 2%나 낮았으나 이후 점차 격차가 좁혀지면서 2006년 1월 4%로 같아지면서 계속 같은 비율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수출자금을 빌려 쓸 이유가 없었다.

자연히 수출자금 예산 집행률은 저조할 수밖에 없었고, 국회와 감사원은 이 같은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했다.

이에 따라 aT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분석해 개선안을 마련했고, 농식품부와 기재부 등에 건의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수출업체 이자를 경감함으로써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 승인을 받아냈다.

그 결과 올해 3월 수출실적과 증가율, 국산 농산물 사용 실적 평가 등을 근거로 우대금리를 기존 1.5~3%에서 0~3%로 개선했으며 6개월 만에 다시 변동금리제도를 새롭게 도입해 기존(고정금리) 농업경영체 2.5%, 일반가공식품업체 3%에서 각각 1.03%, 2.03%로 낮춰 이자를 경감시키게 됐다는 것이 aT의 설명이다.

그러나 예산집행실적이 저조한 이유는 또 있다. 정책자금을 사용한 업체의 경우 국내 농산물 수매량이 30%를 넘어야하고, 대출예산의 50%에 해당하는 물량을 반드시 수출해야하는 의무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패널티를 받아야하는 부담 때문에 선뜻 신청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중견 및 대기업의 경우 정부 자금을 지원받아 국산식품을 수출하는 성과를 올리고서도 국정감사 때 증인으로 출석하는 등 마치 잘못을 저지른 양 죄인 취급을 받은 사례가 있어 이제는 아무리 금리가 저렴해도 정부 자금은 아예 쳐다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국산 농식품의 수출은 신선도가 생명인 신선식품으로는 한계가 있다. 오랜 선적 통관과정으로 인해 선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냉장물류시스템을 적용해야하는 관계로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을 뿐더러 해외시장에서 유통 판매할 수 있는 시간이 짧은 것도 문제점을 지적된다.

이에 반해 국산농산물을 원료로 한 가공식품은 신선식품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가공식품의 수출을 더욱 지원하고 장려해야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대출자금 비중을 신선식품의 절반에도 못 치는 수준으로 책정된 것은 분명 잘못된 정책이다.

농식품부는 당초 식품진흥 정책을 새롭게 추진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스위스 네슬레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런데 사실상 네슬레의 자국산 농산물 원료 사용 비중은 높지 않다. 주변 국가의 값싼 농산물을 수입해 자체 기술로 가공함으로써 부가가치를 올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대표적인 기업이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네슬레를 모델로 하기보다는 그만큼 국제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식품업체를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을 터인데, 국산식품의 수출을 주도하고 있는 대기업에 대한 지원은 인색하게 하면서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을 키우겠다고 자신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돈 많은 대기업에 국민의 혈세를 퍼부을 필요가 없다고 무조건 반대하는 농민과 국회의원들의 잘못된 인식을 설득하는 것도 정부의 일이다. 국산 농식품의 사용량을 의무화하고, 일정 수준의 수출실적으로 달성하지 못하는 업체에 대한 강력한 패널티를 마련하고도 단지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지원을 제한하는 것은 결코 소신 있는 행정이라고 볼 수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남아도는 수출지원 자금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이 분명히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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