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식품’ 팬시형 간편식·오감 충족 경험 찾아 진화
‘미래 식품’ 팬시형 간편식·오감 충족 경험 찾아 진화
  • 황서영 기자
  • 승인 2017.09.11 0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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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절약하는 파우더형 랩노쉬·밀스 제품 성장세
[창간 21주년 특집Ⅰ-미래식품 트렌드]문정훈 서울대 교수
△문정훈 교수

최근 식품 소비 트렌드를 보면 그 변화가 놀랍다. 쌀 소비는 20년 만에 반토막이나 생산액 기준 우리나라 최대 규모 농산물 자리가 돈육으로 넘어 갔으며, 혼밥족이 폭발적으로 늘어 간편식(HMR)시장의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간편식 성장은 밥상 위에서 밑반찬을 줄이며 전통 한국식 밥상문화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또한 몇 년 전부터 유행인 쿡방의 영향으로 젊은 홈쿠킹족들이 등장해 마트에서는 슬로우 푸드의 판매는 줄어들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식재료 판매가 늘고 있다. 다가오고 있는 미래 우리는 무엇을 먹게 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더 간편하게
사무실 풍경을 보자. 점심시간 삼삼오오 모여 ‘오늘 뭐먹지?’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모습은 갈수록 사라진다. 대용식 시장이 점차 성장하며 최근 파우더 제형의 미래형 대용식 시장의 성장이 눈부시다.

파우더 제형의 대용식이 선식과의 차이점을 묻는다면 우선 ‘이름’이 다르다. 보다 눈에 띄는 이름과 포장에 담겨 판매된다. 랩노쉬와 같은 강렬하고 분명한 맛의 파우더 대용식과 밀스와 같은 좀 더 부드럽고 익숙한 곡물 맛에 가까운 파우더 대용식이 현재 시장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다. 이 시장은 더욱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젊은 직장인, 특히 여성 직장인들은 아침 식사대용 또는 점심 때 원하지도 않는 고칼로리 음식을 먹느니 혼자서 멋진 디자인 병속에 들어 있는 대용식을 간단하게 마시며 영양 밸런스를 맞추고 칼로리를 제한한다.

△다이어트 전문 업체 쥬비스다이어트에서 제조하는 '건강 현미 밥바' 제품.
그리고 남는 점심시간 동안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파우더 제형 간편식은 휴대하기 간편하고, 물을 넣어 셰이킹해 먹는 모습이 ‘남에게 팬시(fancy)해 보이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씹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이에 식품기업들은 최근 소비자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바(bar)형태로 갈 것인지, 칩 형태로 갈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더 극단의 편의성을 추구한 액상형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한창이다.

실제 미래형 대용식의 글로벌 마켓 리더인 실리콘 밸리의 ‘소일렌트(Soylent)’는 액상형으로 가닥을 잡았고, 국내 헬스케어 서비스 마켓 리더인 쥬비스는 소매판매용 바 형태 제품을 출시했다. 현미를 중심으로 한 12가지 다른 종류의 밥바를 내 놓아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체중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랩노쉬와 밀스도 다음 단계를 향해 고민하고 있다. 신규 진입하는 기업들도 끊임없이 늘어나 이 시장을 키우고 있다. 미래의 대용식 시장은 바쁜 직장인들의 아침식사와 점심식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 여기에 가성비 높은 편의점 도시락과도 경쟁해야 한다.

◇맛에서 경험으로
바쁜 현대인들의 저녁식사는 대부분 외식으로 소비된다. 우리나라 모든 산업을 통틀어 가장 치열한 경쟁지는 외식시장이다. 외식업계는 어떤 음식과 서비스로 2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의 직장인들, 특히 여성 직장인들을 끌어 모을 수 있을지가 고민이다. 여기서 우리가 걷게 될 분명한 길이 하나 보인다.

인간에게 음식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생명유지를 위한 영양 섭취라고 하는 기능적 역할과 먹는 즐거움에 관한 쾌락적 역할이다.

해가 머리 위에 있는 동안 음식의 기능적 역할을 충분히 누렸다면 해가 지고 나면 이제 쾌락적 역할을 즐길 차례가 된다. 맛있어야 하고 경험 자체가 즐거워야 한다. 즉 미래 외식 방향은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훌륭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여러 경험들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음식의 맛’인 것이다.

최근 유행하는 치킨버거는 ‘훌륭한 맛’과는 거리가 있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의 턱을 빠지게 만들 것인가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듯하다. 빵 속의 두꺼운 패티를 보며, 한입 베어 물기 위해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리면서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는 맛이 아니라 경험이다.

대만식 ‘눈꽃’ 빙수에서 시작한 빙수도 더 이상 맛의 경쟁이 아닌 텍스쳐의 경쟁이자 시각적으로 무엇으로 어떻게 쌓아 올리느냐에 초점을 맞춘 고객 경험 경쟁으로 흐르고 있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들과 그를 쫓는 레스토랑들도 맛은 기본이며, 어떠한 경험을 쌓아 올려 고객들에게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다. 분자 요리 기법은 더욱 대중화 되고, 알긴산나트륨을 활용한 캐비어 기법, 말토덱스트린을 활용한 파우더 기법들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기법이 아니다.

셰프 역할도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고 조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고객을 위한 새로운 경험을 창조하고 연출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확장돼 가고 있다. 이 디렉터는 홀에서 조명과 조도를 적용해 SNS용 사진이 어떻게 예쁘게 나오는 지도 고민해야 한다.

이는 외식업만의 고민은 아니다. 기성 제품을 대규모 설비로 대량 생산하는 식품기업에서도 이러한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다. 오리온의 ‘꼬북칩’을 시작으로 국내 제과업체는 과자를 씹을 때 소리를 디자인하기 위한, 즉 맛이 아닌 경험에 R&D 비용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시리얼 업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맛있는 소리’를 내기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이제 음식은 맛과 향뿐만 아니라 오감의 경험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푸드테크 발전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맛에 소리 등 새로운 경험 접목…‘푸드 테크’로 발전
커피 맥주 취향·가치별 다양성 추구…프리미엄 부상
특산물·동물 복지 등에 관심…지속 가능성이 과제   
 

◇다양성을 즐기다
현대인들의 주말 저녁에는 연인 및 친구들과 어울리는 작은 홈파티가 열리거나 인근의 작은 식당에 간다. 장소가 어디든 다양한 종류의 크래프트 맥주를 맛보고, 드라이에이징한 스테이크와 웻에이징한 스테이크를 비교해 먹는다.

몇 년 전부터 20대 중반부터 30대 후반 여성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커피에서 내 입맛 찾기’는 ‘다양함이 즐거운 것’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언제부터 커피의 품종을 따져 가며 마셨단 말인가?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커피믹스 한 봉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는데, 이제는 아메리카노, 라떼 등을 마실 때 브랜드를 따지고 있다.

커피에서 시작된 ‘다양성’에 대한 추구는 맥주로 넘어갔다. 현재 한국의 맥주시장은 기존 대형 주류 제조사의 맥주와 다양한 수입 맥주 그리고 크래프트 맥주와의 치열한 삼파전이 벌어지고 있다. 가정용 맥주 시장에서 대형 주류 제조 3사의 맥주가 아닌 다양한 맥주의 판매 비중이 50%에 달하고, 다양한 맥주를 비교해 마실 수 있는 외식업체들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분자요리 전문 레스토랑 'Ticket'에서 제조·판매하는 올리브 오일 캐비어.
앞으로 이 같은 다양성 추구에 대한 즐거움은 더욱 다양한 식품으로 퍼져 나갈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의 흑돼지와 스페인의 이베리코 돼지가 ‘돼지고기가 다 같은 돼지고기가 아니다’라는 충격은 우리 축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가능성이 크다. 합리적 가격의 일반적인 돼지고기를 원하는 층과 가치추구에 초점을 맞추는 층에게 다른 방식의 생산과 마케팅 접근이 요구된다.

하지만 최근 문제가 된 살충제 계란 파동은 이러한 시장 변화에 기름을 끼얹었다. 식품안전 문제를 겪은 소비자들은 이제 식품에 대한 관여도가 높아지며 가치 있는 농축산물에 기꺼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문화가 형성될 것이다.

단 식품마케터는 소비자들의 관여를 ‘안전’에서 ‘취향과 가치’라고 하는 다른 차원으로 한 단계 끌어 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높아진 소비자 관여도는 다양성을 즐기는 문화를 유도할 것이고 이를 통해 식품기업, 농산물 생산자와 유통업체는 프리미엄 가격을 끌어 낼 수 있다.

◇지속가능성의 세계로
다양함에 대한 즐거움을 만끽할수록 로컬 농산물에 대한 관심, 동물복지, 지역 특산물, 종의 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올라간다. 물론 미국과 달리 두부를 통한 식물성 단백질 섭취가 일반적인 한국 식문화에서 대체고기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임파서블 푸드사가 주도하고 있는 식물성 고기와 배양육, 곤충식품 시장이 미국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비교적 완만하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지역 특산 농산물을 바탕으로 다양한 지역 음식에 대한 관심과 동물복지에 기반한 농식품 및 외식 시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속가능한 농업 생산과 관련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겠지만 지불가능한 수준의 가격으로 제공 가능하느냐는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해당 시장의 성장에는 속도가 붙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산 현장에서는 다양한 ICT·BT융합기술이 적용되고, 생산성을 확보하며 동시에 지속가능한 농식품을 만들기 위한 많은 투자가 이뤄질 것이다.

미래식품은 극단의 간편함과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자신이 지향하고 있는 가치에 부합하는 식품이라면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게 된다. 이런 가치소비를 끌어 낼 수 있는 시장의 전제 조건은 결국 다양성이 존재하는 시장이다.

최근 발생한 식품안전 문제는 향후 소비자들의 관여도를 끌어 올릴 수 있는 좋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만 소비자들의 높은 관여도를 바탕으로 한 시장 다양성의 바탕에는 ‘지속가능성’이라고 하는 커다란 테마가 묵직하게 자리 잡고 서서히 떠오르게 된다.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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