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참기름 근절책 ‘향미유’까지 잡을라
가짜 참기름 근절책 ‘향미유’까지 잡을라
  • 이재현 기자
  • 승인 2017.09.25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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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주최 수요포럼서 식약처 제조 기준 개정안 논란

“하루아침에 기준 규격이 바뀌어 수십년 동안 운영하던 제조설비 사용을 못하는 경우가 식품산업은 비일비재합니다. 식약처의 이번 행정고시는 향미유 업체 입장에선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정부는 법 개정 시 업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진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태민 식품법률연구소장은 ‘가짜 참기름’ 근절을 목적으로 식약처가 고시한 ‘식용유지류 제조·가공 기준 및 규격’ 개정안을 두고 이같이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제조방법에 관계없이 참기름 또는 들기름에는 다른 식용 유지를 혼합할 수 없고, 향미유 제조 시에도 참깨 또는 참깨유지 사용이 전면 차단된다. 식약처는 10월 11일까지 관련 업계 의견을 수렴한 뒤 내년 1월 1일부터 개정안을 시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참깨로부터 채취한 식용유지만 참기름으로 인정하겠다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이지만 기존 식용유지에 참깨 유지 등을 혼합해 맛기름을 제조하던 향미유 업체는 사실상 제조가 불가능해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전국 향미유 업체는 150여 곳으로, 이중 절반 이상이 맛기름 제조업체여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도산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비자단체에서도 안전에 문제가 없다면  참기름 시장과는 별개로 향미유 시장의 다양화를 위해 진흥·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어서 소비자 보호를 전면에 내세운 식약처는 명분을 잃게 됐다.

△김태민 변호사
본지 주최로 20일 한국식품산업협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6회 글로벌 식품환경 조성을 위한 수요포럼’에서 김태민 소장은 “국내 참깨는 수확량이 적어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물량이 부족하고 원료가 비싸 식품접객업소에선 참기름과 식용유지를 혼합 사용해 왔다”며 “식약처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지난 2007년 식품공전에 제조가공시설을 갖춘 영업자가 생산하도록 근거 규정을 마련했으나 이제 와서 ‘가짜 참기름’을 근절한다며 애꿎은 향미유 업체를 존폐 위기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향미유 시장은 지난 20여 년간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제조 시설을 갖춘 업체가 지속적으로 시장을 키워 현재 약 1000억 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김 소장은 “그동안 참기름은 압착, 초임계추출(이산화탄소) 방식만 허용하던 것에서 물용출법 등 다양한 제조법이 개발될 수 있는 환경 마련은 환영할 만하지만 향미유에 참깨 유지 등의 사용이 제한된다면 본래 맛과 향을 낼 수 없어 가격이 저렴해도 시장에서 외면을 받아 폐업하는 업체가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김 소장은 ‘가짜 참기름’과 향미유 문제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식약처의 접근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는 “‘가짜 참기름’은 참기름이 아닌 것을 불법으로 제조한 것이지만 향미유는 식품공전에 근거해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제조하는 합법적인 제품”이라며 “특히 향미유는 대부분 B2B로 거래돼 소비자들은 시중에서 구입이 어려운데도 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법 개정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오히려 ‘가짜 참기름’ 근절에 대한 식약처 진정성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사실 국내 ‘가짜 참기름’ 적발 건수는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다. 보건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참기름과 들기름의 진위여부를 검사한 결과 부적합은 2012년 18건에서 2013년 5건, 2014년 1건, 2015년 1건에 불과하다.

또한 식약처는 지난 2015년 자체적으로 참기름 지방산 함량에 의한 판별, 자외선 흡수패턴에 의한 판별, HPLC분석에 의한 판별법을 개발해 착유 시 생성되는 리놀렌산 함량이 곡류에 따라 다른 만큼 혼합유는 리놀렌산 함량 분석으로도 판별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게다가 ‘가짜 참기름’ 적발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기준이 높아 현 테두리 내에서도 근절은 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무엇보다 식약처 규제영향분석서에 의하면 ‘가짜 참(들)기름’의 유통 근절을 목표로 한다면서 2020년까지 국내 향미유 생산량을 5% 이하로 감소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어 진정성 논란의 불을 지피우고 있다.

김 소장은 “(이러한 상황을 종합할 때)식약처의 이번 행정고시가 ‘가짜 참기름’ 유통 근절이 목적인지, 향미유 제조업체가 타깃인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김 소장은 이어 “이번 식용유지 개정안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최소한 공청회 등을 열어 관련 업계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며 “그동안 식품업계는 식약처의 잦은 기준 규격 개정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는 만큼 안전과 무관하다면 관련 업계, 전문가 그룹과의 충분한 논의 및 의견을 조율해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향미유에 참깨 등 사용 금지…맛·향 낼 수 없어
안전과 무관한 규정 인해 150여 업체 존폐 위기  

△최근 고시된 식용유지류 제조·가공 기준 및 규격 개정안은 안전과 무관하고 소비자 지지도 얻지 못해 명분이 없다는 지적이다.

△윤상현 연구관
이에 윤상현 식약처 식품기준과 연구관은 “그동안 향미유는 법적으로 허용된 적이 없었음에도 시장에서 관행처럼 행해지던 것을 인정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인데, 관점이 다른 것 같다”며 현재 논란이 업계의 오해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윤 연구관은 “내부에서도 안전과 무관한 규제는 완화하자는 것이 중론이지만 시장의 건전성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며 “사실 이러한 문제는 표시문제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지만 업계 반발로 무산된 바 있어 이번엔 제조 기준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시장에서 ‘가짜 참기름’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현행법을 교묘하게 피한 유사 참기름 업체들은 성행하고 있다”며 “무단횡단을 방지하기 위해 길을 없애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목소리도 있는데,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연구관은 “현장 의견수렴 부족에 대한 지적은 인정하나 규제비용, 편익 등 모든 이해 관계자 의견을 수렴하는 정책연구과제 사업을 시행 중에 있어 업계 의견도 충분히 수렴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지난달 7일부터 업계 의견 수렴하겠다고 공지했지만 현재까지 단 한건도 접수된 것이 없다. 지금이라도 의견을 개진하며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은 공정거래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 산업통상자원부의 심사를 거쳐 최종 고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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