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파견’ 사태 베이커리 업계에 불똥
‘불법 파견’ 사태 베이커리 업계에 불똥
  • 이재현 기자
  • 승인 2017.09.27 19: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매장서 동일한 제품 제공하는 프랜차이즈 특성상 본사‘업무지시’ 빠질 수 없어

“이번 ‘불법 파견’ 사태는 단순 파리바게뜨만의 문제가 아니라 외식 프랜차이즈 전체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프랜차이즈 특성은 별도의 기술이 없어도 본사에서 안정적인 레시피로 전 가맹점이 동일한 맛을 제공하는 것인데, 가맹점주가 고용한 요리사 등 인력이 가맹본부가 제공하는 레시피에 맞춰 조리할 경우에도 불법 파견이 될 수 있다.”

파리바게뜨에서 촉발된 ‘불법 파견’ 불씨가 횃불로 번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고용부가 프랜차이즈산업 전반에 걸쳐 근로감독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예의주시하는 산업은 베이커리 업종이다. 현재 국내 베이커리 브랜드는 180여 개다. 파리바게뜨(3300여 개)를 제외해도 가맹점만 4000여 개에 달한다.

뚜레쥬르의 경우도 협력업체를 통해 가맹점에 인력을 공급하는 방식이 파리바게뜨와 유사하다. 뚜레쥬르는 본사에서 제빵기사들에게 직접적인 업무 지시를 하지 않아 위법사항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전 매장에서 동일한 제품을 제공해야 하는 프랜차이즈 특성상 본사의 업무지시가 없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고용부가 파리바게뜨를 불법 파견 근거로 제시한 것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다. 법률에 따르면 제빵기사들은 근로계약을 맺은 협력업체의 지시만 받을 수 있으며, 가맹본부나 가맹점주(원청)의 업무 지시를 받을 수 없다. 이를 어기면 불법 파견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업계에선 고용부가 산업 특성을 간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프랜차이즈 사업 특성상 본사가 기술을 지도하고 서비스 기준을 제시하는 것을 불법파견으로 단정 짓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는 것이다.

다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베이커리 업종의 경우 제빵 자격증이 필요한데, 자격증이 없는 가맹점주는 본사에서 소개한 협력업체를 통해 고용계약서를 맺고 제빵기사를 채용한다”며 “이때 고용주는 월급을 주는 가맹점주이지만 이러한 프랜차이즈 고용 형태가 잘못됐다는 것은 정부가 산업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본사에서 제빵기사를 직고용할 경우 결국 가맹점에서 일을 하게 될 텐데, 이 역시 파견법에 위배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현행 파견법에서 제빵기사는 파견근로가 허용되지 않는다.

정부가 산업 몰라…인건비 부담 등 부작용
빵값 인상으로 귀결 소비자에게 전가 예상
법리상으로 모순…합의점 찾기 쉽지 않을 듯

업계 한 관계자는 “프랜차이즈는 모든 가맹점이 통일된 품질과 서비스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가맹본부가 일정한 품질관리를 할 수밖에 없다”며 “가맹점의 품질관리를 위한 교육을 불법 파견으로 판단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의 친노동 정책이 오히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키우며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본사가 직접 고용하게 되면 제빵기사들의 임금이 오르겠지만 인건비 상승은 결국 빵값 인상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으며, 가맹점에선 수익이 악화될 경우 제빵기사 숫자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이번 경우와 같이 정부가 기업을 대상으로 인력 고용을 압박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불법 파견이라는 개념이 한국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

독일은 2003년 노동개혁으로 건설업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 파견을 허용하고 있으며, 일본도 2004년 제조업 파견을 허용했다. 노동 인권이 가장 보장된 프랑스 역시 파견 업종 제한이 없다.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열악한 제빵기사의 임금과 처우 개선을 정부와 가맹본부가 협의해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함에도 직접 고용형태로 풀겠다는 정부 방침은 무리라는 주장이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는 파리바게뜨 사건을 형식적으로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사실상 근로자를 파견하는 불법 파견 행위로 판단했지만 프랜차이즈 계약은 일반 도급계약과는 달라서 일반 도급계약에 적용하는 파견법의 법리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맹사업법 5∼6조에 따르면 본사가 가맹점 품질, 영업활동, 설치, 설비 등을 모두 관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이번 파리바게뜨 사태는 법에서 규정한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불법 파견이라고 간주한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 문제는 정치권으로 넘어가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정의당과 자유한국당·바른정당의 대립구도가 형성된 것.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달 27일 긴급 토론회를 열고 “파리바게뜨에 대한 근로감독 결과가 시장질서를 위협하고, 가맹점주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 우려하는데, 불법을 시정하는 것은 시장질서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것”이라며 “노동자의 정당한 몫을 찾는 과정이 가맹점주에게 부담이 된다는 주장은 끝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하태경 자유한국당 의원도 토론회를 열고 “제빵업은 서민이 운영하는 대표 업종임에도 고용부의 이번 결정은 서민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들 것”이라며 “제빵 업계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결정을 취소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와 함께 하 의원은 제빵업도 파견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파견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혀 정치권 첨예한 대립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용부는 지난달 28일 파리바게뜨에 시정명령서를 전달하며 향후 25일(토요일·공휴일 제외 11월 9일까지) 이내 제빵기사 직고용을 촉구했다. 단 파리바게뜨가 해결책을 제안한다면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