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국제와인·주류 박람회
허울뿐인 국제와인·주류 박람회
  • 함봉균 기자
  • 승인 2003.10.25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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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03 한국국제 주류·와인 박람회´에 참석한 관람객들의 표정이 심드렁하다. ´한 차원 높은 주류문화 창출´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박람회는 주최측의 허술한 준비 탓에 참가한 업체나 관람객 모두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박람회는 시작부터 삐그덕거렸다. 최근 불경기로 맥주나 위스키 등 다른 주류 업계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와인 업계는 붉은 와인이 건강에 좋다는 홍보에 힘입어 그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여세를 몰아 시장을 확대하자는 취지로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가 주축이 돼 이 행사를 추진했다. 그러나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가 박람회 참가 업체를 모집하는 데만도 힘에 부치자 뒤늦게 ´한국주류수입협회´가 발 벗고 나서게 된 것.

철저한 준비를 해도 성공할지 장담할 수 없는 1회 박람회가 명확한 주최자도 없이 진행된 것이다. 그 결과 고작 38개 업체만이 참가 의사를 밝혔을 뿐두산을 제외하곤 아영주산, 신동와인, 대유와인 등 상위 업체들은 모두 외면했다. 이들 업체 관계자들은 "철저한 준비도 없고 홍보도 잘 되지 않은 박람회에 참가해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행사 진행은 더욱 매끄럽지 못했다. 개회식은 30분이나 지연됐으며 테이프 커팅식이 끝나고 귀빈을 박람회에 안내하는 순서에서는 명확한 일정이 없어 우왕좌왕 했으며 심지어는 와인 잔을 준비하지 못해 시음을 하지 못하는 헤프닝까지 벌어졌다.

이날 참석한 한 관계자는 주한 이탈리아 대사, 칠레 대사 등 외국 관계자들 앞에서 나라 망신시키는 것 같아 민망할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또한 박람회와 함께 진행되기로 했던 와인 관련 세미나가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단독 주최로 변경 진행돼 관람객들의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박람회에 참가해 관련 세미나를 들으려 해도 이에 대한 안내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 세미나장 앞에서 한 관람객은 안내원에게 "무슨 행사를 박람회 따로 세미나 따로 진행해서 사람을 고생시키냐"며 크게 화를 내기도 했다. 겨우 15명 정도 참석한 가운데 썰렁하게 진행돼 ´21세기 국제화 시대의 와인 문화와 건강´이란 거창한 주제가 실로 무안했다고 다른 참석자는 꼬집었다.

부대 행사로 진행된 ´와인 옥션´도 보는 이들의 차가운 웃음만 자아낼 뿐이었다. 4~5명의 입찰자들이 참여해 맘에 드는 와인이 호명되면 별다른 경쟁 없이 최저가에 낙찰됐다. "출품될 예정인 와인을 미리 발표해 구매 의사가 있는 입찰자를 미리 모집했으면 조금 더 활기찬 경매가 진행됐을 것"이라고 이 날 행사를 지켜보던 와인 매니아가 혀를 찼다.

이같이 구멍난 박람회 준비는 당연히 많은 관람객의 참관을 기대할 수 없었다. 오후가 되어도 한 부스에 10여 명 이상 참관하는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그나마 참관하러 온 관람객들은 부스를 다니며 와인 마시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원산지가 어디인지 무슨 특징을 갖고 있는지 제품에 대한 품질 비교는 뒷전으로 하고 같이 온 동료들과 몰려다니며 이 와인 저 와인을 받아 마시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몇몇 관람객은 얼굴이 붉어지도록 마셔대 다른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이순주 회장은 세미나 인사말에서 "국내 처음 와인·주류 박람회를 실시하다 보니 미흡한 점이 많지만 짧은 기간에 준비한 것에 비해 어느 정도 모양새는 갖춰져 향후 2회, 3회 나아갈 수록 더 좋은 박람회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한국국제 와인·주류 박람회´는 주최측의 철저한 준비가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과 함께 성숙한 시음 문화가 대중화돼야 주류 관련 박람회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사실만 새삼 깨닫게 한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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