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HACCP 의무화 정책, 속도조절 필요-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111)
지나친 HACCP 의무화 정책, 속도조절 필요-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111)
  • 식품음료신문
  • 승인 2018.05.14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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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별 안전 기준에 해썹 적용은 이중 규제
인증 제품만 판매 허용, 시장경제에 안 맞아

최근 살충제 계란파동 등 식품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식약처는 오는 12월부터 식육가공업에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 의무 적용, 잔류물질 검사, 가축 도축 시 교차오염 관리 등 축산물의 위생관리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축산물위생관리법’ 시행규칙 일부를 개정한다고 밝혔다. 이번 법 개정으로 소시지, 햄 등을 가공하는 식육가공업체는 오는 2024년까지 단계적으로 HACCP 인증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하상도 교수
△하상도 교수

HACCP은 식품의 예방적 선진관리시스템으로, 기업과 소비자 모두가 원-윈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식품안전관리 수단이다. 우리나라 HACCP은 1995년 12월, 1997년 12월부터 ‘식품위생법’ ‘축산물가공처리법’에서 각각 도입된 정부 주도의 식품안전관리제도다.

HACCP은 우리 식품산업이 척박하고 기업들의 위생관리가 미흡했던 20여 년 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시작됐다. 이후에는 위해가능성에 따른 품목별, 규모별, 업소별 차등적 의무 적용과 자율적 도입이라는 투 트랙 방식으로 성공적으로 추진돼 왔다.

비록 우리나라의 HACCP 제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늦게 도입됐지만 그동안 만들어 온 ‘한국형 HACCP’은 다른 식품산업 강국들에 귀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의무화 조치로 많은 식육가공업체들은 현장 상황을 파악하지 않은 일방적 의무화 추진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HACCP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식품안전 정책 중 소비자로부터 가장 호평 받고 있는 것은 맞다. 반면 기업들의 불평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문서 작성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정부의 식품 유형별 안전기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무 품목들은 HACCP 인증을 꼭 받아야만 사업을 할 수가 있다.

사실 HACCP 인증을 받지 않더라도 안전한 축산물을 생산할 수 있고 판매할 수가 있다. 우리 뿐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가 그렇다. HACCP은 식품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고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간의 불량식품 근절정책과 기준규격 선진화, HACCP 추진 등으로 우리나라 정부나 제조업체의 식품 안전관리 역량은 거의 최고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HACCP 의무화 정책은 안전한 식품이 목표가 아니라 HACCP인증 그 자체가 목표가 돼 버린 듯하다. HACCP 설비업체나 컨설팅 업체만 배불리는 꼴이 아닌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시장에서 HACCP 인증을 획득한 제품을 납품 받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만 HACCP 인증을 받은 제품만 시장에서 팔 수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시장경제 체제에 전혀 맞지 않다고 본다.

정부는 최종 제품별 안전 기준·규격을 설정해 관리하고 있다. 이를 지킨 식품이면 시장에서 팔수가 있어야 하는데, 추가로 HACCP 인증을 또 받아야만 팔 수가 있는 의무화는 최소한의 위해 우려 식품에 대해 정책적 판단으로 예외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이해가 되나 거의 모든 식품에 도입되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급기야 “우리 식품산업을 100% HACCP인증 하겠다”고 정부가 선언하는 웃긴 상황이 일어날 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식품이 HACCP인증을 받으면 인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반식품의 안전기준을 HACCP 인증 수준으로 높이면 된다. 그러면 기업들이 HACCP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든, ISO나 다른 수단을 사용하든, 자체 위생관리메뉴얼을 사용하든 기준·규격을 지켜 안전하게 식품을 제조·판매하면 된다.

HACCP은 일반식품보다 엄격한 프리미엄 안전기준이다. 때문에 모든 식품이 HACCP인증을 받게 되면 프리미엄 개념이 사라지고 업체 실수로 HACCP이 취소되면 자동적으로 영업정지가 돼 이중 규제가 되는 것이다.

HACCP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고 수단일 뿐이다. 시판되는 최종 제품의 안전성만 확보하면 되는데, 만드는 과정까지도 정부가 간섭하는 형국이 돼버렸다.

HACCP인증 없이도 정부가 정한 해당 제품의 안전기준과 규격을 준수하면 팔 수 있어야 한다. HACCP 인증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도입하고 싶은 기업은 도입하고 여력이 안 되는 기업은 판매 가능 안전기준을 충족해 일반식품으로 저가에 판매하면 된다.

HACCP의무화는 “HACCP인증 식품만 팔 수 있게 하자!”는 것이어서 “Non-GMO, 유기농만 팔 수 있도록 하자!”는 일부 생산자단체 주장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식품안전 기준’과 ‘HACCP인증’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HACCP은 안전한 식품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지 절대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걸 명심했으면 한다.

중앙대학교 식품공학부 교수(식품안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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