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미량이라 문제없다? 음료 알고는 못 마셔”
[르포]“미량이라 문제없다? 음료 알고는 못 마셔”
  • 김승권 기자
  • 승인 2018.05.15 0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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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놀 등 유해물질, 본드 라벨링 공정 중 ‘뚜껑 열린 페트병’에 유입
150~200도 화학물질 스팀 터널서 안전 장치 없이 작업

미량이라 문제없다? 그러면 그것을 직접 마실 수 있는지 물어본다. 대부분 못 마신다고 한다. 결국 문제가 있다는 건 다 알면서 자기 몸에 설마 들어오겠냐 하는 생각으로 작업한다. 이런 이야기는 관련 업체 간 편한 술자리에서 종종 나오는 주제다.” 

A페트병 회사에서 라벨링 작업 공정을 맡고 있는 한 담당자는 음료 페트병 상표 라벨링 공정에서 유해 물질이 들어간다는 최근 논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의 회사 공정이나 업계의 라벨링 공정에 문제가 있음을 시인한 것이다. 이렇게라도 제도가 바뀔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음료 제품 페트병 유해물질 혼입 논란’에 대한 추가 취재를 위해 10일 찾은 한 페트병 제조업체는 소주, 우유, 락스, 세제 등을 납품하는 업체다. 방진복을 입고 헤어캡을 쓴 다음, 에어샤워로 살균을 거쳐 업체의 한 공장으로 기자가 들어서자 라벨링 공정 컨베어 벨트가 눈에 들어왔다. 공정 입구에 스팀이 흩뿌려지고 있었고 여전히 마개가 닫히지 않은 채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업계에서 ‘쉬링크’라고 불리는 열수축 스팀 라벨링 공정에서는 150도 이상, 최고 200도 이하의 공업용수로 만들어지는 스팀터널을 통과해 하루 수십만 개의 제품이 생산된다. 공정 근처로 다가서자 뜨거운 스팀이 제품 주변을 연기처럼 휘감고 있었고 퀴퀴한 냄새가 코끝을 찌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 과정에서 다른 업체 스팀 공정에서 검출된 바 있는 ‘페놀’ 등 유해물질 포함된 스팀이 음료 제품 주입구를 통해 스팀 응축수가 페트병에 유입된다고 관계자는 말했다.   

페트병 개수로 따지면 20%가 문제가 있지만 품목별로 보면 제품군의 80%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했다. 거래처의 80%는 충전 전 세척공정이 없고 20% 가량만 완벽 세척이 아닌 간단 린싱 공정만 갖추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업계에서 ‘쉬링크’라고 불리는 열수축 스팀 라벨링 공정 주변으로 스팀이 흘러 나오고 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식품 위생상으로는 내용물 충진 후 마개를 닫고 제품 라벨링을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다. 그는 “음료가 충전된 후 상표를 라벨링하면 수축도 더 잘된다. 약 10년 전에는 상품 패키지를 스티커로 간단히 붙였기 때문에 내용을 충전 후 간단히 라벨링을 했다”며 “그 후 제도적인 규정이 없어 점점 열악한 공급업체가 임의에 따라 작업을 하게 됐고 현재는 90% 이상이 제대로 된 안전장치 없이 작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소주 패키지 등을 생산하는 다른 스팀 공정에서도 열악한 작업 여건은 비슷해 보였다. 이 업체에서는 양심상 페트병을 거꾸로 놓고 작업을 하고 있어 스팀이 내부로 덜 들어가는 듯 보였지만 스팀 라벨링 작업대 주변의 직원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작업에 임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패키지 첨가물에 대한 식품 안전 제도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는 “스팀으로 작업한 지는 3~4년 정도 됐는데 그동안 환경부에서 소음이나 페트병 재활용 관련 점검 나온 적은 있지만 식약처가 점검 나온 적은 없다. 여기는 환경 쪽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패키지 공정에서도 엄연히 식품 내용물에 다른 첨가물이 들어갈 수 있고 식품 관련 안전지대가 아니기 때문에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말리는 후공정서 유해물질 페트병 안에 말라붙을 수도
규제 없는 ‘식품안전 사각지대’…제품 80% 위험에 노출
라벨링 중엔 무조건 마개 닫는 게 상책…제도 개선 시급

△소주 페트병 스팀 패키지 라벨링 공정에서 컨베이 벨트를 통과하며 스팀을 머금은 제품이 건조 공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대기업 페트병은 마개를 닫고 작업하는 곳들이 대부분이지만 몇몇의 중소기업 페트병 공장들은 위험에 무방비인 곳들이 많다고 그는 덧붙였다. 

기자가 유해물질을 품은 스팀 컨베어를 돌아선 페트병들을 따라가자 다음 공정으로 스팀을 통해 묻은 물기를 말리는 공정을 거치는 것이 보였다. 이곳에서 유해 물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공정 관계자에게 물었다. 그는 “10m 정도 물기 제거를 위해 말리는 공정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있다면 말라서 페트병 안에 붙을 가능성이 크다”며 “음료 내용물을 충전하는 쪽에서도 이후 에어샤워 정도는 하지만 이미 위해 성분이 말라붙어 있어서 안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또한 페트병 공정에 식품 안전 및 환경 문제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함을 강조한다. 소비자 단체 한 관계자는 “설비나 기술 문제나 포장재 가격이 올라가는 문제도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단기로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식품 안전에 있어서 유해물질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마개를 무조건 닫게 하는 등 제도적 보안이 시급해 보인다”며 “이런 위험성은 본드 라벨링 공정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고, 유해물질이 포함된 음료는 특히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가 먹었을 때 구토 및 이상 현상을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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