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의 오해와 진짜 이야기-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116)
설탕의 오해와 진짜 이야기-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116)
  • 식품음료신문
  • 승인 2018.06.18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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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의 원인은 설탕 아닌 ‘초과된 칼로리’
설탕세보다 영양 조절하는 식습관이 중요

지난 4월부터 영국은 설탕이 들어간 음료에 ‘설탕세(sugar tax)’를 도입했다. 100ml당 설탕 5g 이상이 함유된 음료엔 1리터당 18펜스(약 300원), 8g이 넘는 음료엔 1리터당 24펜스(약 400원)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사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멕시코, 헝가리, 핀란드 같은 나라에선 이미 수년 전부터 설탕세를 부과해왔다. 한국도 2년 전 ‘당류 저감화 종합계획’을 발표한 이후 설탕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2020년까지 가공식품을 통한 당류 섭취량을 하루 열량의 10% 이내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하는 정책이다.

△하상도 교수
△하상도 교수

요 근래 설탕은 ‘21세기 담배’로 불릴 정도로 ‘공공의 적’으로 규정화되는 모양새다. 충치와 비만은 물론 당뇨병, 고혈압, 우울증, 심장 질환, 심지어 암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쯤이면 거의 독(毒)에 버금가는 취급이다. 설탕 입장에선 억울할 만도 하다. 특유의 단맛으로 인류를 사로잡으며 오랜 시간 귀한 대접을 받다가 갑자기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정말 설탕이 나쁘기만 한 걸까? 왕년엔 약(藥)으로 쓰인 귀한 선물이었고 서로 차지하려고 전쟁도 일어난 적이 있는 금(金)보다 귀한 존재였다. 설탕이 인류의 사랑을 받아 왔던 건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18세기 이전까지 설탕은 유럽 의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기침, 열, 설사, 위장병 환자는 물론 흑사병에도 설탕을 처방했다. 설탕이 만병통치약처럼 쓰인 이유는 그것의 당 성분이 신체 에너지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요한 설탕이 최근 비난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설탕에 대한 몇 가지 오해에서 비롯됐다. 이 오해를 제대로 풀기 위해선 우선 설탕의 성분부터 따져봐야 한다.

설탕은 단당류인 포도당과 과당의 중합체로, 체내에 소화되면서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리된다. 설탕이 유해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주로 과당을 문제 삼는다. 과당의 강한 단맛이 식욕 절제 신호를 차단해 과식을 부르고 비만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비만은 설탕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만은 몸에서 에너지로 쓰고 남은 여분의 칼로리가 지방 형태로 몸에 축적된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이 여분의 칼로리는 설탕의 당 성분만 아니라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 등 모든 영양분에 의해 만들어진다. 비만의 주범은 엄밀히 말해 설탕이 아니라 초과된 칼로리, 그리고 적은 칼로리 소비량 그 자체다.

또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는 ‘착한 당’과 ‘나쁜 당’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여기서 착한 당은 꿀이나 쌀, 감자와 같은 비가공식품의 천연당을, 나쁜 당은 식품에 인위적으로 넣은 첨가당을 지칭하는 것이겠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과일 외에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는 프리미엄 착즙 주스에도 탄산음료에 버금가는 양의 당이 함유돼 있다. 과일에 들어 있는 당과 탄산음료에 함유된 당이 영양학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 1인당 하루 평균 당 섭취량의 33%는 과일을 통해 이뤄진다.

또 단당, 이당, 올리고당, 탄수화물 등 여러 종류의 당을 섭취 할 경우 이들이 즉각적으로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시간이 경과하고 대사 능력이 탁월해 모두 단당으로 전환된다면 결국 비슷하다. 이러한 사실로 미뤄볼 때 당 섭취를 염려한다면 설탕뿐 아니라 다른 음식에도 신경 써야 한다.

설탕세 도입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움직임에는 비만을 비롯한 각종 건강 문제를 억제하겠다는 좋은 취지가 담겼다. 하지만 영양 불균형은 궁극적으로 개인이 식습관으로 조절해야 할 문제다. 정부가 단순히 공급을 억제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설탕에 대한 불평등한 세금 부과는 오히려 설탕에 대한 ‘푸드 패디즘(food faddism)’을 유발하고, 설탕을 대체하는 인공감미료의 무분별한 사용을 조장할 수도 있다. 정부가 나선다면 국민 스스로 당 섭취를 줄이는 노력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치는 게 적절하다.

태생부터 나쁜 음식은 없다. 설탕도 마찬가지다. 사실 모든 음식은 그 양(量)에 따라 독(毒)이 될 수 있다. 지나친 당 섭취와 이로 인한 건강 문제를 경계해야겠지만 잘못된 논리로 설탕을 ‘마녀사냥’ 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본다.

당 섭취를 줄이고 싶은 사람이라면 착한 당과 나쁜 당이 따로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식품을 구매할 때 항상 당 함량 표시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길 권한다.

중앙대학교 식품공학부 교수(식품안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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