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표시’ 건기식 수준 규제 강화 논란
‘식품 표시’ 건기식 수준 규제 강화 논란
  • 이재현 기자
  • 승인 2018.11.1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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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글자 10포인트·장평 90%·자간 -5% 이상으로”
식약처 가독성 등 향상 위해 관련 시행규칙 제정
정부가 식품 등 표시에 있어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내년 1월 1일부터 모든 식품 표시에 대해 건강기능식품과 동일하게 글씨크기 10포인트 이상, 장평 90% 이상, 자간 -5% 이상을 골자로 입법예고한 ‘식품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정된 공간에 해당 제품에 대한 모든 정보를 표시하는 것도 난센스지만 글씨크기와 간격까지 정부가 개입하는 것 자체가 전형적인 후진국형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개정안으로는 오히려 가독성을 더욱 떨어지게 하고 있어 정부가 시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탁상행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초 식품 등에 올바른 표시·광고를 하도록 해 소비자 알 권리는 물론 가독성 향상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식품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동안 표시사항의 가독성 향상을 위해 표·단락 표시, 활자크기 10포인트 이상 등을 운영하고 있으나 장평·자간을 줄여 표시하는 영업자로 인해 기존 제도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건강기능식품과 같이 식품, 축산물, 식품첨가물, 기구 또는 용기·포장 표시에도 장평·자간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 식약처의 설명이다. 단 정보표시면 면적이 100㎠ 미만인 경우 장평 50% 이상, 자간 –5% 이상으로 표시할 수 있으며, 업계에서 제품 포장재 소진을 위한 유예기간을 약 3년간(2022년 1월 1일) 부여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가공식품과 건강기능식품을 동일하게 보고 정보 표시면의 글씨 크기와 간격까지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현재 식품은 제품명, 열량, 원산지는 물론 최종 제품에 남아있는 모든 원료를 표시해야 하는데, 이중에서도 분유의 경우 첨가제만 40여 가지가 넘어 이번 기준이 적용될 경우 법적 표시사항을 넣기에도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보통 장기 섭취하는 건기식은 대부분 제품이 세트 포장으로 판매돼 최소 판매단위별 용기·포장에 표시사항을 기재할 공간이 충분하고, 제품설명서도 있어 장평·자간 기준 준수가 가능하지만 가공식품은 최근 트렌드에 맞춰 소용량화되고 있는데, 글자크기를 정하면 법적 표시 외에 주의문구 등을 넣을 수 없다. 이는 향후 PL법 등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식품은 식품표시법에 의한 정보 표시 외에 원산지, 소비자 기본법, 분리배출 표시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 특히 HACCP, CCM 등 인증 획득 제품의 경우 인증마크도 표시해야 하는데, 장평·자간 기준 적용 시 오히려 가독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1인 가구, 나홀로족 등의 비중이 커지면서 업계에서 이들을 위한 HMR 제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HMR의 경우 소비자들은 조리법과 레시피를 요구하고 있는데, 기준 적용 시 이러한 문구 적용이 어려워 결국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보표시면 100㎠ 미만일 경우에는 오히려 가독성이 저하된다는 것이 업계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보표시면 100㎠ 미만 제품의 경우 주로 껌, 사탕, 요구르트, 삼각김밥 등인데, 표시사항 절대량에 비해 표시공간이 부족해 장평을 50% 이상 적용해도 글자크기를 4~6포인트 미만까지 축소해야 돼 가독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현재 QR코드 스캔과 스마트폰 보급이 일반화된 만큼 제품명, 중량, 원산지 등 중요 정보가 아닌 경우에는 별도 QR코드로 정보를 삽입할 수 있는 방안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업계 “지나친 규제…법적 표시 사항 넣기도 부족”
소용량엔 인증·주의 사항·조리법 표기 자리 없어
디자인 변경에 2000억 소요…QR 코드가 효율적

포장재 변경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우려했다. 다른 관계자는 “정부는 3년 유예기간 동안 포장재 소진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신규 표시사항들이 기존 포장재 표시범위를 벗어나므로 포장재 디자인을 전면 수정하거나 동판을 새로 제작해야 한다. 게다가 표시기준 변경이 아니면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될 제품들도 많다”고 토로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식품제조·가공업체 생산 품목은 6만6899개로, 신규 표시사항을 적용할 경우 동판 변경 및 디자인 수정 등 약 2000억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업계에선 공통기준보다는 개별기준에서 장평·자간을 각각 신설해 줄 것과 정보표시면 면적이 100㎠ 미만인 경우 장평·자간 기준 적용 제외를 요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제품 표시 글자 크기와 간격까지 정부에서 개입하는 곳은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모든 식품 표시의 통일성을 위한다면 오히려 건강기능식품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힐책했다.

식품 전문가들의 의견도 업계와 다르지 않다. 식품 관련학과 한 대학교수는 “산재돼 있는 표시법을 통일해 가독성을 올리겠다는 정부의 취지는 좋은 방향이라고 보지만 모든 법에는 정작용과 반작용이 따른다. 소비자 알권리 차원에서 식품에 대한 모든 정보를 표시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일부 소비자를 제외하곤 대부분 식품 표시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소비자들이 가장 원하는 표시를 조사해 심플하면 다룬다면 더욱 가독성을 높여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교수는 “필수 영양성분 표시를 제외한 정보는 QR코드 등 보다 스마트한 방법이 있지만 소비자 알권리와 콘텐츠 둘 다 잡으려는 욕심이 화를 자초한 것 같다”며 “정부가 끝까지 소비자 알권리를 고집한다면 업계에서도 할 말은 없겠지만 ‘가독성’이라는 정부의 목표는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 뒤 정부가 숲만 보지 말고 나무까지 보는 혜안을 가졌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식약처 관계자는 “과거 업계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장평·자간에 대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선 장평·자간을 줄여 소비자들의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남은 공간을 광고로 활용하는 등 소비자 불만들이 끊임없이 제기돼 이번 표시법을 입법예고하게 됐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그는 “이번 표시법은 입법예고 전 업계 의견수렴을 거쳐 합의된 것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사항을 무리하게 요구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보표시면 면적 100㎠ 미만인 경우 특례조항을 뒀고, 업계에서 요구하는 조리법, 레시피 등도 표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표시 면적 100㎠ 미만인 경우 표시사항이 어렵고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업계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입법예고 전 시뮬레이션을 통해 글자크기를 줄이고 장평·자간을 유지할 경우 가독성은 절대 저하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업계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아직 의견수렴 기간이 남은 업계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고 논의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입법예고는 오는 12월 11일까지 의견수렴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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