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당(黑糖, black sugar) 열풍-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167)
흑당(黑糖, black sugar) 열풍-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167)
  • 하상도 교수
  • 승인 2019.07.08 0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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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티·시럽 등 ‘블랙 푸드’ SNS타고 확산
천연·건강 마케팅도 한몫…실제론 열량 높아

식음료업계가 ‘극한 단맛’, ‘흑당’에 빠졌다. 흑당(黑糖)은 사탕수수 즙으로 만든 비정제 당으로, 흑설탕보다 짙은 빛깔을 띤다. 단맛이 진하고, 음료에 넣었을 때 진한 색의 시럽이 퍼지는 모습이 이색적이어서 인스타 등 SNS 이용자들에게 폭발적 반응을 얻고 있다. 대만의 ‘흑당 버블티’ 즉, 공차가 국내 시장에 상륙한 이후부터 흑당이 선풍적 인기를 끌며 흑당 함유 신제품의 출시가 잇따르고 있다. 흑당밀크티, 흑당버블티, 흑당커피, 흑당시럽에 이어 흑당 과자도 나온다. 그야말로 블랙푸드 열풍이다.

△하상도 교수
△하상도 교수

국어사전에서 ‘흑당黑糖’은 흑설탕(black sugar) 즉, 정제(精製)하지 아니한 검은 빛깔의 사탕가루를 말한다. 이는 함밀당의 일종인데, 사탕수수의 줄기로부터 압착해 추출된 자즙(蔗汁)을 가열해 조려 만든다. 당도는 73~86도, 환원당이 14~2%, 수분 6~7%의 흑설탕이다.

흑당 열풍에는 ‘천연마케팅’과 ‘건강마케팅’이 한 몫 했다. 흑당은 정제가 덜 돼 단맛이 덜하고 미네랄, 섬유질 등 사탕수수가 지닌 영양성분이 약간 함유된 것이라 이를 소비자들은 건강한 맛이라 생각한다. 즉, 이를 백설탕, 흑설탕 등 정제당 보다 몸에 더 좋은 천연시럽으로 착각한다는 점도 흑당의 인기를 뒷받침했다.

우리 민족은 유독 ‘天然(自然)’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다. 반면 ‘정제(精製)’에 대해서는 인공적이라 거부감을 갖는 경향이 있다. 그간 방송에서 쇼닥터나 가짜 전문가들이 얄팍한 지식으로 퍼뜨리기 시작한 천연 찬양에 세뇌당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천연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의 무분별한 노이즈마케팅이 분명 한몫했다고 본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정제(精製)는 “정성을 들여 정밀하게 잘 만듦”, “물질에 섞인 불순물을 없애 그 물질을 더 순수하게 함”이라고 정의돼 있다. 한 마디로 이물질을 제거해 깨끗하게 정성들여 가치(價値)를 올린다는 좋은 의미다. 시간과 돈을 들여 힘들게 정제한 식품임에도 불구하고 천연 그대로보다 천시 당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 음식이 바로 ‘설탕’이다. 백설탕은 원당, 즉 흑설탕을 정제한 것이다. 물론 ‘천연’이 좋은 점도 있다. 정제되지 않아 식이섬유나 비타민, 미네랄, 기타 생리활성 성분들이 포함돼 있고, 함께 작용해 ‘정제’보다 흡수율이 높아질 수가 있다. 그래서 효능이 높을 것이라는 근거가 있다. 그렇지만 그 양이 미미해 인체에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최근의 흑당 음료의 유행은 오히려 과도한 당 섭취를 유발할 수도 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흑당 커피와 차(400g 기준)의 열량은 300~440 kcal인데, 이는 쌀밥 한 공기(210g, 약 310 kcal) 보다도 높은 수치다. 당분 함량도 한 잔 당 30~50g로, 세계보건기구(WHO)의 하루권장섭취량인 50g에 육박한다. 설탕이 많이 함유된 것으로 알려진 C사 콜라(210ml)에는 23g, L사 사이다(190ml)에는 16g, 프리미엄 착즙주스인 P사 오렌지주스(190ml)에는 23g의 당류가 함유돼 있어 흑당음료의 당 함량은 대부분 탄산음료나 과일주스보다 오히려 더 높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소비자들은 흑당은 괜찮고 백설탕은 몸에 해롭다고 생각하거나 그리 믿고 싶은 것 같다.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음식의 오해 중 가장 많은 것이 바로 ‘착한 당’과 ‘나쁜 당’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여기서 착한 당은 흑당과 같은 천연당(천연당)을, 나쁜 당은 합성해 만든 정제당을 지칭하는 것이겠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단당, 이당, 올리고당, 탄수화물 등 여러 종류의 당을 섭취 할 경우 이들이 즉각적으로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시간이 경과하고 대사 능력이 탁월해 모두 단당으로 전환된다면 결국 비슷하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볼 때 당 섭취를 염려한다면 설탕뿐 아니라 다른 음식에도 신경 써야 한다.

이러한 ‘천연·건강 마케팅’으로 유발된 흑당 열풍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소비자다. 맛이나 기호, 문화로 흑당을 먹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건강한 당이라는 착각으로 지나치게 마신다면 오히려 건강을 망치는 정크푸드가 된다. 과학적 측면이나 실질적 음식의 가치로 살펴 볼 때 흑당은 일부러 찾아 먹어야하는 정도로 건강에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중앙대학교 식품공학부 교수(식품안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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