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야기②:보리(麥)-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170)
식재료 이야기②:보리(麥)-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170)
  • 하상도 교수
  • 승인 2019.08.05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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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구황 작물서 건강식품으로…컬러 보리 각광

연간 우리 국민 1인당 보리 소비량은 1.3 kg에 불과하다. 작년(2018년) 기준 쌀이 61 kg, 밀이 33 kg 정도이니 거의 보리를 안 먹는다고 봐야한다. 그러나 작년 보리 생산량은 14만3천 톤으로 적정 생산량을 크게 초과했다고 한다. 수매제가 폐지된 2007년 이후부터 보리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급감했지만, 최근 들어 쌀 생산조정제와 맞물려 타 작물 자급률 제고를 위한 이모작 직불금 지원, 계약재배 활성화 등 정책 지원과 함께 전 년도 보리 가격이 강세를 보이자 너도나도 보리를 심었기 때문이다. 초과 공급된 보리는 쌀과 달리 정부가 수매하지 않아 농가의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하상도 교수
△하상도 교수

과거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엔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었다. 이는 가난의 상징으로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 견디기 힘든 고개라는 뜻이다. 즉, 대략 5~6월경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아 식량 확보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이르던 말이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보리가 쌀을 대체한 중요한 식량자원이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요즘은 보리가 남아돌아 천덕꾸러기 신세라고 한다.

보리(麥)는 기원전 1,500년경 고대 인도서적에서부터 언급되는데, 떫은맛에 냉하고, 거칠면서 가벼운 단맛을 주는 곡식이다. 또한 생리적으로는 변의 부피를 늘려 주고, 체온 조절, 체액 형성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보리가 밀보다도 앞선 식용곡물이었다고 한다. 기원전 800년경 Homeric시대에도 보리가 그리스인의 주요 영양원으로 사용됐으며 Alphita라는 음식에도 이용됐다고 한다.

이후 보리는 로마시대 검투사들의 애용식이 되었는데 체력과 스테미너를 높이기 위해 보리빵을 만들어 먹었다고 하며, 라틴어 이름도 검투사로부터 기원한 것이라 한다. Rieska라 불리는 보리빵이 핀란드 빵의 시초였고, 중세 영국에서도 이 보리 빵이 농민과 빈민의 주식으로 이용된 바 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덴마크 시골지역에서는 보리가 주식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리가 기원전 5∼6세기 이후부터 재배되기 시작해 1970년대 중반까지 오랜 세월동안 쌀 다음으로 중요한 곡물로 활용됐었다.

보리는 대략 전분이 2/3를 차지하고 단백질이 11%, 식이섬유인 베타글루칸(β-glucan)이 5%, 나머지 20%는 수분, 지방, 회분, 섬유소, 그리고 소량의 비타민 으로 구성된다. 특히 비타민 B군의 뛰어난 공급원이다. 보리에 많은 베타글루칸은 기능성 식이섬유로서 혈관이나 간의 콜레스테롤 함량을 낮춰 고혈압 등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끈적거려 검류(gum)로도 사용된다.

로마 시대 검투사의 애용식…보리빵으로 애용
성인병 예방…FDA ‘심장건강 강조표시’ 인가
일반식품 기능성 표시 잘 활용하면 제2의 붐

특히, 보리는 심장질환 예방, 변비와 암 예방, 소화기능과 스테미너 증진, 비만방지, 혈당지수(GI) 감소 등의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보리 섭취를 통한 심장질환 억제효과에 대해 美 FDA에서는 ‘심장건강 강조표시’ 인가를 했고, 국내에서는 보리에 함유된 “베타글루칸 추출물이 혈중 콜레스테롤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기능성도 인정받은 바 있다.

보리의 용도는 보리밥, 보리차, 엿기름, 미숫가루, 보리빵, 국수, 장류, 보리어린잎 정도에 한정돼 있고 밥상에서도 사라진 지 오래다. 특히 귀리, 퀴노아, 오트밀 등 소위 슈퍼푸드로 불리는 수입 곡물의 역습으로 국내 1인당 연간 보리 소비량은 1.3 kg에 불과할 정도로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보리에 존재하는 미량의 탄닌 때문인데, 밥을 지으면 어두운 색을 띄어 비호감으로 여겨지고 있다. 시장은 희고 밝은 색상을 가진 저 폴리페놀 보리 품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보리 변색의 원인인 폴리페놀이 항산화, 혈압강하 등 기능성을 준다고 알려지면서 오히려 각광받고 있다. 또한 컬러푸드의 인기에 편승해 블랙푸드의 건강효과가 알려지면서 다양한 컬러보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안토시아닌 함량이 높은 유색보리를 이용한 음료, 빵, 혼반식 등 가공용 소비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과거 쌀이 모자라 주식 대용으로 활용된 보리가 이제는 쌀이 남아도는 시기에 밥 대신 건강식품으로 오히려 각광받게 된 것이다.

어쩌면 보릿고개를 보내던 과거엔 영양부족과 면역저하로 기력이 부족했었지만 오히려 부자병인 비만이나 콜레스테롤 등 혈관질환은 없었을 것 같다. 보리를 먹으며 소식(小食)하기, 칼로리 줄이기 캠페인 등으로 보릿고개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최근 특히나 일반식품에 대해서도 기능성 표시를 할 수 있도록 정부 방침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보리가공업체들이 이를 잘 활용한다면 붐을 일으킬 가능성도 크다고 본다. 그리고 농식품부에서는 2022년 보리자급률 목표치를 31.0%에서 36.6%로 상향 조정해 보리 가공산업 육성책을 편다고 하고, 농진청도 '지역특화작목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보리를 활용한 맥주 등 로컬푸드가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한다. 부디 모처럼 때를 만난 보리가 가난의 상징에서 부자들의 기호식으로 거듭나 제2의 전성기가 열리길 기대해 본다.

중앙대학교 식품공학부 교수(식품안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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