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엿기름과 식혜는 지난 옛 영광으로 끝나야 하는가?
[기고] 엿기름과 식혜는 지난 옛 영광으로 끝나야 하는가?
  • 식품음료신문
  • 승인 2019.08.19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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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신동화 명예교수(전북대학교, 한국식품산업진흥포럼 회장)
△신동화 명예교수(전북대학교, 한국식품산업진흥포럼 회장)

벼 수확이 끝나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그 해 여름에 수확한 겉보리를 물에 담가 적당히 물을 머금으면 시루에 옮겨 윗목에 놓아 싹을 틔웠다. 이때 싹이 나오는 상태에 따라 물을 뿌리고 뒤적거려 싹과 뿌리가 잘 올라오도록 도와준다. 3~4일 정성을 들이면 싹이 나와 엿기름의 모습을 갖춘다. 싹이 자라고 뿌리가 하얗게 나온 엿기름을 서리가 내리는 밤에 멍석에 널어 얼리고 낮에는 햇볕에 건조하는 것을 반복했다.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엿기름이 얼었다 녹아야 효소 역가가 높아진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경험을 통해 그 원리를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성들여 싹틔운 엿기름을 건조해 뿌리와 싹을 제거하고 분쇄한 후 독에 보관하면서 겨우내 식혜를 만들어 가족들에게 맛있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초저녁에 시작해 밤중이나 되서야 당화가 완료돼 달콤한 식혜가 만들어 지는데, 잠결에 먹는 식혜의 꿀맛을 지금도 어머님과 함께 잊을 수가 없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먹어왔던 감미원으로 가장 으뜸은 여유있는 집안에서만 먹었던 꿀이었고, 다음이 식혜를 졸여서 만든 조청과 엿이었다. 식혜를 잘 만드는 데는 잘 기른 엿기름이 가장 중요하고, 다음은 쌀밥이다.

엿기름에 만들어진 효소가 쌀밥에 있는 전분질을 분해시켜 당분을 만드는데, 이때 만들어진 단맛의 주성분은 맥아당이다. 맥아당은 설탕의 60% 정도 감미를 지녀 많이 달지는 않지만 엿기름의 독특한 풍미와 단맛이 순하고, 강하지 않아 우리 민족 심성에 꼭 맞는 음료였기에 지금까지 전통음료로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다.

예로부터 식혜, 혹은 감주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료로 자리 잡았다. 설탕이 값싸게 대량 수입되면서 식혜의 단맛이 소비자 눈길에서 멀어졌지만 최근 우리의 옛 맛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일면서 식혜가 다시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겨울철 얼음이 석석거리는 시원한 식혜는 별미였고, 가정마다 모두의 간식 겸 기호음료로 인기가 높았다. 어른들에게 세배를 가면 집집마다 대접하는 음료도 식혜였다. 또한 감기 들었을 때 고추를 넣어 매콤하게 만든 식혜는 치료제로도 사용됐고, 생강을 넣은 식혜는 또 다른 별미를 주면서 약효를 인정받았다.

식혜는 상품화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통식혜에는 삭힌 밥알이 동동 떠있어야 양질의 제품으로 인정받았으나 제품에 따라 밥알아 가라앉고 색이 검게 변해 걸러 내버리거나 보기 좋지 않은 결점이 있었다.

지금은 이런 아쉬운 점을 보완해 단맛은 그대로 유지하되 완전히 삭히고 남은 밥알을 분리해 거의 맑은 액만을 제품으로 공급하고 있다. 또한 소포장 형태로 간편하게 만들어 편의성을 추구하는 소비자 니즈에도 부응하고 있다.

수천 년부터 우리 민족에게 잊을 수 없는 유일한 서민의 단맛 음료인 식혜를 거센 서구화 바람으로 날려 흔적도 없게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현대인 기호에 맞게 개선하고 더욱 편리하게 먹을 수 있도록 개량할 필요가 있다. 특히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양권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식성을 갖고 있어 그들 기호에 맞게 변화 시켜 식혜를 국외시장으로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다.

또 엿기름식혜의 독특한 맛과 향은 그대로 살리고 단맛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열량이 낮은 천연발효당, 즉 알룰로스나 천연에서 얻는 스테비아 등을 이용해 단맛은 느끼되 저열량인 음료를 검토해 볼 필요도 있다.

아울러 소비처가 마땅치 않는 보리를 활용하는 방법으로도 제격이다. 우리 전통음료인 식혜를 살려 전통의 맥이 이어지고 건강음료로서 명성을 되살리면서 보리 등 곡류 소비확대에도 기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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