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전망과 비전] 한·중·일 안전규제·기준 통일로 ‘동북아 식품 경제권’ 창출 가능
[특별기고:전망과 비전] 한·중·일 안전규제·기준 통일로 ‘동북아 식품 경제권’ 창출 가능
  • 식품음료신문
  • 승인 2019.09.10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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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진흥과 안전관리의 상생·조화를 위한 패러다임의 변화와 도전①
식품안전정보원 이주형 정책연구본부장

식품안전규제와 기준은 소비자의 건강을 보장하는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안전규제와 기준은 식품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게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일견 타당한 지적이지만, 이러한 주장은 식품시장에서 식품안전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식품이란 푸드체인 전체를 포함한 제품으로, 1차 산물부터 완성된 가공식품에 이르는 모든 음식물을 의미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식품안전규제와 기준은 식품산업의 발전을 여는 열쇠다. 열쇠를 잘 고른다면 식품산업발전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찾아 들어갈 것이고, 잘 고르지 못한다면 맞는 열쇠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할 것이다. 기회의 문을 열기 위해 미래적·도전적 가능성을 가진 3개의 열쇠를 검토한다. 첫 번째는 동북아시아라는 단일 식품시장을 만들기 위한 규제의 시장창출 기능에 주목하다. 두 번째는 최근 강조되고 있는 규제샌드박스와 식품기업가 정신을 통해 규제의 혁신 유발활동을 조명한다. 마지막으로 식품시장에 만연한 ‘베끼기’관행을 혁파하고 공정한 식품시장을 만들기 위한 식품안전규제의 역할을 알아본다.

 

△이주형 본부장
△이주형 본부장

첫 번째 열쇠로써 식품수출 촉진을 넘어 동북아시아라는 거대 단일시장 형성을 위한 공통기준규격의 필요성가 가능성을 검토한다. 국내 식품산업의 가장 큰 어려움은 식품시장이 협소하다는 것이다. 작은 내수식품시장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정부와 기업 모두 수출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식품기업의 고군분투와 정부지원으로 일부 성과가 나타나고 있으나, 이는 모두 일부 대기업들과 가공식품업자들의 몫이다. 중소식품기업과 농어민들이 생산하는 1차 산물의 수출 성장률도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발상을 전환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시장을 창설하고 확대할 필요가 있다.

상품의 수출입을 위해서는 수출입 국가의 규제와 기준규격(표준)을 준수하여야 한다. 보통의 제품은 국가기술인프라의 역량을 통해 호환성 개선, 제품 단순화, 품질향상, 정보전달의 효과성 등을 달성하고 산업경쟁력 향상을 이룩하기 위해 산업표준규격을 따른다. 또한 WTO와 FTA 체계에서 제품의 국제적 교환을 촉진하고, 지적·과학적 분야 및 기술적·경제적 분야에서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국제표준(ISO)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식품은 산업표준뿐만 아니라 식품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수출입 국가의 기준규격(code)과 WTO와 FTA 체계에서 맺은 SPS(위생 및 식물검역조치)협정을 준용해야 한다.

현재 국제식품무역에서 흔히 통용되는 기준을 설정하는 코덱스 위원회(CODEX)는 인간의 건강 증진을 위한 식품의 위생조치 등과 관련된 다양한 논의를 진행하고자 1963년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농업식량기구(FAO)에 의해 설립되었다. 초창기 코덱스 위원회는 강제력 없는 국제식품안전 협의기관이었으며, 코덱스 규격은 임의기준에 불과했다.

1995년 WTO 출범에 따라 코덱스 위원회의 결정사항이 식품무역의 자유화를 위한 국제적 기준으로써 인정되었고, 이를 상회하는 수입규제 조치는 비관세장벽으로 인정된다. 불필요한 안전 기준 및 표시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식품의수입을 제한하고 무역 자유화를 방해하는 ‘보호주의’를 퇴치하기 위한 국제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WTO 회원국은 이 코덱스 위원회 기준을 웃도는 식품안전규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강력한 “과학적 근거”를 증명해야 했다. 즉, 해당 식품이 코덱스 기준을 따랐을 때 리스크가 높아진다는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의무화되고 이를 증명하지 못하는 수입규제는 WTO를 위반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WTO 기준 이상의 식품규제를 강화하는 각국의 식품법 개정이 이루어지고 있고 보호무역주의가 심화되고 있다.

국제 식품무역량 증대와 자국의 안전 확보를 위해서는 타국에서 생산되는 식품에 적용되는 식품의 기준·규격(표준)이 자국과 정합성 있는 국제기준으로 조화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급자족 경제체계를 유지하는 국가가 아니라면 교역국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수출시장을 확대하려는 수출국의 입장과 자국민의 건강과 식품시장을 보호하려는 수입국의 입장 모두를 가진다. 그러다 보니 코덱스 결정사항의 대부분은 과학적 근거를 통하여 큰 이견 없이 진행되지만, 몇몇 결정에서는 과학적 근거를 무시하고 다양한 기업과 국가의 이익 등 시장주의 원리에 따른 결정도 나타나고 있다. 성장 호르몬의 잔류 기준치(MRL)(제19회, 제21회 총회), 내추럴 미네랄 워터의 기준 수정과 식품 수출입 검사인증제도 설계, 운용, 평가 및 인증에 관한 가이드라인(CAC/GL26-1997)"의 채택에 대한 투표(제22회 총회), 에멘탈 치즈 개정 규격안에 대해 스위스가 표시부회에 검토의 반환 요구(제30회 총회), 락토파민 MRL을 투표로 결정해야 할지 투표(제34회 총회)하고 재차 락토파민 MRL 관련 2차 투표를 일반투표/비밀투표로 할지를 투표한 후 MRL 채택에 대하여 진행한 투표(제35회 총회) 등이 과학적 근거보다 이해관계를 우선하여 투표로 결정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나의 시장 형성할 문화·경제·법률 조건 기초 갖춰져
식품 수출 상호간에 큰 비중…통합하면 북미보다 큰 시장
공통 규격 적용 땐 내수 시장 확대…아세안과 협력 시 유리

다자간 협상은 다양한 이해를 가진 주체가 참여하고 이해관계의 대립을 극복해 합의(Consensus)에 도달한다하더라도 각국의 상황에 따라 유불리(有不利)가 존재한다. 이러한 이유로 각국은 유리하게 협상을 전개할 수 있는 분과 신설을 요구하고 그 분과 안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코덱스 각 분과의 의장국 지위를 맡기 위하여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보호무역이 강조되는 상황 속에서, 회원국이나 지역을 포함하는 정부 간 국제 조직에서 책정되는 규격 기준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동북아시아는 식품을 발효하여 주식인 밥과 곁들여 먹음으로써 맛과 영양의 보충은 물론 보존성까지 확보하는 공통의 식문화가 존재한다. 북한을 포함하여 한국과 중국, 일본의 식문화는 역사와 문화적 배경의 긴밀성으로 인해 상호 간 유사성이 매우 높다. 동북아시아 지역은 식품의 질적인 향상을 추구하는 단계에 진입하였으며, 외식 비중의 증가 추이, 곡류 소비 감소 추세 등이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동북아시아 지역은 각 국가가 서로 중요 식품교역국으로서 상호 간 수출입 비중이 매우 높다. 한국의 식품수출국 1위와 2위가 일본과 중국이고, 식품수입국 2위가 중국이며 13위가 일본이다(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림수산식품 수출입동향 및 통계, 2018). 중국과 일본 역시 상호간 비중이 높아 중국의 수출국 1위가 일본이고 4위가 한국이며(중국 상무부, 중국 농산물 수출입 월간 통계 보고서, 2017), 일본의 수출입국 2위가 중국이고 5위가 한국이다(농림수산성, 농림수산물 수출입 현황, 2018.). 동북아시아는 오래전부터 이미 상호 간 식품수출·수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북미, EU와 비슷한 정도로 큰 식품시장을 형성하였다. 동북아시아 식품시장은 북미보다도 크고 EU보다는 작은 수준의 거대 식품경제권으로 성장한 것이다.

동북아시아는 식문화와 시장의 긴밀성 이외에도 지리적으로 근접하고, 유교·한자문화권의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대륙법계에 속할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중국 법체계, 근대 이후에는 일본 법체계가 삼국의 법체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과거 한국과 중국의 식품위생법은 일본 식품위생법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동북아는 서양과는 다른 언어와 문화, 특히 독자적인 법・행정문화를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식품사고도 동북아시아 전체가 공통으로 발생하거나 상호협력 없이는 해결하지 못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이에 따라 관계국간 협정·협약 체결, 관련 제도·기준 개선, 수출국 안전관리 강화, 협상 실시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진행되었다. 협정·협약 체결은 관계국 간에 사후적으로 협력조치를 취할 수 있는 대표적인 형태다. 중국산 납 꽃게 사건의 영향으로 2001년 ‘한중 수산물 위생관리에 관한 약정’이 체결되었으며, 말라카이트 그린 검출사건 이후 중국 정부와 ‘활어 위생협정’(2005년)이 체결된 바 있다. 이렇게 협정·협약 체결의 결과로 국가 간 협력조치의 하나인 수출국의 관련 제도 개선이 진행되었다.

이 밖에도 사건별 후속조치를 넘어 일상적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국가 간 신속한 대응과 식품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2009년 ‘제3차 한중일 보건장관회의’가 개최됐다. 3국은 식품안전분야 교류 및 협력강화를 위한 조직 설립을 주목적으로 하는 ‘식품안전협력에 관한 각서’를 체결했다. 이후에도 한국과 중국 간에 체결된 ‘한중 식품안전협력약정’(2003), 중국과 일본 간에 체결된 ‘중일 식품안전협력추진 각서(2010)’ 등이 추진되었다. 공통된 중요한 내용으로는 식품안전에 대한 협력관계 구축 선언, 식품안전관련 정보교환 등이 있었다.

이상과 같이 동북아시아에서는 한·중·일 3국 간 식품안전의 교류 및 협력을 위하여 조약이 체결된 바 있으나, 식품안전 협력의 기본방향과 주요 추진 사항 정도만 규정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최근 3국 간 식품교역 증가로 인하여 식품 사고가 빈발하고 규모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3국 간 식품안전 협력은 문제가 발생하면 한시적인 해결책만 제시하다보니 실효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기존의 사후대책 위주의 안전관리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사전 예방 조치를 통한 식품안전 확보로의 체계 전환이 시급하다.

이제 동북아시아 식품시장은 분리될 수 없는 큰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식품경제권을 둘러싼 문화적, 경제적, 법적 조건이 단일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 기초 환경으로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전관리를 위해 사후규제가 아니라 사전규제의 창설적 효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변경하여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동북아시아가 단일식품시장을 형성하고 사전 예방적 안전관리를 구축할 수 있도록 공통기준규격과 협력모델을 도입하는 것이 열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열쇠가 열게 될 기회의 문 뒤에는 식품산업발전과 소비자 권리 증대라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향후 공통식품규격이 적용되는 동북아시아 시장은 우리나라의 내수시장을 확대할 것이다. 이에 따라 중소식품기업이 성장하고 1차 산물의 수출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또 안전이 보장된 다양한 식품에 접근할 수 있어 소비자의 안전권과 선택권 신장에 기여할 것이다. 한편, 동북아시아 공통기준규격이 마련되면 아시아 식품에 대한 대표적 공통기준규격 모델로 활용할 수 있어 차후 아세안과의 협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협력을 위한 촉매로 작용하여 아시아 시장이 북미 시장과 EU 시장을 능가하는 매력적인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미 EU 모델이 아니더라도 호주와 뉴질랜드처럼 동북아시아와 유사한 환경을 가지고 있는 국가 간의 식품안전관리 모델이 존재하고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옛 영국 식민지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공유하고 경제・통상면에서의 유대가 깊어 양국 최초의 자유무역협정(FTA)인 호주・뉴질랜드 경제 긴밀화 협정(ANZCER)과 식품안전 공동대처를 위해 규제의 공통화를 추진하였으며 ‘식품기준조약(1995)’을 체결하였다. 식품기준조약은 양국 간의 법규 준수 비용을 절감하고 규제로 인한 무역장벽을 없애기 위한 것으로 1996년 발효되었다. 식품기준조약을 체결 이후 2000년에는 호주·뉴질랜드 식품안전기준(ANZFSC)을 채택함으로써 호주·뉴질랜드 공통식품공전이 도입되었으며, 2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02년부터 시행되었다. 호주 정부와 뉴질랜드 정부가 ‘호주-뉴질랜드 인정에 관한 법 1997’에 따라 체결한 비조약적 협약으로 1997년 호주·뉴질랜드 상호인정협약(TTMRA)이 발효된 바 있으며, 이에 따라 자국에서 생산 또는 자국으로 수입한 식품이 해당 국가의 식품기준에 적합하면 상대국에서 법적으로 판매가 가능해졌다. 즉, 뉴질랜드에서 호주로 수출한 식품 대부분은 호주 식품공전에 적합한지 검사받지 않아도 되며, 이는 반대의 경우에도 해당한다.

규제와 기준규격(표준)은 국제무역이나 자국의 산업발전에 장애가 될 수도 있지만, 환경보호, 국가안보, 식품안전 등의 보장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권 보장과 정보제공 등 다양한 이유에서 필요하다. 특히, 규제는 시장에서 적용될 게임의 규칙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므로 각국의 다양한 규제와 기준의 수준을 이해하고 이를 무역 활성화와 소비자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조화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규제의 국제적 조화는 식품안전의 수준을 향상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 수준에 맞지 않는 규제 애로를 개선한다. 이를 통해 인력과 비용의 낭비를 절감할 수 있도록 하고 공통시장의 형성에도 크게 이바지한다. 결과적으로, 규제와 기준은 식품안전을 위한 과학기술개발을 촉진하고 식품안심 및 안전을 보장함으로써 식품산업의 발전을 가져온다.

한·중·일은 유사한 식문화, 행정·법 시스템뿐만 아니라 미국, EU와 맞먹는 동아시아 식품경제권을 형성하는 식품교역의 중요 파트너이자 중요한 동반자 국가이므로 식품산업과 식품안전을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식품경제권은 자유로운 식품의 이동을 보장하고 안전을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전제로 하는데, 그 것이 바로 공통의 식품안전규제와 기준규격의 마련이다. 기존의 조약을 개정하거나 비조약적 협약 등을 이용하여 단일시장의 형성과 안전관리 체계 구축을 위한 논의를 빠르게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된다.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 북한과 남한의 식품경제권의 구축뿐만 아니라 아시아 식품시장을 우리나라의 내수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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