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전망과 비전] 규제샌드박스와 공유주방을 통한 식품 기업가 정신의 고취
[특별기고:전망과 비전] 규제샌드박스와 공유주방을 통한 식품 기업가 정신의 고취
  • 식품음료신문
  • 승인 2019.09.23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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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진흥과 안전관리의 상생・조화를 위한 패러다임의 변화와 도전②
식품안전정보원 이주형 정책연구본부장

현대는 창의와 혁신이 각광받는 시대다. 혹자는 “20세기가 케인즈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슘페터의 시대”라고 말하며 ‘혁신’과 ‘기업가정신’을 강조한다. 케인즈가 주장했던 정부개입의 단기적 처방보다 슘페터가 주창한 시장경제의 역동성이 경제발전의 동력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혁신이 일어나지 않고 기업가정신을 가진 사업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식품업계의 의견을 청취하다보면, 대부분의 사업자들은 규제가 많고 절차가 까다로워 기업활동이 어렵다고 토로한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세계 각국이 신기술 서비스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기 위한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낡은 규제 틀(framework)에 묶여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는 의견이 다분하다. 우리는 왜 혁신과 기업가정신을 고취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산업진흥과 안전관리의 상생·조화를 위한 패러다임의 변화와 도전, 그 두 번째로 규제샌드박스와 공유주방을 사례를 살펴본다. 그리고 식품 기업가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주형 본부장
△이주형 본부장

흔히 우리나라는 대륙법계에 속한다고 말한다. 대륙법계는 로마 제국의 시민법에서 출발해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형성·발전한 성문법(典) 형식의 법계를 의미한다. 근대국가를 수립하며 일본이 이를 수용하였고 일본의 법계를 수정하여 받아들인 우리나라도 대륙법계에 속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식품위생법은 일본의 식품위생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대륙법계의 색채가 강하다.

대륙법계는 소위 포지티브(열거주의) 원칙으로 알려진 ‘원칙금지, 예외허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허용 가능한 행위를 법령으로 열거하고 그 외의 행위에 대해서는 금지하는 원칙이다. 우리 법령체계는 명백한 허용 규정이나 기존에 실무상으로 허용되어 온 사실이 없는 새로운 형태의 시도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즉, 기업이 자율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거나 공정관리 노하우를 발전시켜 안전성을 확보하더라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전례 없는 형태의 새로운 산업간 융·복합이 일어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포지티브 규제패러다임은 식품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와 달리 영미법계는 판례법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관습과 판례를 중시할 뿐만 아니라 시민의 상식적 판단에 근거(관습적인 상식법)한다. 영국에서 태동하고 영연방 및 미국에 의해 발전한 영미법계는 사적 자치를 최대한 용인하기 위해 최소한의 규제를 적용한다. 포지티브의 반대로서 네거티브 원칙을 적용하고 있으며 ‘원칙자유, 예외금지’로 표현된다. 구체적 사안에 따라 사례법을 바탕으로 규제를 운영하지만 사전규제가 중요한 식품, 의약품 등의 규제는 성문화하여 재량의 여지가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유의 추정과 사적 자치라는 핵심 원칙은 그대로 지켜진다.

예를 들어, 자유 추정과 사적 자치의 원칙에 따라 미국의 식품산업체는 FDA(미국의 식품안전규제기관) 산업 가이드라인 등을 따르지 않고 자체적인 기술개발이나 공정관리 등의 노하우로 안전을 확보하였다면 사법 판결에서 면책 받을 수 있다. 다만, 안전관리에 대한 사항이 포괄 규정되어 있으므로 규제가 명시되지 않았더라도 식품사고 발생 시 안전관리를 철저히 했음을 사업자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즉, 사업자 입장에서 포지티브 방식이 아니므로 행정규제의 적용에서 자유롭지만, 사법적인 책임은 매우 까다롭다고 할 수 있다.

대륙법과 영미법의 가장 큰 차이는 결과와 과정에 대한 인식이다. 대륙법은 “규정만 잘 지키면(과정을 잘 관리하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규정을 충실히 이행하면 결과가 나쁘더라도 큰 책임을 묻지 않는다. 사고예방에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져도 규정이 있으면 지켜야 하고 결과에 상관없이 규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법적 제재를 받는다. 반대로 결과가 나쁘더라도 규정을 잘 지켰다면 법적 제재를 가하기 어렵다. 과정을 관리하도록 만든 법체계를 가지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으려고 하니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식품사고가 발생하면 식품법령에서 정한 과정을 충실히 이행한 사업체는 큰 제재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는 식품사고의 책임이 있는 식품기업체에 대하여 일벌백계를 요구하지만, 국가는 더 많은 절차규정을 만드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식품사고에 대한 정당하고 비례적인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정서는 영미법계의 국민정서와 일치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응방식은 영미법계와 같은 무거운 사법책임이 아니라 대륙법계의 특징인 더 많은 규정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규정과 법은 더 많아지지만 소비자의 요구와 그에 대한 대응사이에는 부조화가 나타난다. 게다가 규정이 많아지는 만큼 식품사고가 줄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런 규제 틀로는 식품사고를 해결할 수 없고 식품산업의 발전을 견인할 수도 없다. 식품안전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더 많은 규정과 규제만이 만들어질 뿐이다. 식품안전처럼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끝없이 도입되는 분야에서는 규정이 현실을 따라가기란 만만치 않다. 또 적시에 새로운 규제를 신설하더라도 산업체마다 처한 여건이 달라 시장의 모든 반응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이것이 바로 영미법체계의 장점을 식품안전에 도입해야 할 근거가 된다.

4차 산업혁명 파고 속 신기술·서비스 개발 규제의 틀에 갇혀
대륙법系 ‘식품위생법’ 기술 변혁기에 영미법 자율권 가미를
신산업 모델 공유경제, 식품에 적용 땐 혁신적 사업 환경 조성

최근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규제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정부는 핀테크, 교통, 보건의료, 에너지 분야 등에서 일부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했다. 규제샌드박스는 기존의 규제입법이 명확히 반영하지 않은 새로운 상품이나 거래방식을 도입하고자 할 때, 제한된 조건 하에서 시험적으로 자유롭게 운영하도록 허가하는 규제개혁 수단이다. 이를 통해 사업자는 다양한 혁신 기술과 모델을 시장 출시 전에 시험하고 실시간으로 검증할 수 있다. 규제당국은 혁신의 영향과 효과를 파악하고 모니터링 함으로써 향후 이를 보완할 입법사항을 도출할 수 있다. 이는 시장의 발전 속도와 규제 및 입법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사업자에게는 다양한 리스크(법적·행정적·경제적)에 따른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즉, 규제샌드박스는 사회실증의 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나 비즈니스 모델의 실현가능성을 시험해 그에 대한 대응책을 창출하고자 한다.

식품산업의 최고 이슈 중 하나는 공유주방(shared commercial kitchen)이다. 우리나라 「식품위생법」은 1962년 제정 당시 상황을 반영하여 만들어진 법으로, 단속과 처벌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영업자를 부동산에 기반 하여 관리했다. 현재는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주방 사용자 간의 교차오염에 의한 식중독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1개 주방에서 2명 이상의 서로 다른 사업자의 영업을 금지한다. 그러나 공유주방은 사람 간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동산과 부동산을 공유하는 새로운 모델이다. 그 기반은 자연히 사람 간의 네트워크이고 현재 부동산 중심의 「식품위생법」으로는 이러한 변화를 수용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나라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다행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확히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규제샌드박스를 활용하고 있다. 현행법으로 금지되는 공유주방 시범사업을 2년간 한시적 허용하도록 했다. 1호 공유주방은 한국도로공사의 ‘고속도로 휴게소 공유주방’이다. 동일한 주방 및 조리시설을 이용하지만 주간과 야간 영업을 달리해, 주간에는 휴게소 운영업체가 야간에는 식품창업자가 운영하고 있다. 이 모델은 주 52시간 근무에 따라 발생하는 유휴(遊休)주방을 개방해 신규 창업을 유도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훌륭한 모델이다.

2호 공유주방 모델은 위쿡의 인큐베이터 주방(incubator kitchen)으로 공유주방을 통해 식품창업자를 육성하고 배출하고자 하는 공유형 창업 플랫폼이다. 초기 창업을 희망하는 사업가들이 인큐베이터 주방을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자신의 제품을 시험하고 사업 관련 네트워크도 지원받는다. 창업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테스트베드 모델(test bed)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향후 공유주방 사업의 성공은 교차오염의 우려를 어떻게 불식시킬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공유주방 사업자가 주도적으로 식품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안전관리수준을 높일 수 있어야 공유주방이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식품산업에서는 기업가정신을 가진 사업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임대료, 초기 투자비용, 인건비 등은 계속 증가해 창업에 소요되는 비용이 많다. 2018년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신한은행)에 따르면 창업 준비에 평균 8,148만 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식품산업을 창업으로 바라보는 인식도 부정적이다. 미국은 식당 창업을 사업으로 보지만 우리나라는 장사라고 보는 인식의 차이로 인해 외식업 창업을 가볍게 생각하는 측면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식품산업계에서는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이끌 기업가정신이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규제샌드박스와 공유주방은 식품산업에서 기업가정신을 고취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혁신을 가로막고 있던 규제 장벽을 걷어낼 수 있으며, 혁신의 잠재력을 담아내는 법적·규제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공유주방은 식품 창업자의 위험부담을 낮추고 실패를 품어주는 혁신적 사업 모델로 기능할 것이다. 혁신의 성공가능성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는 규제샌드박스와 실패의 부담을 낮추는 공유주방 시범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식품 기업가정신이 꽃 피우길 희망한다.

뿐만 아니라 공유주방 시범 사업을 통해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식품법상 공유주방의 정의와 시설기준 등의 안전관리사항을 정비할 수 있다. 즉, 새로운 식품시장을 창설하고 식품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식품안전규제의 개발이 중요하다. 현재도 시계는 돌아가고 있으며, 2년이라는 유예기간 동안 시범 사업을 통해 법령의 제·개정 및 안전관리기준의 설정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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