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보존의 관점에서 본 우리나라 식품 유통기한 제도의 문제와 개선점-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179)
식량 보존의 관점에서 본 우리나라 식품 유통기한 제도의 문제와 개선점-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179)
  • 하상도 교수
  • 승인 2019.10.14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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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음식 폐기물 줄이기 환경보호 효과도
국내 소비자 의식 전환·소비기한제 도입 필요

지난 9월 27일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과 식생활교육국민네트워크의 “식량낭비 감축을 위한 협력방안 모색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참으로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국내 식량자급률은 지난해 기준 46.7%에 불과해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머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폐기물 중 음식물 폐기물이 30% 가량을 차지하고 있고 음식 폐기 비용도 연간 8천억 원 이상이 든다고 한다. 음식 폐기물이 증가할수록 사회적 비용 부담은 당연히 증가돼 버려지는 음식으로 인한 식량 낭비를 막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하상도 교수
△하상도 교수

美 트럼프 정부는 지난 4월 “2030년까지 미국의 식량낭비를 현재의 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3개 정부 부처와 민간단체가 협력해 추진한다고 선언했다. 이 세상에서 식량을 가장 많이 낭비하는 미국이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음식 폐기물을 줄이겠다고 한 것은 의미가 매우 크다. 또한 네덜란드의 식품유통체인 업체인 Ahold Delhize도 슈퍼마켓에서 나오는 음식폐기물을 50% 줄이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식량낭비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이를 줄이기 위해 기업과 국가가 노력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특히 경제적 관점을 넘어 음식폐기물이 발생시키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줄여 지구를 보호하자는 환경보호 운동으로 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특히 미국 내 버려지는 식품은 매년 약 200조원 규모인데, 이 중 약 20%가 유통기한 표기의 오해에서 비롯돼 아깝게 버려진 것이라 한다. 그래서 美 FDA가 음식물 섭취기한에 대한 소비자 혼란 방지와 멀쩡한 식품의 폐기를 줄이고자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게 운영 중인 유통기한 표기 방식을 표준화할 것을 제안했다. 현재 미국의 식품 섭취기한 표기법은 식품의 수명과 판매기한 등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이를 품질유지기한(Best If Used By)으로 표준화 한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사정을 살펴보자. 유통기한 임박 식품은 물론이고 품질유지기한 임박 식품까지도 마트에서 반품, 폐기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이고 이들 제품은 푸드뱅크나 복지시설에서 조차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소비자는 유통기한이 임박했거나 경과된 제품을 무조건 먹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 아까운 음식이 폐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11년 식량안보재단의 ‘유통기한 경과로 인한 폐기식품 발생현황과 감축안’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통기한 전후로 폐기되는 우리 가공식품은 연간 6천억 원 수준이고 이중 유통기한 전에 폐기되는 경우가 35%에 달했다고 한다.

반면 일본은 오래 전부터 유통기한이 아닌 소비기한(제품의 수명)과 상미기한(품질유지기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라면, 레토르트식품, 발효식품, 과채류 등 건강상 문제없는 상미기한 임박 식품전문점이 60~70%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우리 식품산업계는 현재의 유통기한 표시가 소비기한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단순히 시간만 연장되는 소비기한 제도 도입으로는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고 식품 폐기물 감소효과 또한 크지 못해 콜드체인 등이 뒷받침된 ‘시간과 온도’를 함께 고려한 합리적 소비기한 도입이 현실적이다.

지난 2001년에 20개 사회단체가 모여 결성한 생활환경운동여성단체연합은 이듬해 ‘식량낭비 저감화를 위한 음식물류 폐기물 줄이기 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음식물 쓰레기 없는 날 캠페인 등을 펼쳤으나 국가 정책의 일관성 부재로 시민운동에서 범국민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해 실패했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현재의 유통기한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현행 ‘품질유지기한’ 제도는 유지하되 이와 함께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도입해 진정한 소비자를 위한 정책이 되기를 바란다. 소비기한 제도의 확산이 기업만 배불려 주는 제도가 아니라 식량 낭비를 줄여 경제적으로도 이익일 뿐 아니라 온실가스 저감화로 환경에도 도움이 되고 소비자가 집에서 언제까지 먹을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려주는 일석이조의 제도라는 점을 국민에게 알린다면 보다 쉽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유통기한 임박 및 품질유지기한 경과 제품에 대한 판매 및 기부제도가 외국처럼 활발히 도입돼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선 대국민 인식 개선과 기부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 사회적 공감대가 우선돼야 한다. 식량 자급율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우리 국민들의 식품에 대한 유통기한, 품질유지기한, 소비기한 관련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소비자단체와 산업계, 정부 모두가 힘을 합쳐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여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중앙대학교 식품공학부 교수(식품안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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