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소비기한 유예’ 5년 추가 2031년 시행
우유 ‘소비기한 유예’ 5년 추가 2031년 시행
  • 황서영 기자
  • 승인 2021.07.20 0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낙농가·유업계 반색…무관세 수입산 맞서 경쟁력 제고·콜드 체인 강화 시간 벌어
국내 냉장온도 선진국보다 높아 변질 사고 우려에
2026년 미국 등 멸균유 관세 철폐로 불리한 상황
중소 유업체 대리점, 사업형 대리점에 밀려날 수도
10년간 유통 환경 개선 등 정부 후속 대책 지원을

음식물과 포장 쓰레기의 증가를 줄이기 위한 소비기한 표시제도의 도입을 앞둔 가운데 우유의 경우 그 적용 시점이 2031년까지 미뤄지게 됐다.

13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소비기한법안(식품표시광고법 개정안) 수정안이 통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의견제출과 낙농상황을 고려해 우유의 경우 유예기간을 5년 추가해 사실상 2031년에 도입키로 의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7일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우유의 경우 2026년에, 타 품목은 2023년에 도입하는 걸로 의결했으나 이보다 5년 더 시간을 번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소비기한 표시제에 대해 반대 의견을 피력하던 낙농가와 유업계에겐 희소식이 됐다. 특히 현 냉장유통 체계 개선과 2026년 EU 관세철폐를 앞두고 수입원유와의 경쟁에 대한 고민을 떨쳐내지 못하던 유가공업계는 이 기간 동안 국내 유가공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각오를 내비치며 정부 차원의 행정적·제도적 지원을 요청했다.

사실상 우유의 소비기한 도입에 관련 업계가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식품들 중에서도 유제품의 변질 가능성은 비교적 높고 유통 환경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현재 우유 유통기한은 실제 섭취가 가능한 기간의 60~70% 선에서 산정하고 있다. 시중에 많은 유제품은 보통 발효유가 12일 전후, 일반 살균유가 13일 전후로 유통기한이 설정된다. 그러나 개봉하지 않은 우유를 냉장보관할 경우엔 소비기한은 최대 45일(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 기준) 가까이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법정 냉장유통온도가 잘 지켜질 때에 한해서다. 우리나라의 법적 냉장 온도 기준(0~10℃)은 선진국(0~5℃)보다 높은 데다 마트에서는 우유가 오픈 매대에 진열돼 변질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 생산부터 소비자 섭취까지의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제품 변질에 개입하는 변수가 그만큼 더 많아진다.

A 유업체 관계자는 “유통 과정의 불안전한 냉장관리 실태를 감안할 때 소비기한 제도를 도입 시 식품 변질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더불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려내기 어려운 데 더해 많은 경우 제조사가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며 “소비기한 도입 이전에 유통업계를 감시할 수 있는 철저한 사전 준비부터 마련해야 한다. 유통 기준이 마련되지 않고 소비기한 시행 시 변질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위험이 높아지는 가운데 그 책임은 제조사의 신선도와 안전성이 경쟁력인 국산 우유 및 유제품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쌓여 결국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관세 철폐로 인한 수입 유제품과의 경쟁에서의 대응책 확보도 화두에 오르고 있다. 오는 2026년부터 EU와 미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고, 2033년에는 낙농 강대국인 호주와 뉴질랜드의 관세 철폐를 앞두고 있다.

B 유업체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멸균유보다 살균유가 유통 후 보관이 더 까다롭고 문제가 될 소지가 높기 때문에 소비기한 시행은 살균유보다 멸균유 소비에 유리하게 다가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멸균유가 주요한 수입 우유의 국내 점유율을 높일 여지가 다분해 대응책 없이 무작정 소비기한을 적용한다면 이는 수입 규제 완화와 같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현재도 국산에 비해 3분의 1 가격에 불과한 수입 우유가 2026년부터 무관세로 유입되는 가운데 국내 낙농산업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현 국내 시장 상황에 소비기한 도입 시 중소 유업체 및 대리점들의 존폐 여부도 문제가 되고 있다. 매일 납품하는 방식의 ‘일배식품’인 우유의 특성상 기존 유통기한 때문에 소량씩 매일 납품하던 형태가 소비기한 도입으로 납품주기가 길어지면 지방 소형 대리점들은 지금보다 어려움을 겪게 되며 자연히 이를 중심으로 사업 중인 중소 유업체들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C 유업체 관계자는 “소비기한 표시제의 도입으로 시중에서 유통할 수 있는 기한이 늘어난다면 우유 대리점을 중심으로 사업 중인 중소 유업체의 존폐 여부가 불분명해진다. 현재까지 지역에 연고를 둔 지역 대리점이 나름의 자생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기존 유통기한 때문에 소량씩 매일 납품하던 형태가 소비기한의 도입으로 변하게 되면 대형화돼 있는 종합대리점, 사업형 대리점들이 타지역 상권까지 다 장악하게 되는 것이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며 “1개의 대리점이 많은 메이커를 가지고 유통업체에 많은 지원금을 주고 입점 판매하고, 할인 행사를 지속한다면 지역 대리점들은 존폐 위기가 닥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유가공협회 관계자는 “소비기한 도입의 정책 취지나 목적은 공감하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많아 유업체들의 우려가 많았다. 그래서 최소한 제도 도입에 앞서 유예기간을 많이 가졌으면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던 것”이라며 “더욱이 관세 철폐로 우유 시장이 개방될 위기에 놓이면서 유예기간으로 주어진 10년간 국내 유가공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품질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지키기 위한 콜드체인 체계 강화에 집중해나가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낙농육우협회 관계자는 “2026년 수입 유제품 관세 철폐가 예정돼 있는 만큼 10년의 유예기간 동안 낙농기반 유지를 위한 농정부처의 제도 개혁과 병행해 유가공업체 냉장시스템 지원 등 식약처의 냉장유통환경 개선정책 추진, 소비자교육 활성화를 통해 소비기한 도입의 부작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며 범정부차원의 실질적인 후속대책을 강력히 요구했다.

소비기한 도입에 따른 업계 악영향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지원 요청에 정부 관계자는 “향후 10년 유예기간 동안 낙농기반 유지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과 함께 냉장유통환경 개선 및 소비자 교육 등 정부의 실질적인 후속대책을 계속 진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업계에 따르면 우유 등을 포함한 식품 소비기한 표기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향후 총리령을 통해 제정, 발표될 예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