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위기 극복 위한 ‘식량안보특별법’ 제정 촉구
식량위기 극복 위한 ‘식량안보특별법’ 제정 촉구
  • 이재현 기자
  • 승인 2022.09.26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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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안보연구재단 세미나…보호무역 회귀 의존도 높은 우리 경제에 아킬레스건
양곡관리법 등 구체적 방법 없어 구색 맞추기
특별법 통해 목표·권한과 책임·예산 명시해야
위기 대응 시스템 만들고 GMO도 연구 절실

“대한민국 곡물자급률은 2020년 기준 19.3%로, OECD 가입 38개국 중 최하위입니다. 기후변화, 전염병 펜데믹, 러-우 사태 장기화에 따른 국가간 분쟁 등 전 세계적으로 식량안보가 현실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도 선진국과 같이 ‘식량안보특별법(가칭)’ 제정 등 하루속히 이 문제에 대비해야 합니다.”

식량안보가 전 세계 화두로 떠오르며, 절대적 곡물 수입국인 한국이 다가올 식량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식량안보특별법’ 제정 등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제기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일 식량안보연구재단(이사장 박현진)은 안암동 고려대 세미나실에서 전문가들을 초청해 ‘대한민국 식량안보특별법’ 청사진을 제시하고, 기존 관련 법령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한편 선진국 관련법을 분석하는 등 국내 식량위기를 대비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박현진 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은 “과거 기후변화 등으로 식량위기가 감지됐다면 현재는 전염병을 비롯한 각 국가간 신 냉전시대로 글로벌 무역자유화 시대가 끝나고 자국 우선 보호무역시대로 회귀하고 있어 곡물수입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더욱 큰 위험요소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며 ‘식량안보특별법’ 제정 당위성을 강조했다.

박 이사장이 주장하는 ‘식량안보특별법’의 핵심은 나라의 식량이 모자라는 비상시를 대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법으로 정하는 것이다. 식량이 부족한 비상상황을 사전에 파악하고 국민에게 미리 계획된 행동지침을 알리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

물론 국내에도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 ‘양곡관리법’ ‘농지법’ ‘해외농업·산림자원 개발협력법’ 등 식량안보 관련 법령을 통해 곡물자급률 달성을 명시하고 있지만 자급률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표시방법(기준)이 규정돼 있지 않아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광호 박사
이광호 박사

‘식량안보특별법’ 제정안 모델개발 과제 연구원으로 참여한 이광호 박사는 “‘식품산업기본법’ 제14조3항 식량 및 식품의 자급률 항목에 △전체 식량(식용곡물) 및 주요 곡물의 식량자급률 △전체 곡물자급률 및 주요곡물의 곡물자급률 등이 명시돼 있지만 자급률 목표치 설정과 운용 관련에 대한 구체적인 시행령·시행규칙 등 개별법령이 없어 구색갖추기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공공비축을 위한 양곡관리법에도 사실상 대상은 쌀만 2개월치 소비량이라고 명시됐을 뿐 자급률 0.5%, 7.5%에 불과한 밀과 콩의 비축량을 연간 생산량의 25%로 설정한 것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박사는 “기본적 사항만 규정된 현재의 기본법만으로는 정책 집행에 있어 한계가 있다. 권한과 책임, 예산 등을 세부적으로 명시한 ‘식량안보특별법’을 제정해 식량자급률 제고와 달성을 위한 지원과 목표 책임제 등을 법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선진국의 경우 체계적인 식량안보 정책을 펼치고 있다. 또 다른 과제 연구원으로 참여한 손홍석 고려대 교수는 일본, 중국, 미국 등의 식량안보 정책을 예로 들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은 ‘식료·농업·농촌기본계획’에서 규정해 종합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공급열량기준 50%, 생산액 기준 70%를 설정하고 있다. 10년간 정책의 기본방향과 주요시책을 제시하고, 5년마다 재검토해 필요에 따라 변경한다.

자급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식량공급력 제고, 수요에 대응한 생산, 농업과 식품산업 연계, 소비자대책 등의 조치를 강구하고, 자급률 향상을 위해 생산·소비 양면에서 과제를 제시하는 한편 생산자, 소비자, 국가가 연대해 목표 수치를 달성하는 체제다.

특히 식량위기 경보가 감지될 경우 ‘식량안전보장 매뉴얼’에 따라 농림수산성대책본부, 정부대책본부가 나서 공급확보 대책, 가격·유통 안정 대책 등을 총괄한다.

손홍석 고려대 교수
손홍석 고려대 교수

중국의 식량안보 체계는 국내 생산, 비축, 수출입으로 구성되며 지방정부의 역할을 크게 강조해 각 성(직할시, 자치구)의 행정 책임자가 해당 지역의 수급균형과 식량 가격안정을 책임진다.

식량안보 정책은 2008년 7월 제정한 ‘국가식량안보중장기계획요강’에 따라 식량자급률 95% 이상, 곡물자급률 100%를 유지하도록 하는 자급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역시 ‘농업개선 관련 법’에 의해 농산품 관련 프로그램, 농업용 토지 보전, 농업 무역 촉진 및 식량 원조, 영양, 농업 신용, 농촌 개발, 농업 연구, 사유지 임업, 에너지, 원예 및 유기농업, 농작물 보험을 위한 정책 등 구체적인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중국 자급률 95% 제시…일본 5년마다 정책 검토
제분·전분당 등 일본처럼 2∼3개월치 보유를

우리나라도 ‘식량안보특별법’ 제정을 통해 선진국과 같은 식량안보 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 박현진 이사장의 주장이다.

박 이사장은 법 제정을 통해 전체 인구 6%에 해당하는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1인당 연 120kg의 쌀을 무상으로 지원해야 하며, 통일을 대비한 쌀 120만 톤 비축제도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매년 60만 톤의 쌀을 비축해 2년 후 쌀가공식품산업 방출한다면 쌀가공식품 원료공급이 안정화돼 산업이 활성화되고 쌀 소비도 증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약 150만 톤 쌀 저장을 위한 식량콤비나트 건설에도 초석이 마련될 것이며, 민간기업의 원료 재고량 확대를 위한 정부 지원도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이사장은 “현재 제분, 전분당, 식용유제조업체들을 보면 약 1개월분의 원료 곡물 재고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우리도 일본과 같이 상시 재고량 2~3개월분을 운영하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식량 위기를 대비해 150만 톤 식량을 추가 비축하고, 현재 350만톤 수준의 쌀 생산량도 400만톤 이상으로 늘려야 하며, 민간기업의 해외 곡물유통사업 지원 역시 강화해 세계 곡물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4대 곡물 메이저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러-우 사태를 겪으며 각 국가간 분쟁으로 곡물 수출 제약으로 국내 식품업계 피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민간기업의 해외 농업 협력사업 역시 강화하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현진 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박현진 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특히 박 이사장은 생명공학기술의 연구지원 근거 조항을 넣어 장기적으로 세계 식량생산 기술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기후변화와 인구증가로 인한 식량위기를 막을 수 있는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이사장은 “우리나라는 GMO가 일부 시민단체들의 반대운동으로 관련 기술개발이 거의 중단된 상태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비타민A를 강화한 황금쌀, 해충 저항성 유전자를 삽입한 해충저항성 옥수수 등 GMO 연구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져 해충저항성, 건조저항성, 제초제내성, 질병저항성, 영양성분 증가 등 식량 위기를 대비한 생명공학기술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식량안보특별법을 통해 GMO 연구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식물성 발효식품, 대체단백식품 등 푸드테크 선진화 및 식량낭비줄이기 대국민운동 전개, 국가 식량 위기대응 시스템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현재 대한민국은 식량안보 위기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흉년이 들거나 세계 곡물파동이 일어나면 그 시기에 걱정만 하되 시간이 지나면 아무런 조치 없이 모두 잊어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정부나 국회가 일관성 있게 관리하지 않을 시 민간에서라도 세계 식량상황 들여다보고 분석 및 평가 후 자료를 축적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요구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새 국면 맞은 식량 위기 ‘특별법’ 안전 장치 요구
자급률 정립하고 재고분, 가공용 쌀로 공급 확대를
해외에 농지 마련…수입 곡물 높은 가격도 논의 필요
새만금에 식량 콤비나트 운영 위한 시설 확충 추진

이에 이철호 고려대 명예교수는 “현재의 식량위기는 과거 기후변화가 아닌 신냉전구조로 빚어진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곡물 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큰 위기가 될 수밖에 없다. 하루속히 ‘식량안보특별법’을 제정해 위기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재선 경희대 명예교수는 “식량 비축량을 최대한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비축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대체단백식품 등 축산물을 대체할 수 있는 가공식품 활성화를 통해 축산물 사료로 소비되는 곡물을 줄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식량안보를 위한 협의체 구성과 대국민 식량안보 의식 고취를 위한 홍보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는 “자급률 45%의 식량과 20% 곡물의 개념 정립이 선행돼야 하고, 약 380만톤에 달하는 쌀 재고분을 적정 가격에 가공용 쌀로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돼야 한다. 특히 식량위기 속 대안이 될 수 있는 GMO 허용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임에도 일부 시민단체 눈치를 보며 나몰라라하는 것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개선돼야 할 부분”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권대영 박사는 “생산 문제보다는 결국 가격 문제다. 특히 쌀을 제외한 콩, 옥수수 등 수입 의존도가 높은 곡물은 가격 경쟁력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수완 전북대 의대 교수는 “쌀 재고량도 문제지만 갈수록 용지면적이 줄어 자급률 향상에 한계가 있다. 해외 농지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특별법에 명시됐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이군호 식품음료신문 대표는 “최근 극단적인 기후변화, 극단적인 국제정서, 질병 문제 등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전 세계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생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문제가 있다. 수요문제도 동시에 해결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의견 개진했다.

신기태 농식품부 식량공급망위기대응반 사무관은 “특별법 내용을 보면 크게 자급률 향상과 안정적인 해외곡물유통망 확보를 꼽을 수 있다. 농식품부는 자급률 향상을 위해 분질미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공급 과잉, 재고 문제 등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해외 유통망 확보 방안은 신규 예산을 확보해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에 노력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김춘진 aT 사장은 “빌게이츠는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20년 이내 치사율 50%에 달하는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럴 경우 전 세계 교역이 중단돼 우리나라는 엄청난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을 OECD 전체 국가 중 최하위다. 세부내용을 살펴보면 정치와 국가의 노력이 특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량위기에 대해 국가가 심각할 정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법 제정을 위한 움직임과 동시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aT는 식량위기 극복을 위한 식량콤비나트 운영을 위해 벌크 전용 부두, 새만금 등 건설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이종규 쌀가공식품협회 상무는 “모든 계획은 예산이 수반돼야 한다. 식량안보특별법을 통해 식량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해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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