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 속 피페론구민 항암 효과 제한적 확인
생강 매운맛 분자 관절 활액막염에 긍정적
‘카레·향신료로 100세 시대’ 식품과학회-오뚜기 심포지엄
카레 속 노란빛깔을 내는 ‘커큐민’, 독특한 향과 맛을 가진 ‘생강’ ‘후추’ 등 향신료의 생리활성과 건강 개선 효과에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거쳐 온 만큼 이들의 면역 증강과 만성질환 예방 효과 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6일 서울 aT센터에서 한국식품과학회 주최, 오뚜기 후원으로 열린 ‘제7회 카레 및 향신료 국제심포지엄’에선 ‘카레·향신료로 맞이하는 100세 시대’라는 주제로 국내·외 대표 전문가들이 다양한 향신료의 생리활성 및 건강 개선에 대한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심포지엄에서 한양대학교 최제민 교수는 ‘커큐민의 면역조절 효과’를 주제로 발표하면서 “카레의 주 재료인 강황 속 커큐민은 생물학적 활성의 다양한 측면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됐으며, 그 결과 강력한 항산화 및 항염증 화합물로 알려져 왔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T세포, B세포 증진을 통해 체액성 면역을 강화, 코로나19 및 사스 등 전염성 질병 예방 혹은 치료까지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T세포는 인체 세포 속 항원을 인식해 항체를 만들어낸다. 음식 섭취를 통해 T 면역 세포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는 많이 진행돼 왔다. 면역 세포 역시 몸 속의 세포라는 점 때문에 영양소가 풍부해야만 그 활성도도 높아지기 때문. 강황에 많이 포함돼 있는 커큐민은 면역 세포의 단백질 수치를 증가시켜주기 때문에 활성도에 상당한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양한 분화형태를 가진 T세포 중 최 교수 연구진은 항체를 만들어내는 B세포의 반응이 일어나도록 자극하는 ‘TFH(Follicular helper T cell) 세포’에 주목했다. 최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실험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일정한 양의 커큐민을 매일 주입한 실험군이 그렇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T세포의 기능과 B세포의 반응이 더 활성화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카레 속 커큐민이 감염성 질환 및 암에 대한 체액성 면역 강화에 효과적인 보충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최 교수의 설명이다.
최 교수는 “아직 특정 T세포의 활성화를 높이는 약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커큐민의 T세포 분화 형태에 따른 분자 메커니즘은 더 자세히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라면서 “또한 쥐를 통한 실험에서 T, B세포의 활성화 외에도 커큐민의 더 강하고 다양한 항체의 생성을 유도하는 Isotype class-switching도 긍정적인 효과를 확인한 바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연세대학교 변상균 교수는 ‘생강 및 후추의 류마티스 관절염과 암에 대한 치료 효과’를 주제로 생강의 류마티스 관절염 억제 효능과 후추의 표적 항암제 가능성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변 교수는 “류마티스 관절염은 주로 활액막의 염증과 관절 손상을 특징으로 하는 만성 면역 매개 장애다. 류마티스 관절염 발생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세포인 FLS(fibroblast-like synoviocytes)의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후보 분자를 찾기 위해 식품·식물 추출물 315개의 효과를 테스트한 결과 말린 생강에서 가장 높은 결과가 나왔다”며 “활성 화합물에 대한 추가 분석을 통해 생강의 매운 맛을 내는 분자 중 8-쇼가올(shogaol)에서 활액막염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변 교수 연구진은 후추 속 피페론구민(piperlongumine)의 항암 효과 또한 제한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피페론구민이 과다한 암세포를 표적화해 사멸했고, 종양 조직에서의 스트레스 수준을 완화함을 확인한 것.
변 교수는 “제한적인 성공이었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향신료 화합물의 만성질환에 대한 잠재적인 건강상 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최영진 교수는 ‘폴리페놀류의 안정성과 생체이용률 향상을 위한 새로운 운반시스템 개발’을 주제로 ‘피커링 에멀젼(Pickering emulsion)’ 기술을 이용한 커큐민의 안정성과 흡수율 향상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에멀전’은 물 속에 기름방울들이(또는 기름 속에 물방울이) 안정적으로 분산된 구조를 뜻하며, ‘피커링 에멀전’은 주로 에멀전 상태를 위해 사용하는 화학적 계면활성제 대신 물리적인 힘인 고체 입자를 사용해 안정시키는 방법이다. 식품 폴리페놀인 커큐민은 지용성의 성분으로 수용성인 우리 인체에 흡수되기 어렵고, 위산 등의 이유로 흡수되기 전에 분해돼 버린다는 것인데 이 피커링 에멀전 구조를 활용하면 이 흡수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최 교수의 설명.
최 교수 연구진은 커큐민 에멀전의 성질 안정화를 위해 층별 기술을 사용한 키토산 코팅을 시도, 시험관 내 소화 모델을 구축해 실험했다. 그 결과 코팅된 에멀전은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크기 변화 없이 위를 지나 소장에서 상대적으로 느린 지방분해 패턴을 나타냈으며, 비교적 빠르고 큰 투과 패턴을 보였다.
최 교수는 “커큐민 에멀전의 키토산 코팅은 장의 상피세포를 통해 점막 접착력과 투과성을 향상시킨다”고 설명하며 “이번 연구 결과는 커큐민과 같은 식품 폴리페놀을 포함하는 경구 전달 시스템에 대한 합리적인 설계를 촉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심포지엄에는 대학교수, 언론인, 식품 및 의약학 관련 연구원 등 다양한 계층의 인사 약 200여 명이 참석했다. 현장에는 카레 및 향신료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다양한 향신료와 관련 제품도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