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마진이 충분히 반영된 소비기한-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317)
안전마진이 충분히 반영된 소비기한-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317)
  • 하상도 교수
  • 승인 2022.12.12 0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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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기한 도입, 업계 환영-소비자는 변질 우려
수명보다 짧게 설정…유통 중 주의 사항 지켜야

식약처는 내년 1월 1일부터 판매가 가능한 기간인 ‘유통기한’ 대신해 음용·취식 가능 기간인 ‘소비기한’을 도입한다. 식약처는 올부터 2025년까지 식품공전에 있는 200여 식품유형 약 2천 품목의 소비기한을 설정하는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올해는 우선적으로 50개 식품유형 430여 품목에 대해 소비기한 설정실험을 추진 중이다. 23개 식품 유형, 80개 품목의 소비기한 참고값 등을 수록한 ‘식품유형별 소비기한 설정보고서(2022.12.1.)’에 따르면 두부는 기존 17일(유통기한)에서 23일(소비기한)로 늘어난다. 햄은 38일에서 57일로, 발효유는 18일에서 32일로 증가했다. 또 가공유 16일→24일, 과자 45일→81일, 과채음료 11일→20일, 과채주스 20일→35일, 어묵 29일→42일, 영유아용 이유식 30일→46일, 유산균음료 18일→26일 등이다.

△하상도 교수(중앙대 식품공학부·식품안전성)
△하상도 교수(중앙대 식품공학부·식품안전성)

사실 그 간 사용해 왔던 유통기한은 ‘판매할 수 있는 날짜’를 말한다. 즉,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도 팔지 못할 뿐이지 구매 후 그 이상 기간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확히 유통기한을 얼마만큼 지난 것까지 먹을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식품의 종류마다 다르고 제조사와 브랜드, 보관상태 등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자들도 식품의 수명을 정확히 알려주는 소비기한을 원했던 것이다. 12월 3일 제 27회 소비자의 날을 맞아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이 올 한해 화제가 됐던 소비자 10대 뉴스를 선정했는데, 그 중 소비기한 표시제가 선정될 정도로 시장에서 반응이 뜨겁다.

우리나라에서 식품에 ‘유통기한’ 표시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85년부터다. 1962년 「식품위생법」 제정 당시에는 ‘제조일자’만 표시됐었다. 2002년 7월부터는 유통기한을 제조업체별로 자율적으로 설정토록 허용했는데, 식품안전인증제(HACCP) 등 선진 위생관리시스템이 도입됨으로써 같은 품목이라도 회사별 시설, 인력, 위생수준이 달라 식품의 수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업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앞으로 재고, 반품률 관리가 수월해질 것으로 판단한다. 그동안 상태가 멀쩡하더라도 유통기한이 지나면 폐기해야 했는데 실질적인 식용 가능 기간을 표시하는 소비기한이 도입되면 보관기관이 길어져

불필요한 쓰레기 배출이 최소화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소비자 사이에선 기한이 늘어난 만큼 유통과정에서의 문제 발생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고 소비기한을 믿고 있다 집에서 보관하던 음식이 상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소비기한은 품질 안전한계 기간을 80~90%까지 늘렸고 이에 유통과정에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그러나 소비자의 우려와 달리 소비기한 이내라도 유통과정에서 변질되거나 가정에서 소비기한 내 변질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소비기한도 바로 그 다음 날 상하는 것이 아니라 유통 중 온도남용이나 가정에서 보관 실수 등을 고려한 충분히 안전마진을 두고 산출하기 때문이다.

안전계수는 제조과정 중의 위생관리 수준과 실제 유통환경 등을 고려하여 종합적인 판단을 통해 산정하는 값으로 제품의 특성과 실제 유통환경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영업자가 안전관리 기준과 위험 수용도에 따라 결정한다. 즉, 소비기한은 열악한 보관조건에서 저장실험을 통해 찾아낸 ‘식품의 품질 및 안전 한계기한’에 0.7~1.0 사이의 안전계수를 추가로 반영해 식품의 수명보다 더 짧은 기간으로 설정한다. 이 안전계수 값은 품목별로 제품의 배합, 수분활성도, 산도, 보존료 사용 등 내적요인과 가열공정, 포장 재질 및 포장방법, 온도 등 유통조건, 구매 후 운반 시 소비자 취급 등 외적요인을 고려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결정된다.

하지만 안전계수도 식품판매업자나 소비자의 통상적인 수준을 벗어나는 부주의한 취급에 따른 변질까지는 책임질 수 없다. 보관기준 위반이나 소비자 부주의는 기존 유통기한 표기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식품판매업자가 냉장·냉동 제품을 뙤약볕에 오랫동안 방치하거나, 상온(15~25℃) 또는 실온(1~35℃) 제품을 더 높은 온도에 방치하는 경우가 해당된다. 소비자가 한 여름에 냉장식품을 구매한 후 자동차 트렁크에 오랫동안 두거나, 마트에서 구매한 식품을 바로 냉장보관하지 않고 실온에서 오랫동안 방치한다면 안전계수를 0.7이 아니라 그 이하 값인 0.5, 0.3을 반영하더라도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단순히 시간만 연장되는 소비기한 제도의 도입으로는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고, 식품폐기물 감소 효과도 크지 않다고 본다. 유통·판매단계에서 콜드체인 도입, 개방형 냉장고에 문 달기 등을 통해 보관온도를 안정적으로 준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소비자의 인식과 행동이다. 소비자들은 섭취 전까지 소비기한 표시를 잘 확인하고, 장보기 후 식품 취급상의 주의사항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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