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면 세계적 열광에 견제구 날리나
K-라면 세계적 열광에 견제구 날리나
  • 이재현 기자
  • 승인 2023.02.13 0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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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업체 문제 아냐…정부가 나서 사태 진정시켜야”
시민단체 등 “국내 업체 안일한 대처…재발 방지 조치를”
발암물질 ‘EO 논란’ 유럽 이어 아시아 대만서 첫 발생
대다수 국가 EO와 2-CE 기준 없어…EO로 환산 발표

한국을 대표하는 K-푸드 대표주자 라면의 발암물질 논란이 거세다. 업계에선 전형적인 ‘K-라면 흠집내기’라는 주장을 펼치는 반면 일부 시민단체 등에선 국내 라면업계의 ‘안전불감증’이 가져온 결과라고 문제시하고 있다.

지난달 초 대만 식품약물관리서(TFDA)는 국내 라면 제품인 ‘신라면 블랙 두부김치 사발’에 대한 잔류농약 검사에서 발암물질인 ‘에틸렌옥사이드(EO)’가 기준치(㎏당 0.02㎎)를 초과한 0.075ppm이 검출돼 전량 폐기를 명령했다. 동월 말에는 태국 식품의약청(FDA)도 해당 제품의 일부 유통을 중단시키고, 제품 분석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수출 라면 EO 논란은 2021년 5건, 2022년 8건 모두 유럽에서만 발생했다. 아시아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EO는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인체에 발암성이 확인된 물질로 분류한다. 주로 살균 목적으로 사용되지만 장기간 노출되면 암 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중추신경이나 말초신경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생산업체는 “검출된 물질은 EO가 아니라 ‘2-클로로에탄올(2-CE)’이다. 2-CE는 발암물질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대만 식품약물관리서가 2-CE 검출량을 EO로 환산해 EO의 수치로 발표했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2-CE를 발암물질로 분류하지 않는다.

라면업계 한 관계자는 “대만은 원래 EO에 대한 기준치 자체가 없었으나 작년부터 엄격한 기준을 세워 한국뿐 아니라 일본 등 라면들이 대만의 EO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하지만 이 같은 조치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K-라면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실제 작년 국내 라면 수출액은 전년 대비 13.5% 증가하며 사상 처음 7억6500만 달러를 돌파했다. 이중 대만과 태국의 수출은 20% 이상 늘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단순 라면 1개 업체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라면 전체의 문제다. 우리 정부가 적극 개입해 사태를 진정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라면의 발암물질 논란에 업계는 ‘K-라면 흠집내기’ 라는 주장을 내고 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이자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라면을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이다. (사진=식품음료신문)
△한국 라면의 발암물질 논란에 업계는 ‘K-라면 흠집내기’ 라는 주장을 내고 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이자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라면을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이다. (사진=식품음료신문)

전문가들의 시각도 다르지 않다. 대학 식품 관련학과 교수로 이뤄진 한국식품안전연구원의 하상도 원장은 “지난 2012년 라면 벤조피렌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K-라면 ‘흠집 내기’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하 원장에 따르면 식약처 위해성평가 결과 2-CE의 ‘인체노출안전기준’(일일 체중 kg당 0.824mg) 대비 ‘1일추정노출량’은 전 연령에서 0.3%, 3∼6세 영유아는 0.8% 수준에 불과해 안전하다고 결론이 났다. 이어 2-CE는 국내에서 허용된 물질은 아니나 자연 중 비의도적으로 오염되거나 발생할 수 있어 식품(농‧축‧수산물 및 가공식품) 중 2-EC 잠정기준을 30ppm(㎎/㎏)으로 설정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지난 2021년 2-CE 잠정기준을 만들어 EO와 구분 관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대부분 국가에서는 식품 중 EO와 2-CE 잔류기준 자체가 없다. 이번 대만에서 검출한 것도 사실 EO가 아니라 2-CE다”고 설명했다.

하 원장은 “이번 사태는 지난 2012년 발생했던 라면 벤조피렌 검출 사건과 비슷하다. 안전하다고 결론이 났지만 국내에서 회수명령이 떨어지자 대만을 위시한 일본, 홍콩,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앞을 다퉈 회수 조치에 동참해 우리 라면 수출기업에 피해를 끼쳤던 사건이었다”며 “최근 아시아를 위시한 전 세계 식품 경쟁사들은 우리 대표 수출품인 라면이 인기를 끌자 K-푸드를 견제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대만이 가장 흠집 내기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EU와 대만이 EO와 2-CE를 합쳐 관리하고 있는 현재의 불합리한 기준·규격을 코덱스와 연계해 2-CE 잔류량만 별도로 관리하도록 해야 하며, 2-CE도 천연 유래로 검출되는 물질이라는 걸 인정해 잔류허용치를 현실적으로 더 높일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시민단체인 소비자주권회는 성명서를 내고 “‘2-CE’도 상온에서 쉽게 증발하며 증기를 흡입할 경우 독성 증상을 일으킨다.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유럽이 2-CE를 EO와 구분하지 않고 합산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가 있다”며 “국내 라면업계는 그동안 꾸준히 EO 문제로 안전성 논란을 일으켰다. 식약처는 국내에서 판매 중인 모든 제품들을 전수조사하고, 다시는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모 대학 교수는 “이미 수출 대상 국가에 명확한 기준이 설정돼 있고, 라면 스프 발암물질 검출 논란이 그동안 유럽 등을 중심으로 반복됐다는 점에서 국내 라면업계가 안일한 대처를 했다고 볼 수 있다”며 “특히 EO, 2-CE 두 물질이 자연에서 쉽게 유래되는 물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생산업체 관계자는 “하부 원료 농산물의 재배 환경 유래 또는 일시적·비 의도적인 교차오염에서 발생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앞으로는 농산물 검사 과정에 검사 기법을 고도화하는 등 스크리닝을 강화해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식약처도 1분기 유통 식품 안전성 검사에 라면을 포함해 EO와 2-CE 검출 여부를 검사한다는 계획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수출 제품 중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제품의 국내 유통분을 수거해 성분 검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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