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료 쌀 생산연도 표시 의무화…소비 촉진 맞나
원료 쌀 생산연도 표시 의무화…소비 촉진 맞나
  • 이재현 기자
  • 승인 2023.05.09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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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갑 의원 ‘쌀가공산업법’ 개정안…원산지·알권리도
업계 “묵은 쌀, 선택권 없어…시장 위축·부정적 영향
매년 200여 품목 포장재 변경 수조 원…범법자될라”

쌀가공식품에 사용된 쌀의 생산연도와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하는 ‘쌀가공산업 육성 및 쌀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발의에 업계는 동의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원료 쌀 사용 선택 권한이 없는 업계 입장에선 정부에서 공급받아 사용하는 원료 쌀에 맞춰 일일이 포장재를 다시 만들어야 하고, 특히 가격 및 원료 불안정성 등 외부 요인에 따라 원료 사용이 시시각각 달라지는데 이 때마다 포장재를 변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소비자 알권리 강화 및 쌀 소비 촉진이라는 개정안 취지와는 달리 자칫 식품업계 전체를 범법자로 만드는 법이 될 수 있다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윤재갑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쌀가공산업 육성 및 쌀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주 내용은 원료 쌀 생산연도 및 원산지 표기 의무화다.

윤재갑 의원은 “일반 식품의 경우 ‘식품 표시법’에 의거 제품명, 내용량, 원재료명, 제조일, 소비기한 등을 표기하고 있지만 쌀가공식품의 경우 핵심 원재료인 쌀의 생산연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묵은쌀이 햅쌀로 둔갑하거나 소비자가 이를 오인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어 발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쌀 소비 촉진 취지와는 거리가 먼 전혀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는 주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쌀가공식품의 경우 대부분 정부가 비축해 둔 2~3년 묵은쌀을 원료로 사용하는데, 소비자들이 이 쌀로 만든 제품을 소비하겠는가”라며 “오히려 쌀가공식품 시장 위축으로 쌀 소비 촉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가장 큰 문제는 포장재 변경 부분이다. 원료 쌀 선택권이 없는 업계 입장에선 정부가 공급하는 원료 쌀을 무작위로 받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때 평균 200여 개에 달하는 품목별 포장재를 일일이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포장재 변경 비용도 수조 원대에 달할 것이라고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 알권리 부분이나 쌀 소비 촉진이라는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업계가 사용하는 원료 쌀의 유통과정을 전혀 모르고 발의한 법”이라며 “현 원료 쌀 유통시스템은 업계가 쌀의 생산연도를 선택해서 공급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특히 시장 상황 예측이 불가능해 몇 년도에 생산된 원료 쌀만 고집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2022년 생산된 쌀을 사용하다가 원료 불안정성으로 다른 연도 쌀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비일비재한데, 이 경우 다시 포장재를 변경해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것.

이 관계자는 “거래업체와의 납기일에 맞춰 제품을 생산·공급해야 하는데, 원료 쌀 생산연도가 달라져 포장재를 변경하게 되면 상당부분 시간이 소요된다. 거래처에서 이 기간을 기다려주겠는가. 결국 제조업체는 납기일에 맞춰 제품을 생산할 수밖에 없고, 스스로 범법자가 되는 길을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원료 쌀의 생산연도를 표기하게 되면 업계에서는 매년 포장재를 변경해야 한다. 즉 매년 수조 원에 달하는 비용이 발생하는 부분”이라며 “이 법안이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제품 생산 시 원료 쌀을 직전년도 쌀만 사용할 수 있다는 유통법부터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에 윤재갑 의원실은 업계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쌀 소비 촉진이라는 대의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제1 주식인 쌀은 수요와 공급 차원에서 동맥경화 현상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생산은 꾸준하지만 수요는 갈수록 줄고 있다. 그렇다고 강제로 쌀 소비를 요구할 수 없는 만큼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쌀 소비 촉진을 위한 걸음을 내딛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모든 식품은 포장재에 투명성을 띠고 있는 반면 쌀은 예외되고 있다. 소비자 알권리 차원에서라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개정안에 대한 업계 의견은 현재 식품산업협회, 쌀가공식품협회 등 관련 단체에서 수렴해 농식품부, 복지부, 식약처 등에 제출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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