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에 치이는 韓…국내 농식품 수출 먹구름?
美·日에 치이는 韓…국내 농식품 수출 먹구름?
  • 이재현 기자
  • 승인 2019.08.12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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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한파…개도국 지위 상실 땐 쌀 등 수입 농산물 관세 대폭 인하 불가피
무역 분쟁 지속 땐 최대 시장 일본 수입 규제로 ‘제2의 사드’ 우려
검역 강화 가능성 높아…전수 조사하면 추가 비용·통관 거부 등 피해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대일본 수출 길에 적신호가 켜진 가운데 우리나라의 세계무역기구(WTO) 농업분야 개발도상국 지위까지 흔들리고 있어 대외 리스크가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 제외 시 수입 농식품의 문이 활짝 열리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여전히 뾰족한 묘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농가 근심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WTO에서 우리나라 등 11개국을 개발도상국 지위에 무임승차해 있다고 지목하며 90일 시한을 최후 통첩함에 따라 우리나라는 10월 말 이전 농업분야 개도국 지위를 벗고 선진국 그룹으로 적을 옮길지 결정해야 한다.

미국이 요구를 시행하지 않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독자적 경제보복에 착수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우리나라는 산업을 지키기 위해 결국 농업을 내어 줄 상황에 직면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는 1996년 OECD 가입 당시 선진국임을 선언하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농업 분야에서 미칠 영향을 우려해 농업을 제외한 분야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개도국으로 남았다. 개도국으로 분류되면 농업 관세·보조금 규제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

하지만 개도국 지위에서 제외될 경우 현재 쌀 513% 등 수입 농산물 관세가 감축돼 수입 농산물의 국내 시장 장악은 시간문제다. 물론 미국이 당장 개도국 대우를 중단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WTO 내 개도국 지위는 다른 농업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유지되겠지만 미래 농업협정의 향방을 알 수 없는 농업계의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다.

실제 개도국일 경우 쌀, 고추, 마늘, 양파, 감귤, 인삼, 감자와 일부 민감 유제품 등을 특별품목으로 지정해 관세감축을 하지 않지만 개도국 지위 제외 시 이들 고율 관세 핵심 농산물의 대폭적인 관세감축이 불가피하다. 예를 들어 현행 513% 관세에 달하는 쌀의 경우 일반품목으로 전환될 경우 70% 감축률이 적용돼 154% 수준으로 대폭 낮아진다.

이에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업분야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것은 미래 협상 테이블에서 우리 농업분야 특별관세 혜택이 사라진다는 의미여서 미래 우리 농업의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아직까지 각 부처간 협의를 통해 신중하게 논의되는 상황인 만큼 우리 국익이 우선시되는 방향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산업부 한 관계자는 “농업계의 입장이 이해는 가지만 반대할 경우 미국이 다른 산업분야로 관세형평을 몰아갈 경우 우리나라의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농식품 최대 수출 시장인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등 미국, 일본 양자 공격으로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특히 일본의 수입규제가 장기화될 경우 그 피해가 농식품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어 우려가 크다.

일본은 우리 농식품 수출액이 작년 13억2000만 달러에 달하며 전체 수출 시장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올 상반기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한 6억9000만 달러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과거 중국의 사드 보복과 유사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당시 중국의 사드 보복조치로 대중국 농식품 수출은 6개월 연속 감소한 바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는 수입 규제 품목에 농식품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국내서도 반일감정이 고조돼 일본과의 갈등이 장기화된다면 결국 식품에 대한 규제도 실행하지 않을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식품업계는 이미 소비자들의 시선을 의식해 일본산 제품 수입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두고 있다. CJ제일제당은 ‘햇반’ 제품에 극소량 들어가는 일본산 미강(쌀겨) 추출물 사용이 알려져 논란이 일자 이를 국산으로 대체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으며, 오뚜기는 일본서 들여와 판매하던 완제품 주스 판매를 완전 중단했다. 또 매일유업과 남양유업은 커피우유나 딸기우유 등 일부 가공유 제품에 쓰이는 일본산 원료 사용을 중단했고, 서울우유도 작년 11월부터 판매하던 일본 브랜드 치즈 제품에 대한 수입판매 계약 종료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에서도 한국의 일본 제품 불매 운동 확산에 대해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그들 역시 맞대응으로 맞설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업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검역 강화다. 직접적으로 농식품 품목을 규제하지는 않겠지만 검역강화는 충분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본은 현재 수입 식품에 대해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사전확인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정하는 수출국 공적검사기관의 시험성적서를 첨부하면 별도 검사 없이 통관토록 한 제도다. 우리나라는 식약처를 포함해 총 59고싱 수출국 공적검사기관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사전확인제도를 변경하거나 검역 과정을 현재 표본 조사에서 전수조사로 바꾸게 되면 국내 수출업체 입장에서는 검역을 통과하기 위한 추가 비용 지출이나 통관 거부 같은 피해가 불가피하다.

농식품부는 만약을 대비해 내부적으로 대응팀을 꾸려 영향이 예상되는 농산물의 품목 리스트를 체크하고 대책을 마련 중에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본이 농식품 수입 규제는 간접적 방향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향후 예상되는 상황에 대해 철저하게 대비하고, 수출 다변화를 위한 노력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식약처 역시 일본 식품 수입 규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식약처는 이달 초 차장을 팀장으로 한 ‘일본 수출규제 대응 TF 팀’을 구성해 분야별 영향 및 대응상황을 점검하고 있으며, 관련 협회 및 업계와 긴밀한 협조체계를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시행세칙 공포 등 불확실한 상황에 대비해 홈페이지에 ‘일본 수출규제 기업 애로사항 신고창구’를 개설하는 등 업계 의견에 귀 기울이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신속 수입통관이나 수입국 변경과 관련된 허가사항 변경이 필요한 경우 등 업계 애로사항에 신속하게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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