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모든 주류에 영양성분 표시 추진…제조비 증가·통상 마찰·소비자 오인 우려
공정위, 모든 주류에 영양성분 표시 추진…제조비 증가·통상 마찰·소비자 오인 우려
  • 황서영 기자
  • 승인 2022.01.12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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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중요한 표시·광고 사항 고시’ 개정안 행정예고
소주와 맥주에도 칼로리 등 영양정보 표기…외국 비해 국내 기준 미흡

조만간 소주, 맥주, 막걸리, 와인 등에도 칼로리와 당류·포화지방·콜레스테롤 등의 영양 성분을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알코올이 함유된 주류 제품에 열량과 영양 성분 표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중요한 표시·광고 사항 고시’ 개정안을 빠르면 2월 중 행정예고할 계획이다. 대상은 소주와 맥주, 막걸리, 와인 등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알코올 함유 제품이다.

 

국내 주류 소비량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주류 제품의 열량 및 영양성분 표시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주류 제품에 영양 정보가 없어서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 비만의 원인이 된다는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식품 등의 표시 기준에 의거해 100㎖당 칼로리가 30㎉ 이하인 맥주에는 '라이트' 명칭을 붙일 수 있게 돼 있지만 역시 칼로리를 의무적으로 표시하지는 않아 소비자들이 칼로리를 확인할 방법은 없어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의견이다. 실제 공정위가 작년 말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주류 열량 표시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65% 이상으로 나타났다.

국제적, 역사적으로 봤을 때 알코올 함유 제품에 대한 영양정보 표시가 타 가공식품과 달리 의무화되지 않았던 것은 규제기관과 관계가 깊다. 주류는 식품규제 관련 기관보다는 조세 기관에서 주로 관리됐고 그 덕분에(?) 이제껏 식품안전법 및 표시법 적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

국내에선 2015년 식약처로 주류안전관리 업무가 이관되면서 주류의 원재료명 표시가 의무화됐고, 2017년 식약처에서 주류 영양정보 제공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열량 등 정보 표시를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2019년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유통 중인 주류 20개 제품을 수거해 조사한 결과 열량 등 영양성분을 표시한 제품은 수입맥주 하이네켄 1개 뿐이었다.

동 조사에 따르면 소주 한 병(360㎖)의 열량은 408㎉, 탁주(750㎖)는 372㎉, 맥주 한 병(500㎖)은 236㎉여서 쌀밥 한 공기(200g)의 272㎉보다 높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맥주의 경우 카스·하이트·테라·클라우드가 1병(500㎖)에 229~249㎉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폭탄주’ 형태로 소주 1병과 맥주 2병을 마신다면 섭취하는 총열량은 900㎉에 이른다. 고열량 식품으로 꼽히는 피자 1조각의 열량이 250㎉ 내외다.

세계 주류 규제 트렌드도 영양성분 의무표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17년 주류의 영양성분 표시를 의무화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고, 마트에서 판매 중인 맥주들의 다수가 이미 열량을 포함한 영양성분을 표시하고 있다. 미국은 알코올을 함유한 제품에 대해서 영양성분 표시를 의무화하지는 않고 있지만 수년째 소비자단체 등은 관련 라벨링을 요구해왔으며, 기네스 및 스미르노프 등을 소유한 주류 글로벌 기업 디아지오와 같은 일부 주류 기업들은 영양성분 라벨링을 자발적으로 시행하기도 했다.

주류 영양성분 표시 의무화 시행 예고에 국내 업계는 높아지는 제조 비용과 소비자 오인 가능성을 문제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주류 영양표시 의무화 실시를 위해서는 추가의 영양성분 분석 검사가 필요하며, 이에 따라 추가적인 검사 비용 및 영양표시를 위한 라벨 변경비용, 라벨의 내용 추가에 따른 디자인 비용 등의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영세한 업체의 비중이 높은 전통주, 수제맥주 업체들에게 주류 영양표시를 실행하기 위한 비용은 규모가 큰 업체들에 비해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수입 주류의 경우 적용 여부에 따라 외교 통상 마찰 또는 국내 주류와 수입 주류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주류 산업의 내수 시장에서 성장은 한계가 있어 수출 진흥이 필연적인데, 타 국가에서 시행하지 않는 주류 영양표시로 인해 수출 과정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시장 일각에서는 높아진 주류 소비에 더해 기존 가공식품과 같은 영양성분 표시는 유해제품의 소비를 정상화해 허용 가능한 식품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편 공정위는 이르면 내달 관련 고시를 행정고시한다. 개정안에 대한 주류 업계 등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관련 고시 개정은 국회를 통한 법안 처리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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