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운천 딜레마
[기자수첩]정운천 딜레마
  • 황세준
  • 승인 2008.06.27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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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인터넷에는 짤막한 사진기사가 하나 올라왔다. ‘정운천 장관이 한우로 오찬을 했다’는 내용의 단신 보도였다.

이 사진은 안양의 한 고깃집에서 촬영된 것인데, 당시 정운천 장관을 비롯해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몇 명과 농림수산 관계기관장을 비롯해 취재진들도 함께 한 자리였다.

앞서 정운천 장관은 오전 일정으로 농림수산 관계기관장들과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도에 대한 홍보 및 계도 방안을 논의한 뒤 오찬장소로 이동, 올바른 원산지 표시대로 만들어진 메뉴판 2개를 기증했다. 오찬으로 한우를 선택한 것은 ‘한우가 한우대로 팔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취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사에 달린 댓글은 하나같이 부정적이었다. ‘값싸고 질 좋은 미국산 드시지 왜 한우 쳐드세요?’, ‘국민들은 값싸고 질 좋은 미국산 먹고 지네들은 한우 먹겠다는 얘기’ 등의 댓글이 연이어 달렸다.

기사는 정운천 장관이 한우로 오찬을 했다는 팩트를 전달했을 뿐인데 이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것. 사실 먹고, 싸고, 자는 얘기는 평상시라면 별다른 기사거리가 되지 못했겠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라는 민감한 이슈에 대한 책임부처의 장관이다보니 입방아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정운천 장관은 이날 취재진의 요청에 따라 고기를 맛있게 먹는 장면을 연출했고 그 후에는 식사보다는 기자들과의 대화에 더 열을 올렸다.

정운천 장관은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총력을 다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신뢰를 회복시킬 초석을 마련하는 것이 내 마지막 할 일”이라고도 했다.

그 때문인지 오찬 후 인근 식당에 대한 순회캠페인에서도 시민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해주느라 한 곳에서 시간을 지체해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떠나야 했고 차 안으로 반쯤 들어간 상태에서도 시민과의 대화를 중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인터넷 여론은 한우로 오찬을 한 정운천 장관에 부정적으로 흘렀다. 한 네티즌은 ‘이놈의 정부는 신뢰가 가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신뢰를 회복해 보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선 정운천 장관을 ‘벌거벗은 몸’에 비유한다면 너무 뜨거운 목욕탕 물에 들어가다가 데인 형국이다. 신뢰회복을 위해 좀 더 여론을 살핀 행보를 보였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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