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M 수입식품 표시 강화 “식품안전보다 불신 조장 우려”
OEM 수입식품 표시 강화 “식품안전보다 불신 조장 우려”
  • 김아름
  • 승인 2008.12.19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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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빈발한 식품안전 사고에 대한 대책으로 강력한 규제 중심의 식품안전정책을 내놓고 있는 정부가 다시 한 번 규제 강화의 뜻을 내비췄다. 경기불황과 잇따른 악재들로 식품기업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진 조치라 업계가 크게 당황하고 있다. [아래표 참조]

지난 15일 관세청(청장 허용석)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수입식품의 표시법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원산지제도 관련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개정안이 시행되는 내년 1월 1일부터는 수입식품에서 ‘Made in China' 'Made in America' 등 영문으로 된 원산지표시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OEM수입식품의 원산지를 물품전면에 상표명 크기의 1/2 이상 또는 포장면적에 따른 글자크기로 한글로만 표시하게 됐기 때문이다. 관세청이 발표한 표시기준에 따르면 앞으로는 원산지 표시와 함께 ‘○○산 주문자 상표부착(OEM)제품’ 또는 ‘○○산 OEM 제품’이라는 표시가 상품명이 표시되는 포장 전면에 병기하도록 했다.

여기에 같은 날 발표된 '어린이 먹거리 안전사업 사업단'의 내년도 사업 내용 역시 정부의 규제 정책을 뒷받침해줄 연구를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어 업계 관계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고열량․저영양 식품의 모니터링과 어린이 식생활 안전지수 설정에 관련된 내용 등을 담고 있어 앞으로도 규제의 고삐를 놓지 않겠다는 정부의 뜻이 강하게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려진 원산지 표시제 강화 조치는 중국발 멜라민 파문을 의식한 것으로 국세청은 이번 개정안으로 식생활안전 확보와 함께 수입식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털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비췄다. 특히 발표가 이뤄진 직후인 17일 중국산 돼지내장 사용 햄 문제가 발생하며 또다시 중국산(외국산) 수입 식품에 대한 안전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이를 포함한 정부의 규제정책은 매우 시의 적절한 것처럼 보인다.

업계에서는 일단 OEM 표시제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할 수 는 없지만 제도 강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매우 높다.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성분표시면에 제조사를 명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강화한다는 것은 소비자에게 ‘OEM 식품=저급식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식량 자급률이 30%의 이하로 낮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수입식품, 특히 중국, 미국산 식품 등의 수입은 피할 수 없는 일이며 표시제 강화로 소비자들이 OEM 식품을 기피한다면 안정적인 식량 수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단지 뒷면의 원산지표시를 앞면에 표시한다고 해서 수입산 식품이 더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문제다. 원산지 표시 강화는 OEM 식품 여부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소비자에게 OEM 식품의 선택을 전적으로 맡기겠다는 정부의 뜻이 담겨있다. 그러나 연이은 사고들로 수입식품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없이 제도만을 강화하는 것은 불신을 더욱 부추기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의 선택과 이를 따라가는 기업에게만 책임을 돌려서는 본질적인 환경개선이 어렵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멀리 생각할 것도 없이 얼마 전 GM식품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을 때 기업들이 GM표시를 면하려 수입처를 중국으로 돌리는 사태가 발생했듯이 근본적인 대안 없이는 주먹구구식 행정을 피하기 위한 도피수단만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유통전문판매업자가 자체적으로 OEM 사의 품질 관리를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더 실효성 있는 대책일 것이다.

OEM 제품의 유해물질 여부를 스스로 검사할 수 있게 하고 현지 제조공장에 대한 위생 점검 등을 자체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유도해 시장에서 좋은 품질의 제품이 선택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등으로 대체될 수 있다.

우리 OEM 제조 환경 상 이번 조치가 중소기업에게 더욱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 봐야 할 점이다. 국내업체의 99%를 차지하는 500인 이하의 중소기업의 기술력과 대기업의 브랜드력을 합쳐 제품을 생산 유통하는 것이 국내 식품산업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OEM 식품=열등한 식품’이라는 인식이 형성된다면 대기업은 필연적으로 이들과의 거래를 줄일 수밖에 없고 이에 의존하던 중소기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로 인한 사회적 파급효과는 정부의 상상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다.

더불어 OEM제품에 대한 개정 조항이 국제적 기준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국제 교역 시 혼란을 초래할 수 있어 국내 식품산업에 끼치는 영향이 클 것이란 지적이다.

표시제 강화로 투명성을 확보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지만 세계적으로 OEM 식품에 제조업체나 국가의 표시를 의무화 하고 있는 곳이 없어 국내 식품기업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있다. (특히 이제 막 세계 적인 식품기업 반열에 올라서기 위해 세를 불려나가고 있는 우리 식품기업에게는 국제 경쟁력 약화의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_) 미국 일본 EU 호주/뉴질랜드 등의 규정에는 OEM 표시규정이 없을 뿐 아니라 공급업소 표시 규정에도 제조자와 판매자 중 선택 표기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는 우리의 기존 규정과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는 코앞으로 다가온 시행일에 일단 규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만 당장 포장을 바꾸는데 드는 비용만도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이는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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