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이야기(1) - 초콜릿②
과자이야기(1) - 초콜릿②
  • 식품음료신문
  • 승인 1996.12.23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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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콜릿의 역사

코코아 원산지는 남아메리카의 아마존강 유역과 베네수엘라의 오리노코강 유역으로 일컬어진다. 하지만 콜럼부스가 아메리카로 4번째 항해를 하던 중 유카탄반도 연안의 원주민으로부터 빼앗은 카누에 카카오빈을 포함한 농산물이 쌓여 있었는데 이를 스페인으로 갖고 돌아온 것이 유럽으로의 첫 반입이었다.

1502년이었던 당시엔 코코아빈을 쓸모없는 물건으로 제쳐 두었으나 1519년 스페인의 웨루디난도 코루디스가 멕시코에 원정가서야 비로소 그 가치와 사용법을 알게 된 것으로 전해 진다. 당시 스페인의 황제 칼 5세에 보고했던 내용중엔 "카카오빈의 귀중성 때문에 화폐로 통용되었으며 피로회복음료, 강장영양제 등으로 이용하는데 그 효과도 다른 것과 비교할 만 한 물건이 없다."고 기록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카카오빈의 효과는 멕시코 정복군대의 빠른 정복 속도로 입증됐다는 후문이다.

카카오 10알로 토끼 한 마리를, 1백알로 노예 한 사람을 살 수 있을 정도로 귀한 가치로 쓰였고 공물이나 세금에도 사용되는 등 금전과 똑같이 취급되기도 했다.

코루디스가 유럽에 카카오빈을 갖고 돌아온 것은 1520년. 왕실에 헌납된 이후 왕후, 귀족등 상류계급의 독점음료로써 관허전매형태로 보급돼 재정에 기여했다. 이후 네덜란드 해적선에 의해 스페인선박이 약탈되면서 카카오빈이 네덜란드인에게 건네졌고 이탈리아인이 스페인으로부터 카카오빈을 갖고 돌아오는가 하면 프랑스에도 전달돼 왕실에서 애용되었으며 유럽 각지에 퍼지기 시작했다.

1660년 프랑스는 서인도제도의 마루디닉섬에 카카오를 재배했는가하면 1679년엔 남아메리카지역에서도 재배, 유럽으로 수출을 시작했고 암스테르담엔 거래상점이 개설되었다. 영국에서도 다방등지에서 초콜릿을 판매했고 초컬릿 파우더가 선보이기도 했다.

1619년 알렉산더 가이라가 최초로 초컬릿 생산을 위한 혼합기를 제작했고 1828년 네덜란드의 반호틴은 코코아버터의 착유방법을 고안하는 동시에 초컬릿 파우더(코코아)를 생산했다. 이 후 초컬릿 리퀴드와 설탕, 코코아버터를 혼합해서 형틀에 넣어 굳힌 판 초코가 선 보였다. 지금부터 1백 50년전의 일이다.

코코아버터 출현 이후 1875년 밀크초컬릿이 스위스의 다니엘 비터에 의해, 커버링초코는 1876년 린트에 의해 제조돼 소비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이를 전후로 1879년에 아프리카의 골드코스트(현재의 가나)에 카카오의 재배가 성공하자 카메룬, 아이보리코스트, 나이지리아, 토코등에 확산했다.

일본인으로는 명치 6년 특명전권대사 岩倉具視 일행이 프랑스 리옹에 머물 때 초컬릿을 처음 맛보았다. 일본에서 카카오빈부터 일괄제조가 개시됐던 것은 大正시대에 들어와서 부터이며 明治, 森永제과등이 그 제조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8년 동양제과 및 해태제과에서 초컬릿을 시작했고 롯데 제과는 1975년 판제품과 왔다비등으로 참여해 현재 수위를 점하고 있다. 1980년 쉘라인을 가동하고 1982년엔 아몬드제품을 선보였으며 1983년엔 국내 처음으로 과자를 이용해 빼빼로를 생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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