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식육원산지표시제’ 이번엔 처리될까?
‘음식점식육원산지표시제’ 이번엔 처리될까?
  • 류양희 기자
  • 승인 2006.01.0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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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법안 처리 미뤄 관련업계 원성
긍정적 분위기속 정기국회 처리 주목

시급히 처리해야 할 각종 민생법안들이 쌓여있는 가운데 정기국회 개원이 눈앞에 다가왔다. 이번에 다뤄질 주요 법안에는 ‘음식점식육원산지표시제’를 골자로 한 식품위생법 개정안도 포함되어 있다.

지난달 24일 농림부는 박홍수 장관 주재로 10개 소비자단체 대표들이 모인 가운데 ‘음식점식육원산지표시제 법안통과를 위한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소비자단체들은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국회에 통보하기로 하는 등 법안통과 분위기를 조성해 가기로 협의했다.

이에 앞서 지난 6월에는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과 열린우리당 조일현 의원 공동주최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음식점식육원산지표시제 도입을 위한 입법공청회’를 개최한바 있다. 당시 공청회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원혜영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맹형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김광원 농림해양수산위원장,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대거 참석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법안통과가 확실시 되던 지난 4월과 6월 임시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16대 국회였던 2000년에 처음 발의되어 16대 국회에서만 세 차례, 17대 국회에서 두 차례 제출된 이 법안은 결과적으로 5년 넘게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전국한우협회 등 농축산관련 단체들과 소비자 단체, 농림부를 비롯한 관계부처는 매 국회 때마다 법안 통과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심지어 지난해 1월 노무현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통해 음식점 원산지표시를 적극 추진하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음식업중앙회가 주축이 된 반대 측의 강력한 제동과 현실적인 여러 이유가 맞물려 번번이 미루어져 왔다.

그러나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상황이 조금은 달라 보인다. 관련업계와 정부부처에서는 이번 국회에서 어떤 방식이든 결론이 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동안 법안 심사를 미루어오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들조차도 그렇게 여기는 분위기다. 물론 여전히 40여만 회원을 둔 거대 민간단체인 한국음식업중앙회는 이 문제에 관하여 완강한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음식점식육원산지표시제란?

음식점식육원산지표시제란 음식점에서 판매되는 요리에 재료로 사용된 육류의 원산지를 손님들이 알도록 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일반 정육점까지는 원산지 표시제가 시행되고 있으나 일반 음식점과 같은 최종 소비단계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보완하자는 것이 법안 내용의 주요 골자다.

광우병과 조류독감, 돼지콜레라, 뉴캐슬병 등 잇따른 육류 파동으로 수입산 육류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가중된 가운데 국내 소비자들은 대부분 국내산 육류를 선호해왔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쇠고기에 있어서 더욱 두드러진다.

국내산 한우는 광우병 공포에서 비껴가는 바람에 안전성에 있어서 소비자의 신뢰를 받고 있고, 맛에 있어서도 수입산보다 좋아 가격차이가 심화되어 왔다. 쇠고기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단일불포화지방산의 일종인 올레인산 비율에 의해 좌우된다. 한우는 48%, 국내산 육우나 수입쇠고기는 35~38%정도 함유하고 있다. 또한 국내산 한우는 마블링(살코기 사이사이에 하얀 지방이 거미줄처럼 분포되어 있는 것)이 잘 되어 있어, 고기 맛이 부드럽다. 물론 미국이나 호주등 주요 쇠고기 수출국들도 국내산 한우보다 훨씬 맛좋은 프리미엄 등급의 쇠고기가 있다. 하지만 수입과정에서 대부분 냉동되어 오랜 유통단계를 거쳐오는 동안 맛이 떨어져 국내산 한우가 더 맛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듯 국내산 한우에 대한 높은 인기로 국내산 한우와 수입산 쇠고기의 가격차이는 점차 커지고 있다.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음식점 등지에서의 ‘둔갑판매’또한 극성을 부리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된 약 33만 톤의 쇠고기 중 수입산이 56%를 차지했다. 한우의 수급상황과 일반식당에서 한우라고 내놓는 수량을 대충 따져 보아도, 상당수의 음식점에서 수입산 쇠고기를 사용했다는 결론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지난 한 해 동안 원산지 표시 단속결과 총 4,082건을 적발했고, 이중 돼지고기가 751건((18.4%)으로 1위를 차지했으며, 276건(6.8%)의 쇠고기가 그 뒤를 잇고 있어 육류가 전체 적발 건수의 25.2%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결코 육류의 원산지 둔갑판매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지난해 6월 1일, 17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 외 11명의 의원들은 1호 법안으로 음식점식육원산지표시제를 포함한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 4월 4일에는 열린우리당 조일현 의원과 32명의 의원이 이를 보완해 새로 개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농림부나 축산단체들을 비롯한 관련 기관 및 단체들도 법안통과를 위해서는 음식업중앙회와의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절충이 가능하다고 협상의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그 어느때 보다도 법안 통과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통상마찰-일부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음식업중앙회는 이 법안이 세계무역기구(WTO)규정상 쇠고기 수출국과의 무역마찰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처음 이 법안이 논의되던 2000년 당시 외교통상부도 강력히 반대하고 나선바 있다. ‘위장된 수입제한 조치’로 WTO협정 위반이라는 주장이었다. 이후 이 법안에 반대하는 일부 국회의원들과 음식업중앙회는 같은 논리를 펴왔다.

실제로 WTO는 2000년에 한국정부가 수입산 쇠고기와 국산 쇠고기 판매 점포를 따로 구분한 것을 놓고 WTO의 내국민 대우금지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판정하여 제도 폐지를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전국한우협회 김영원 과장은 “판매점포 구분과 음식점에서의 원산지 표기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라며 “음식점에서 수입 쇠고기만 표시한다면 WTO 규정위반이 될 수 있지만, 수입산과 국내산 한우를 동시에 표시해주면 그것은 위반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김 과장은 “이미 WTO도 우리의 원산지표시제에 대해 크게 문제될게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단속 및 법안의 실효성-음식업중앙회 박재춘 사무총장은 “전국의 수많은 음식점을 다 어떻게 단속할 것인가?”라며 “현재의 행정력으로는 사실상 어렵다”고 단속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 법안의 최초 발의자인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 측은 “단속이라고 해서 매일매일 모든 업소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불시단속은 약간의 행정력 보강만으로도 큰 효과를 발휘해 왔다”고 주장했다.

농림부의 반응도 이의원 측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축산물위생과 박상연 사무관은 “단속에 관한 문제는 2차적인 문제일 뿐이며, 법안통과 이후 유예기간동안 얼마든지 실효적 조치들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박 사무관은 “정육점에서의 원산지 표시제 도입초기 법안의 실효성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했었다”면서, “시간이 흐르자 문제점이 차츰 보완돼 이제는 큰 무리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부처의 또 다른 관계자 역시 “단속과 같은 실효성에 관한 문제는 정부와 시행기관이 걱정할 문제이지, 음식업 중앙회가 걱정할 사안은 아니다”라며 음식업중앙회의 주장을 일축했다. 전국한우협회 김영원 과장은 “법안이 통과되어 시행되면 그 자체만으로도 업소들 사이에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면서 법안실효성에 대한 부분은 큰 문제될게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우 판별능력-음식업중앙회는 자체 설문조사결과 업소주인의 육류 구분 능력이 조사대상자 중 37.5%에 불과하다며 음식업소 주인들의 한우 판별능력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또한 이미 조리된 육류의 경우는 전문가들이라도 판별이 쉽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인기 의원 측은 “앞으로 육류이력추적시스템이나 유전자 감식 등이 도입될 예정이라서 차츰 해결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농림부의 한 관계자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음식점 주인들은 쇠고기 구분 능력이 없어도 된다. 다만 식육판매처에서 국내산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고기를 사다가 국내산이라고 표기해서 팔면되고, 수입산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고기를 사다가 수입산이라고 표기해서 팔면 그뿐이다. 만일 식육판매처가 속여서 팔았다면 그에 대한 처벌은 식육판매처가 받는 것이지, 업주가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메뉴판-음식업중앙회는 “식육판매처에서 그때그때 수급상황에 따라 원산지가 달라지는데 그때마다 메뉴판도 바꾸어야 하는가?”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전국한우협회 김영원 과장은 이에 대해 “그것은 단지 방법적인 문제일 뿐”이라며 “원산지를 일일이 표기하기보다는 수입산과 국내산으로만 표기하는 방법적인 부분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협의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농림부 관계자들도 “원산지 표기방법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면서 “협의과정에서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는 문제”라고 밝혔다. 이인기 의원 측도 “실상 우리나라에 쇠고기를 수출하는 국가들은 따지고 보면 몇 개국 되지 않는다”면서 메뉴판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외국의 사례-음식업중앙회는 현재 추진 중인 법안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강력하게 제도화해 시행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인기 의원 측은 이에 대해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 제도를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미국도 지역에 따라 우리와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는 곳이 상당수다.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우리처럼 강력한 법을 시행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전국한우협회 김영원 과장도 같은 사실을 언급하면서 “사실 미국은 쇠고기 수입국이 아니라 수출국이다. 우리와 입장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농림부 박상연 사무관은 “무조건 외국에 사례가 없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특수성부터 잘 따져보라”고 주문했다. 외국의 경우 대부분 수입산이나 자국산 쇠고기의 가격차이가 크지 않아 둔갑판매의 필요성이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한우와 수입산 쇠고기의 가격차이가 커 업주들이 둔갑판매를 통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사례가 빈번해 제도의 도입이 필수적이라는게 박 사무관의 설명이다.

◇음식업계의 불황-지난해 11월 음식업중앙회는 회원 5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이른바 ‘솥단지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당시 중앙회는 “하루평균 190여개의 음식점이 폐업하고 이로인해 950여명의 실직자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지속되는 경기불황으로 음식업중앙회는 현재도 별로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경기가 활성화된 이후에 제도도입에 관한 부분을 논의하자고 제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인기 의원 측은 “지금까지 5년여를 끌어왔다. 더 이상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다”고 잘라말했다. 그러나 이 의원 측은 “우리는 법안만 통과되면 1년6개월에서 최장 2년까지도 유예기간을 둘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해 융통성을 보였다.

농림부나 관련부처들도 이와 같은 입장이다. 농림부 박상연 사무관은 “법안의 실효성을 생각해서 전면 실시보다는 유예기간을 포함한 부분시행안을 검토해왔다”면서 “100㎡이상의 식당들을 대상으로 덩어리 고기를 취급하는 메뉴에 한정해 우선 실시하는 방안이 논의되었으나, 음식업계의 어려운 실정을 감안해 좀더 범위를 축소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음식업중앙회의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쇠고기 전문조리판매업소는 총 14,641곳이며 이중 100㎡이상의 규모는 전체의 54.1%인 7919곳이다. 만일 200㎡이상으로 범위를 축소시킨다면 2011곳(13.8%), 300㎡이상으로 한정하면 552곳(3.8%)이 해당된다.

농림부의 한 관계자는 “사실 전체 90%에 이르는 소규모 영세 업소들은 법이 시행되더라도 당분간 적용대상이 아니다”라며 “일부 대형 업소들이 주축이 된 음식업중앙회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전체 음식업계의 여론을 좌우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 각계의 반응

법안처리와 관련하여 수세적인 처지에 놓여 있는 음식업중앙회는 다소 격앙된 반응이다. “소비자의 알권리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국가 전체가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이때, 법안을 꼭 서둘러 처리할 필요가 있느냐?”며 “음식업계가 자율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고 했다. 또한 “우리는 이 법안에 관한한 분명한 반대의 입장이며 이번 국회에서 통과가 안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고 말해 법안 통과 저지를 위한 모종의 조치가 취해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전국한우협회는 음식업중앙회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지금껏 속여 팔아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냐?”라며 반문했다. 또 음식업계가 주장하는 자율시행이야말로 실효성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하고는, 법안처리를 도덕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열린우리당 문병호 의원 측은 “이 법안의 첫출발이 축산업계와 음식업계의 상호 이해관계에서 출발한 것 아니냐?”라며 “이 문제를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도로만 보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소비자단체들과 축산업계 관계자들, 정부 해당부서 관계자들은 의원들이 음식업중앙회의 조직력과 표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도덕적으로나 소비자권리측면으로 볼 때 당연한 법안 처리를 미루어왔다면서 “음식업중앙회의 표가 더 많은지, 소비자들과 축산업계의 표가 더 많은지 의원들은 잘 따져 봐야할 것”이라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법안처리 지연에 대한 관련기관 및 단체들로부터 비판여론이 일자 법안 처리 반대론자로 지목되고 있는 A의원 측은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법안처리에 있어 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다보니 그렇게 보인 것뿐이다. 절차상 불가피하게 법안이 뒤로 밀린 것뿐이지, 법안에 대한 개인적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A의원의 발언을 전해들은 한 관계자는 “그렇다면 어쨌든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결론이 날 모양”이라며 다시한번 법안 처리에 의원들이 적극 나서주기를 당부했다.

한편 이인기 의원 측은 “음식업계가 원산지표시를 거부하면 소비자들이 원산지 표시가 되어있는 정육점으로 발길을 돌려 결과적으로 외면당하게 될 것”이라며 “이 제도는 음식업계를 죽이자는 법안이 아니라, 멀리 내다볼 때, 축산업계와 소비자들은 물론 신뢰받는 음식업계를 만들어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농림부 박상연 사무관도 “음식업계 내부에서도 이 제도에 대한 찬성여론이 상당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음식업중앙회가 대국적 차원에서 협상의 자리로 적극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음식업중앙회와 해당 상임위 의원들의 태도변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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