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가격 인상=가공식품 줄인상?” 밀크플레이션 설득력 부족
“원유가격 인상=가공식품 줄인상?” 밀크플레이션 설득력 부족
  • 황서영 기자
  • 승인 2022.11.14 0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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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진회 원유 가격 인상 합의 따라 흰 우유·가공식품 줄줄이 동반 상승
치즈·버터 등 유제품엔 값싼 수입 가공유 사용
수입 물량 늘고 관세 혜택…완제품 재가공 판매도
차등 가격제 적용 땐 명분 없어…정부 자제 요청
유업계 “선제적 인상 아닌 누적 요인 반영” 주장

원유값이 올해 ℓ당 947원에서 999원으로, 내년부터는 996원으로 인상이 최종 결정됐다. 유업계에서도 발 빠르게 이 같은 인상요인을 반영, 서울우유는 17일부터 평균 6% 인상한다고 밝혔고, 매일유업과 남양유업, 동원F&B, 빙그레 등도 각각 우유 가격을 인상하거나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치즈, 버터, 빵류 등 관련 가공식품의 가격도 동반 상승하는 ‘밀크플레이션(밀크+인플레이션 합성어)’에 대한 우려다. 유업계의 우유값 인상은 곧 관련 가공식품 가격까지 상승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미 환율 상승으로 따른 각종 원부자재 가격인상 등을 이유로 컵커피와 수입치즈 등 일부 제품의 가격이 이미 오른 바 있다. 남양유업과 매일유업 등 유업체들은 유가공제품 가격을 올해만 두 차례 인상했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지난달 체다치즈, 피자치즈 등 40여 종의 치즈 가격을 약 20% 인상했다.

이번 원유값 인상으로 원유를 원료로 하는 관련 제품의 연쇄적 가격 상승이 또 한차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러자 지난 7일 약 7000여 명의 회원 수를 보유한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은 7일 원윳값 인상으로 인한 유제품의 큰 가격인상 폭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문을 발표했고,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도 10일 성명서를 내고 고물가 상황에서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 소비자의 고통을 고려해 유업체, 유통업체에 우유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동안 당연시 여기던 “원유값 인상=가공식품 인상”이라는 공식은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사실상 주장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수입산 원유, 분유의 사용이 이미 만연해져 있는 업계 상황에 국산 원유의 가격 인상이 가공식품 가격의 줄인상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쉽게 납득할 수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기 때문.

낙농진흥회 원유가격 인상으로 ‘밀크플레이션(밀크+인플레이션 합성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원유가격 상승만으로 가공식품의 가격 줄인상이나 역대급 인상폭은 납득할 수 없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대형마트에서 수입산 치즈를 둘러 보고 있는 소비자. (사진=식품음료신문 DB)
낙농진흥회 원유가격 인상으로 ‘밀크플레이션(밀크+인플레이션 합성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원유가격 상승만으로 가공식품의 가격 줄인상이나 역대급 인상폭은 납득할 수 없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대형마트에서 수입산 치즈를 둘러 보고 있는 소비자. (사진=식품음료신문 DB)

현재 유업계에서 치즈, 버터 등을 만드는 가공유는 대부분 수입산이다. 미국, 유럽,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값싼 가공유를 수입한다. 현재 수입산 가공유 국제가격은 ℓ당 국내 원유의 절반 수준인 400~500원 선이다.

이러한 가격 차이에 국내 원유 자급률은 올해 기준 45.7%로 2012년 62.8%에 비해 17.1%p 하락하고, 수입산 제품들은 수입량이 꾸준히 증가세였다. 수입 가공유는 2001년 65만톤에서 2020년 243만톤으로 273% 급증했고, 치즈용 원유 등으로 사용되는 밀크·크림 수입은 지난 4년간(2015~2019) 연 74.2%의 가파른 증가세를 기록했다.

또 제과, 제빵, 아이스크림, 우유, 치즈 및 요구르트 등 원료로 쓰이는 탈지분유 역시 최근 1년간 수입액은 지난 5년 전에 비해 96.5% 증가했다. 5년 전에는 5만8497원/㎏이었으나 최근 1년간에는 11만5043원/㎏으로 2배 가까이 뛰었다.

일례로 연간 1인당 치즈 소비량은 2009년 1.5㎏에서 2019년 3.2㎏까지 늘어나는 등 연평균 7.9%의 높은 증가율을 보인 한편 국내 시장 대부분을 수입치즈가 점유하면서 국산 치즈 자급률은 2009년 8.9%를 정점으로 2019년 2.2%까지 감소했다. 치즈 소비는 늘어나는데 수입이 더 증가하면서 국내 치즈 자급률이 바닥을 친 것이다. 버터도 마찬가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유가공제품의 수요가 늘고 흰우유 수요가 감소하면서 수입산 원유의 점유율이 커졌다”며 “국내에 유통되는 치즈, 버터는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해 재가공하는 형태로 판매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수입산 가격은 앞으로 더 낮아진다. 수입국 대부분이 한국과 FTA를 체결한 상태다. 물론 국내 낙농업 보호를 위해 아직까지는 관세를 물리고 있지만 이 장벽도 2026년부터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내년부터 시행되는 용도별 가격차등제로 음용유와 가공유용 원유 가격이 달리 책정될 경우 낙농진흥회 원유가격 인상으로 인한 제품 가격 인상은 명분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음용유 가격은 현 수준을 유지하되 가공유 가격을 낮추는 방식이며, 음용유 원유는 ℓ당 1100원, 가공유 원유는 ℓ당 800원으로 나뉠 예정이다. 유업체 입장에선 400원대에 수입하는 가공유를 800원에 국내에서 조달해야하는 부담이 있지만 정부에서 유업체에 ℓ당 200원의 지원금 지급을 계획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원유값 인상과 관련 유업계에 가격 인상 자제 및 인상 폭 최소화의 의견을 전달한 상태다. 김정욱 농식품부 축산정책국장은 “가공식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흰우유 가격은 덜 인상하고 가공제품의 경우 추가적인 인상을 자제하면서 인상 폭을 최소화하도록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유업계에선 ‘선제적 가격 인상’이 아닌 ‘앞선 누적 요인의 반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원유 외 타 원료와 우유 포장재 등 원부자재값, 인건비, 제품 운임비, 물류비, 판매 관리비 등 우유 제조 및 유통에 따른 생산 비용에 있어서도 가격 상승이 있었기에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유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올해 이뤄진 유제품 가격 인상은 다른 인상 요인의 누적분이 반영된 것이다. 한 예로 수입 치즈 가격 인상은 국제 가격 상승에 따른 것이고, 커피 가격 인상 역시 원두 가격 상승분이 반영된 것일 뿐”이라며 “단 올해 원유 가격 인상분은 향후 순차적으로 반영될 것이지만 전반적으로 소비는 위축되고 있고, 특히 음용유 소비는 줄고 있어서 업체에서 큰 폭으로 유제품 가격을 인상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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