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기한 제도 출범에 따른 향후 대응 방안-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270)
소비기한 제도 출범에 따른 향후 대응 방안-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270)
  • 하상도 교수
  • 승인 2021.11.22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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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별 제도 운영 병행 민감 식품 우선 관리를

2021년 11월 5일 ‘유통기한(流通期限)’ 대신 ‘소비기한(消費期限)’을 표시하도록 하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이 입법 예고됐다. 이번 개정안은 법이 지난 8월 17일 개정됨에 따라 법률에서 위임된 사항과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기 위한 것이다. ‘소비기한 표시제’는 국민의 인식 전환과 업계의 준비 등을 위해 2023년부터 시행되며, 우유류 등 위생적 관리와 품질유지를 위해 냉장 보관기준 개선이 필요한 품목은 유통환경 정비를 고려해 8년 이내의 유예기한 두고 2031년부터 소비기한 표시를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하상도 교수
△하상도 교수

우리나라에서 식품에 ‘유통기한’ 표시제도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85년부터다. 1962년 「식품위생법」 제정 당시에는 ‘제조일자’만 표시됐었다. 이후 1990년 7월 1일부터 제조일자만 표시하는 식품(과자, 조미식품 등)과 제조일 및 권장유통기한을 함께 표시하는 식품(빵류, 우유, 통조림 등)으로 이원화됐던 식품표시일자가 유통기한 표시로 일원화되었다. 2002년 7월부터는 제조업체별로 자율적으로 설정하도록 허용됐다. 식품안전인증제(HACCP) 등 선진 위생관리제도들이 도입됨으로써 같은 품목이라도 개별 회사별 시설, 인력, 위생수준이 달라 유통기한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소비기한(Used by date), 판매기한(Sell by date), 포장일자(Packaged by date), 제조일자(Manufactured by date), 최상품질유지기한(상미기한, Best before date) 등 다양한 식품기한 표시가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유럽연합(EU) 등 모든 국가들은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표시제를 활용하고 있으며,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도 2018년부터 국제식품기준규격에서 유통기한 제도를 삭제하고 소비기한 표시를 권고하고 있다. 다만 미국은 유통기한, 소비기한을 시장 자율로 모두 사용하고 있고 제조업체 자율로 포장일자, 최상품질유지기한도 쓸 수 있다.

10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경제부서 주도로 식품의 반품과 폐기물 발생을 줄여 가격 인하효과를 낼 수 있는 소비기한 제도를 도입하려 했었다. 그러나 일부 소비자단체와 유통업체, 생산자단체 등이 반대해 도입되지 못했다. 이런 난관을 뚫고 2023년 1월부터 우리나라에서 소비기한 제도가 유통기한을 대신한다고 하니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 간 사용하던 기존의 유통기한은 판매할 수 있는 날짜를 말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도 팔지 못할 뿐이지 구매 후 가정에서는 그 이상 기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유통기한을 얼마만큼 지난 것까지 먹을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식품의 종류마다 다르고 제조사와 브랜드, 보관상태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비기한은 유통기한보다 평균적으로 30% 이상 더 길게 정할 수 있어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다.

우리 국민들과 식품산업계는 소비기한 제도를 환영하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넘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단순히 시간만 연장되는 소비기한 제도 도입으로는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고 식품폐기물 감소효과 또한 크지 않다고 본다. 콜드체인이 뒷받침된 ‘시간과 온도’를 함께 고려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소비기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적정 보존온도를 벗어나면 소비기한 내에 식품이 상할 수가 있어 안전성이 담보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는 보관온도 감시는 한계가 있어 ‘시간-온도지시계(TTI)’ 스티커 등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감시시스템의 도입이 소비기한 제도의 성공에 필수요건이라 하겠다.

수출산업화하기 위해선 소비기한제도 도입과 더불어 글로벌 냉장보관온도를 맞춰야 진정한 국제화가 가능하다. 제 외국에서는 온도에 민감한 식품은 냉장온도를 5℃ 이하로 관리하고 있어 소비기한 도입 시 저온관리식품의 냉장보관 온도도 명확히 재정립해야 한다. 냉장온도를 한꺼번에 내리지 못한다면 우유류, 냉장면류(생면), 비살균주스, 두부류, 식육가공품(부산물), 냉장죽, 냉장드레싱/소스, 냉장스프, 김치류 등 온도 민감식품을 우선 관리대상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유통기한, 소비기한, 품질유지기한 임박 제품에 대한 기부제도가 활발히 도입돼야 한다. 식량자급률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나라에서 아깝게 버려지는 식품 폐기물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 국민들의 식품기한 관련 인식 개선과 기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우선돼야 한다.

소비자들은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이 찍힌 식품의 안전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제조업체에서는 도입 초기 소비기한을 보수적으로 안전마진을 충분히 두고 설정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유통업체는 콜드체인 확보, 보관온도 등 유통, 저장조건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소비자도 소비 전까지 보관 책임이 있으므로 표시를 확인하고 가정에서의 보관조건을 잘 지키면서 소비해야 한다. 정부는 제도 도입 초기에 철저한 시장 감시와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하며, 도입 안정기까지는 당분간 기 설정된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품목별 권장소비기한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중앙대학교 식품공학부 교수(식품안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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