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식품의 소비기한 표시제도가 의미하는 것
[기고] 식품의 소비기한 표시제도가 의미하는 것
  • 이철호 명예교수
  • 승인 2022.02.15 0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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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위한 제도…음식물 쓰레기 줄이는 데 도움
유예기간 남은 제품·포장재 소진에 필요한 시간
업계 재고 관리·수거 등 새로운 유통 체계 갖춰야
이철호 고려대 명예교수(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명예이사장)
△이철호 고려대 명예교수
△이철호 고려대 명예교수

내년부터 시행될 식품의 소비기한 표시제도에 대한 관리 당국과 생산업체 간의 논의가 뜨겁다. 이제까지 생산자를 위한 지도 관리 목적으로 유통기한을 표시하도록 한 것을 소비자를 위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표시제도로 전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식품산업이 자율적으로 유통 안전관리를 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소비자 관점의 표시제도로 선진화하는 과정이다.

소비기한 표시제도가 큰 무리 없이 안착하려면 새로운 표시제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소비기한 표시제도가 시행되면 식품의 판매 기간이 약 1.5배 늘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불성설이다. 소비기한 표시제도는 유통기한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다. 소비기한 표시만으로 식품의 저장성이나 위생안전성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비기한 표시제도는 생산자들이 자율적으로 유통기한을 관리하는 제도이다. 식품산업이 이것을 등한시하면 식품안전사고가 빈발하게 되고 커다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필자는 소비기한 표시제도가 논의되기 시작할 때부터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병기하는 제도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번거롭고 혼란스럽다는 이유로 유통기한이 수면 아래로 잠기게 됐다. 소비기한만을 표시하는 제도는 식품생산 및 유통업자들에게 스스로 유통기한을 관리할 책임을 부과하는 제도이다.

그러면 왜 이토록 위태하고 어려운 제도를 시행하는가? 그것은 소비자들이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오인해 멀쩡한 식품을 내버리기 때문이다. 식량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에서 공급되는 식량의 1/3을 쓰레기로 버리고 있다. 환경부 발표에 의하면 음식물쓰레기로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이 연간 15-18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연간 발생하는 음식물 폐기량 548만 톤의 70%가 가정과 음식점에서 발생하며, 그중 40%가 유통기한이 경과한 식품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막대한 식량 손실을 막기 위해 어렵더라도 소비기한 표시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다.

소비기한 표시제도가 시행되면 식품기업은 유통기한과 소비기한 모두를 설정하고 유통기한이 경과한 제품을 시장에서 스스로 수거해야 한다. 필요에 따라 수거 작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 권장유통기한을 별도로 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종전의 제도와 다른 점은 수거된 제품의 처리 과정이다. 수거된 제품의 소비기한이 넉넉히 남아 있으므로 반값 판매나 푸드뱅크 등에 기부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멀쩡한 식품을 버리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 있게 된다. 양극화의 폐해를 줄이고 기업의 사회적 기여 폭을 넓히는 일이다.

올해는 소비기한 표시제도를 준비하는 유예기간이다. 이 기간에 식품기업은 유통기한이 경과한 식품의 수거처리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생산 로트별 재고관리, 유통관리, 수거체계 등 종전과 다른 새로운 시스템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유통기한이 경과한 제품이 유통라인에 남아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소매상들과의 긴밀한 협력 체계도 갖춰야 한다. 권장유통기한을 별도로 표시하면 유사시에 책임 회피가 쉽고 재고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다.

관리 당국은 기업들이 책임을 덜기 위해 소비기한을 유통기한에 가깝게 설정하는 문제를 관리 감독해야 한다. 유통기한 표시는 통상 최상위 품질 유지 기간의 70%에 설정되지만, 소비기한은 최상위 품질 유지기한보다 2배 이상 오래 유지된다. 기업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소비기한을 유통기한에 가깝게 설정하면 소비기한 표시제도의 의미가 상실된다.

소비기한은 생산자와 관리 당국의 면밀한 검토 아래 합리적으로 설정돼야 한다. 올해 1년의 유예기간은 제품 재고와 포장재의 소진을 위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표시제도를 제대로 시행하기 위한 제도의 이해와 새로운 유통체계를 갖추기 위한 기간으로 사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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