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윤 회장님의 별세 소식을 접하면서 슬픈 마음을 가눌 수 없다. 나에게 전중윤 회장님은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의 고문님으로 더 가깝게 느껴지는 분이다.
5년 전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을 설립할 당시 나는 우리나라 식품대기업 회장님들께 식량안보의 중요성과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일에 식품산업이 나서 줄 것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다. 이 편지를 받고 전회장님은 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말씀하셨다. “이 교수, 나는 왜정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배고픈 것을 경험한 사람이야. 오늘 젊은이들이 배고픈 걸 모르고 음식이 귀한 줄 모르니 참으로 걱정이네. 이 교수가 이 일에 앞장서서 우리나라 식량안보를 공고히 하는데 노력해 주게.”
이 말씀에 감동되어 전회장님을 사무실로 찾아뵈었다. 90이 넘은 연세에 꼿꼿한 자세로 맞으시면서 일본에서 출판된 식량안보 관련 서적 복사본 다섯 권을 책상위에 준비해 놓으셨다가 저에게 주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미리 준비해 두신 재단후원금을 주셨다.
명예회장실을 나오면서 나는 말할 수 없는 감동에 휩싸였다. 우리 사회가 이처럼 발전한 것은 이분 같은 훌륭한 선각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회장님의 이 고매한 뜻을 받들어 반드시 이 나라의 식량정책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일에 진력할 것을 다짐했다.
전회장님은 우리나라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나 이 사회로부터 적지 않은 고통을 받으신 분이다.
나는 1997년 ‘식품위생사건백서’ 1권을 내면서 삼양라면의 우지파동을 심도 있게 다루었다. 검찰의 무지가 저지른 불행한 사건으로 오랜 법정공방 끝에 삼양식품이 승소하였으나 회사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타격을 받았다. 1970/80년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식품기업으로 국민의 허기진 배를 채워 주었던 삼양라면이 터무니없는 수난을 겪게 된 것이다.
전회장님은 대관령에 대규모 목장을 건설하여 우리나라 산지농업의 모델을 보여주신 분이다. 그러나 2년 전 발생한 구제역 파동으로 대관령에서 건강하게 살고 있던 수 백 마리의 젖소를 생매장해야하는 비운을 맞았다. 구제역 청정국의 지위를 유지하지도 못하면서 추진한 정부의 지나친 살처분 정책으로 가족처럼 애지중지하시던 소들을 잃은 것이다. 그 충격이 너무 커 끝내 유명을 달리하셨다. 다시는 이런 불상사들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싶다. 전회장님의 고매한 인격과 높은 뜻을 우리 후진들이 물려받아 이 사회를 좀 더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를 대신해서 회장님께 무릎 꿇어 사죄합니다. 못다 하신 뜻을 우리 후진들에게 남겨두시고 이제 훌훌 가벼우신 몸으로 평화로운 하늘나라에서 영면하시옵소서.”
2014년 7월 11일
이철호(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