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왕’ 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 별세
‘라면왕’ 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 별세
  • 이재현 기자
  • 승인 2021.03.2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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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면 등 한국의 맛 ‘K-라면’ 세계화 주역
연구 개발·최고 품질로 세계 속의 농심 일궈
짜파게티·새우깡 등 작명에도 뛰어난 능력
100여 개국 수출…비싼 가격으로 고급 이미지

“농심 브랜드를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 얼큰한 맛을 순화시키지도 말고 포장 디자인도 바꾸지 말자. 최고의 품질인 만큼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확보하자. 한국의 맛을 온전히 세계에 전하는 것이다.”

지난 27일 별세한 농심 창업주 신춘호 명예회장이 90년대 해외 수출 본격화를 앞두고 한 말이다.

△스스로를 ‘라면쟁이’로 부르며 국내 라면산업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신춘호 농심 창업주가 지난 27일 향년 92세 나이로 별세했다.(제공=농심)
△스스로를 ‘라면쟁이’로 부르며 국내 라면산업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신춘호 농심 창업주가 지난 27일 향년 92세 나이로 별세했다.(제공=농심)

전 세계에 한국의 매운맛을 제대로 보여준 ‘K-라면’의 선구자 신춘호 회장이 영면에 들어갔다. 올해로 향년 92세다.

마지막까지 “거짓 없는 최고의 품질로 세계 속의 농심을 키워라!”라는 당부의 말을 남기고 간 신 회장은 지난 50여 년간 강조해온 품질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짚으며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에 그치지 말고 체계적인 전략을 갖춰 세계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할 정도로 평생 품질 제일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조했다.

스스로를 ‘라면쟁이’ ‘스낵쟁이’라 부르며 직원들에게도 장인 정신을 주문한 신 회장의 브랜드 철학은 반드시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둘 정도로 “다른 것은 몰라도 연구개발 역량 경쟁에서 절대 뒤지지 말라"라는 우리만의 독자기술을 강조한 신 회장은 농심만의 특징을 살리고 가장 한국적인 맛을 살리는데 집중했다.

일례로 1971년 새우깡 개발 당시 4.5톤 트럭 80여 대 물량의 밀가루를 사용하면서 개발한 일화는 유명하다.

‘국민 라면’ ‘국민스낵’이라고 불리는 신라면, 짜파게티, 새우깡 등은 이러한 신 회장의 뚝심으로 개발된 것이다.

신 회장의 또 다른 능력은 ‘작명’이다.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이나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 농심의 역대 히트 작품에는 신 회장의 센스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이 중에서도 대표작은 역시 신라면이다.

“저의 성(姓)을 이용해 라면 팔아보자는 게 아닙니다. 매우니까 간결하게 ‘매울 辛’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출시 당시에는 파격적인 이름이었다. 당시 브랜드는 대부분 회사명이 중심으로 돼있었고, 한자를 상품명으로 쓴 전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회장이 발음이 편하고 소비자가 쉽게 주목할 수 있으면서 제품 속성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이름이 중요하다며 임원들을 설득했다.

이렇게 탄생한 신라면은 1991년부터 국내시장을 석권하는 국민 라면으로 등극했고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첨병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신 회장은 해외 진출 초기부터 신라면의 세계화를 꿈꿨다. 한국 시장에서 파는 신라면을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는 것이다. 한국의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여기에 고급의 이미지도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제품인데, 나라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실제 신라면은 미국 시장에서 일본 라면보다 대부분 3~4배 비싸다. 월마트 등 미국 주요 유통채널에서는 물론이고, 주요 정부 시설에 라면 최초로 입점돼 판매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한국 특유의 얼큰한 맛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등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수출돼 한국 식품의 외교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마지막 작품은 옥수수깡이다. “원재료를 강조한 새우깡이나 감자깡, 고구마깡 등이 있고 이 제품도 다르지 않으니 옥수수깡이 좋겠다”고 했다. 옥수수깡은 작년 10월 출시됐고, 품절대란을 일으킬 만큼 화제가 됐다.

신춘호 회장의 라면은 배고픔을 덜어주는 음식에서 개인의 기호가 반영된 간편식으로 진화했다. 국민들의 삶과 깊숙하게 연결되며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신춘호 회장의 농심은 끊임없는 도전의 역사로 한국을 넘어 세계시장에서 그 활약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러한 신춘호 회장의 기업 철학을 후대에서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30일 진행된 故 신춘호 농심 회장의 영결식에서 신동원 농심 부회장은 "농심의 철학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믿음이 바탕이며, 노력한 것 이상의 결실을 욕심내지 않는 것이다. 아버님이 가지셨던 철학을 늘 잊지 않겠다"라며 “농심은 농부의 마음이며, 흙의 마음이다. 아버님이 살아오시는 동안 가슴속 깊이 품었던 마음을 고스란히 받들어 이어가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박준 농심 부회장은 "40년간 회장님을 모시며 배운 것은 좋은 식품으로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철학과 라면으로 세계 1등을 해보자는 꿈이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골라 묵묵히 걸었고 그 결과 신라면과 같은 역사를 바꾼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라고 회고하며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신 창조정신과 멈추지 않는 열정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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