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상품 근절할 ‘부정경쟁방지법’에 촉각
미투 상품 근절할 ‘부정경쟁방지법’에 촉각
  • 이재현 기자
  • 승인 2021.05.31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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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청 ‘추진단’ 구성 기술·디자인 관련 형태 모방·짝퉁 등 지침 마련키로

특허청이 식품 디자인 모방 등을 방지하는 가이드라인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달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 비밀 보호 기본계획 수립 추진단’ 출범을 알린 특허청은 기술·영업 비밀 유출 차단, 데이터 무단 사용 등 신(新) 유형의 부정경쟁행위 근절 등 지식 재산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종합 계획을 발표했다.

추진단은 카이스트 이광형 총장을 단장으로 산업계, 학계, 법조계 등 30여 명의 민간위원을 중심으로 구성됐으며, 위원들은 앞으로 기술 보호, 부정경쟁 방지, 디지털·국제협력 등 3개 분과에서 활동하게 된다.

부정경쟁 방지 분과에 포함되는 식품의 경우 형태 모방, 짝퉁 등 전통적 부정경쟁 행위와 새로운 부정경쟁행위 규율이 마련될 방침이다. ‘부정경쟁방지법(타인의 아이디어를 부당하게 사용하거나 영업 비밀을 침해하는 행위를 막는 법)’을 손보며 식품업계 잡음이 끊이지 않는 미투 상품을 근절하겠다는 취지다.

실제 식품업계 디자인 관련 분쟁은 1997년 ‘초코파이’를 시작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최근에는 CJ제일제당-오뚜기 ‘컵밥’, CJ제일제당-아워홈 ‘냉면’ 등이 분쟁을 겪었다. 접수된 부정경쟁행위 신고 중에서도 상품 형태 모방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특허청 산업재산보호 협력국 산업재산보호 정책과 관계자는 “소비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면서 디자인 등록이 쉽지 않은, 특히 식품 분야에서 모방행위가 자주 발생하고 있어 업계가 R&D를 통한 고유 디자인의 경우 제도권 내에서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된다"라며 “언론 등을 통해 접근 가능한 제한적인 정보만으로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 능동적인 대응이 미흡하다"라고 계획 추진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특허청은 부정경쟁행위 중점관리 업종 관련 협·단체와 함께 미투제품 단속 및 형태모방 판단기준을 마련하고, 부정경쟁행위 피해사례 발굴 및 부정경쟁방지를 위한 계도 활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또 행정조사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시정명령제를 도입하고, 시정명령 불이행 시 과태료, 명령불이행죄 등을 검토할 방침이다.

찬 성

인기 브랜드 모방 많아 피해…승소율도 낮아
R&D 투자 불구 유사 디자인 못 막아 답답

반 대

강제성 지침 분쟁 야기…업계 범죄율만 높여
작은 면적 색깔 등 차별화, 中企엔 쉽지 않아

업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산업 전반적으로 만연한 미투 행위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주장과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자칫 법적 분쟁만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R&D 투자가 타 산업 대비 소홀한 식품업계의 경우 1위 브랜드나 인기 브랜드 또는 경쟁 관계에 있는 스타 브랜드를 모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독창성과 차별성을 전제로 할 경우 소송에서 원조 제품이 승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이번 ‘부정경쟁방지법’ 가이드라인을 통해 이러한 폐해가 사라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식품업계는 보통 2년 주기로 패키지 디자인을 변경한다. 이 경우 R&D 투자를 통한 디자인 개발은 물론 동판 등 설비를 교체한다. 이때 상품이 시중에 출시되면 곧바로 유사 디자인이 활개를 치지만 이를 근절할 방안이 없어 답답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식품 분야는 트렌드가 워낙 빨리 변해 소비 니즈에 충족하는 제품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R&D 투자를 통한 독창적인 제품 개발이 아닌 베끼기 문화가 어느 정도 형성된 것 같다. 이는 결국 업체 각각의 아이덴티티가 사라지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반대의 목소리도 크다. 업계 관계자는 “식품산업 만연한 미투 근절은 반드시 추진돼야 하지만 사실상 강제성을 띠는 가이드라인까지 마련하는 식의 접근은 오히려 식품업계 분쟁만 야기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현재도 특허청 내 특사경이 식품 모방 제품에 대해 조사하며 관련 고소건이 이어지고 있는데, 가이드라인까지 마련한다면 식품업계 범죄율만 높아진다는 것이다.

다른 관계자는 “상품 주기가 짧은 식품의 경우 R&D 투자를 통한 디자인 개발이 쉽지 않다. 중소기업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손바닥 크기의 한정된 면적에서 무슨 차별화된 디자인이 나올 수 있겠는가. 특히 식품 대기업의 경우 각사마다 고유 컬러를 시그니처로 사용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컬러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미투 상품의 경우 대기업 간 분쟁보다는 디자인 개발이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더딘 중소기업에서 종종 발생한다. 이러한 부분이 반드시 근절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중소 식품업계 경영 악화가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정책이 오히려 이들을 더욱 수렁으로 몰고 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라며 계몽·교육·홍보 등을 통한 환경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봉준 식품산업협회 산업진흥본부장은 “주요 골자는 특허청 주제로 전문가 분과위를 통해 식품 포장 디자인 모방 근절 등 관련 사안을 5개년에 걸쳐 논의하자는 것이다. 제도를 개선할 것인지, 또 다른 아이디어를 통해 추진할 것인지는 현재 아무것도 정해진 바가 없다”라며 “일단은 매월 회의를 통해 각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조금씩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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