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많은 ‘원유가격 생산비 연동제’ 본격 수술
말많은 ‘원유가격 생산비 연동제’ 본격 수술
  • 황서영 기자
  • 승인 2021.08.3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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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값 상승에 유업체·소비자 부담 가중…정부 연내 중장기 방안 마련키로
수급 상황·경쟁력 등 고려 가격·거래 체계 개편
용도별 차등제 등 논의 병행 연구 용역도 실시
업계·소비자단체 등 환영…낙농가 설득이 과제

정부가 ‘원유가격 생산비 연동제’를 개편하겠다고 선언했다. 연동제가 시행된 지 8년 만의 일이다. 원유 수요의 감소는 고려하지 않고 생산비 증가만을 반영하는 구조가 우유 제품 가격의 상승을 부추겨 소비자와 유업체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오랜 지적 끝에 내린 결론이다.

△25일 농식품부와 낙농가, 우유업계 등을 중심으로 ‘낙농산업발전위원회(이하 발전위)’가 발족, 정부 주도의 낙농제도 개선에 나선다. 사진은 (왼쪽)발전위 부위원장인 농식품부 김인중 식품산업정책실장과 청년낙농인들의 낙농진흥회 항의방문 시위 현장. (사진=농식품부, 한국낙농육우협회)
△25일 농식품부와 낙농가, 우유업계 등을 중심으로 ‘낙농산업발전위원회(이하 발전위)’가 발족, 정부 주도의 낙농제도 개선에 나선다. 사진은 (왼쪽)발전위 부위원장인 농식품부 김인중 식품산업정책실장과 청년낙농인들의 낙농진흥회 항의방문 시위 현장. (사진=농식품부, 한국낙농육우협회)

원유가격 생산비 연동제에 손을 대기로 결정한 것은 이제껏 농업의 국가 기반사업적 성격을 강조하며 낙농가의 편에 섰던 정부가 물가 상승 등 불안정한 시장 상황에 유업체들의 손을 슬며시 들어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노후한 원유가격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해왔던 유업계는 정부의 이 같은 결정을 반기고 있지만 낙농가들과 관련 단체들은 농가 소득이 줄어들 것이라는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5일 농식품부와 낙농가, 우유업계 등은 박영범 농식품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낙농산업발전위원회(이하 발전위)’를 발족, 1차 회의를 진행했다. 발전위는 낙농 제도 개선 및 발전방안을 논의해 연말까지 중장기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발전위는 원유의 수급 안정, 가격 결정체계, 거래체계의 개선, 생산비 절감과 생산성 향상 등이 주요 과제로 관계부처, 학계, 소비자, 생산자, 수요자 등이 참여하며 전문가로 이루어진 자문단과 축산정책국장이 총괄하는 제도 개선 실무 추진단이 운영된다.

발전위의 발족은 결실 없이 논의만 하던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정부 주도의 제도 개선 논의를 이뤄낸다는 각오가 보이는 대목이다. 이때까지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년간 낙농진흥회를 통해 생산자, 수요자, 전문가, 소비자가 참여하는 소위원회를 운영하며 제도 개선을 논의해왔으나 이에 따른 진전이 없었던 것이 발전위 발족에 큰 몫을 했다. 생산자가 반대할 경우 이사회 개의가 불가능하다는 진흥회의 정관상 생산자 측에 민감한 사안이 나올 때마다 보이콧을 진행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앞으로 발전위에서 가장 골자가 될 문제는 비합리적인 가격 책정 정책으로 지적돼 왔던 ‘원유가격 생산비 연동제’다. 현 생산비 연동제는 시장가격의 반영이 힘들다는 판단하에 제도 개선의 첫 타자로 지목됐다. 국산 원유 소비량이 지속 줄어드는 상황에 원유가격은 올라 시장수급 상황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원유의 수급 상황, 국내외 가격차, 국제 경쟁력, 낙농가 수익성 등 변수를 고려해 가격 및 거래체계를 개편한다는 것이 목표다.

△(자료=농식품부)
△(자료=농식품부)

발전위에서는 1년여간의 소위원회를 통해 ‘용도별 차등가격제’ ‘유지방률 등 인센티브 기준 개선’ ‘밀크마케팅보드(MMB) 설치’ 등 개선책이 제기된 것을 바탕으로 심층 논의하고 전문가 연구용역도 실시해 제도 개선 최종안을 연말까지 마련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농식품부는 관련 추가 예산 지원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농식품부 관계자에 따르면 품목 특정 예산으로 낙농업에는 연간 약 1200억 원이 지원되고 있으며 과잉 생산되는 원유를 처리하기 위해 직접 지원되는 수급조절 지원금은 330억 원가량 소요되고 있는 상황이다. 농식품부는 발전위 관련 브리핑을 통해 추가적인 예산 소요가 들어간다면 늘릴 의지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러한 계획에 1차 발전위 회의에서 한국유가공협회 이창범 회장은 연내 중장기 산업발전 방안 마련을 주문하면서 “이제는 정부가 결론을 내릴 시점”이라며 “비대칭적 제도로 인해 대부분 유업체의 영업이익이 적자 상태로 우유를 팔아도 수익이 나지 않아 투자가 불가능하다. 왜 유업체가 팔리지도 않는 원유를 사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매일유업과 남양유업 등 유업체 대표들도 “수입산 멸균유가 리터당 1180원에 판매되고 있는 것에 비해 국내 원유는 가격 경쟁력이 낮아 소비자에게 경쟁력 있는 제품을 공급하기 곤란하다. 국내 원유가격에서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 낙농과 유가공산업은 지속 가능할 수 없다”고 하면서 “내부에서 싸울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해 수입산 제품과 경쟁하기 위해 제도를 개선하고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겨우 유지되고 있는 시유 시장마저 수입산 제품으로 바뀔 수 있어 정부에서 경쟁력 있는 원유가격 제도를 만들어 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비자단체와 학계도 제도 개선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여성소비자연합과 소비자단체협의회는 “우리나라 소비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우유를 먹고 있다. 시장수요가 반영되지 않고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는 결국 소비하지 않게 된다”며 “어떻게 하면 기초식품인 우유의 가격을 개선할 것인지 고민하고 개선해야 한다. 20년 전에 만들어진 낙농진흥회 정관으로 인해 현안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규정을 과감히 고쳐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한편 축산관련단체협의회(이하 축단협)은 24일 성명서를 통해 “올바른 농정수립 및 축산농가의 생존권 대책은 마련하지 않은 채 물가 안정이라는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농민들을 강도 높게 핍박하고 있다”며 정부 정책에 불만을 표하며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을 사퇴를 요구했다.

축단협은 물가 명목으로 낙농진흥법과 낙농진흥회규정에 따라 원유가격의 동결을 위해 낙농가를 향한 회유·압박도 모자라 위법한 행정명령을 발동하면서까지 불법적인 직권남용을 행사했다며 정부가 사료값, 인건비, 환경규제 관련 시설투자 등 생산자물가를 폭등시켜놓고 지난 8년간 리터당 7원 오른 원유가격이 물가상승의 주범인양 몰아세웠다고 주장했다.

발전위 회의에서도 반대 의견은 이어졌다. 유업체들의 과도한 유통마진이 우유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한 낙농육우협회의 이승호 회장은 “낙농제도는 그동안 정부, 생산자, 수요자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 전통이었는데, 지금은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포기하고 산업 현장과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있다. 낙농산업 발전 위원회가 산업발전을 위한 것인지, 저해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낙농가들의 반발에도 정부는 발전위를 중심으로 한 정부 주도의 제도 개선 의지를 굳히고 있다. 이번 생산비 연동가격제의 개선과 같이 낙농가의 이익과 상치되는 사안에 대한 결정 시 이들을 설득하고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가 남은 셈이다.

발전위 부위원장인 농식품부 김인중 식품산업정책실장은 “낙농산업발전위원회의 기본 목적은 낙농산업의 지속가능하고 궁극적인 발전”이라며 “협의과정에서 생산자-수요자 양측 갈등이 보여지기는 하겠지만 이는 지향하는 목적의 한 일부일 뿐 장기적인 발전을 추진한다는 부분을 생산자들에게 전달하고 낙농산업을 위한 다양한 발전 방안을 충분히 논의함으로써 충돌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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