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판례 여행(46)] ‘물다대기 고춧가루 변신’ 사건
[식품 판례 여행(46)] ‘물다대기 고춧가루 변신’ 사건
  • 강선주 변호사
  • 승인 2022.06.20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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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 기간 중 식위법 개정…처벌 가능한가
법 개정 전 영업은 舊法 위반…개정 후 미신고는 처벌 불가

● 여행의 시작

△강선주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강선주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죄형법정주의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형사상 처벌하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 즉 법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법률들이 개정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처벌규정이 사라지기도 한다. 기존에 처벌을 했던 사안을 더 이상 처벌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A는 중국에서 고춧가루를 수입하는 경우 관세가 270%인 것에 비해 고춧가루 함량이 40% 미만인 혼합양념(속칭 물다대기)을 수입하는 경우 관세가 45%밖에 부과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물다대기를 수입하여 건조, 분쇄한 후 이를 고춧가루로 판매하였다.

그러자 검찰은, A가 2012. 6.경부터 2013. 2. 20.경까지 파주시 광탄면 소재 비닐하우스에서 식품제조영업신고를 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중국에서 수입한 물다대기 약 40,000kg을 고추씨분말과 섞어 2차에 걸쳐 약 15시간 동안 건조하고 이를 잘게 부수는 등의 방법으로 외관상 고춧가루로 보이는 식품 약 16,000kg을 제조하였다는 이유로 A를 미신고 식품제조 혐의로 기소하였다.

1, 2심이 모두 A의 유죄를 인정하자, A는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하였다.

● 쟁 점

식품제조·가공업을 신고업종에서 등록업종으로 변경하는 개정 식품위생법령이 시행된 2012. 12. 8. 이후 이루어진 미신고 식품제조영업을, 개정 전 식품위생법령에 근거하여 처벌할 수 있을까?

<대법원의 판단>

구 식품위생법령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영업을 하려는 자는 영업종류별 또는 영업소별로 ‘신고’하도록 규정하였으며, 구 식품위생법 시행령은 영업신고를 하여야 하는 업종으로 ‘식품제조·가공업’을 규정하였다. 그런데, 구 식품위생법이 개정되면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영업을 하려는 자는 영업종류별 또는 영업소별로 ‘등록’하여야 하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구 식품위생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등록하여야 하는 영업으로 ‘식품제조·가공업’을 규정하였다. 한편 이와 같이 개정된 식품위생법과 그 시행령은 각 부칙 제1조에 따라 2012. 12. 8.부터 시행되었다.

구 식품위생법과 그 시행령의 내용에 의하면, 2012. 12. 8. 이전의 미신고 식품제조영업은 구 식품위생법령에 의하여 처벌된다. 그러나 개정된 식품위생법과 그 시행령이 시행된 2012. 12. 8.부터는 식품제조·가공업이 신고업종에서 등록업종으로 변경되었으므로 그때부터 이루어진 미신고 식품제조영업을 구 식품위생법령에 의하여 처벌할 수는 없다. 한편 미등록 식품제조영업을 처벌하는 규정은 2013. 10. 31.부터 시행되었다.

A의 2012. 6.경부터 2012. 12. 7.까지 미신고 식품제조영업의 점에 대하여 살펴보면,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유지한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A의 2012. 12. 8.부터 2013. 3. 20.경까지 미신고 식품제조영업의 점에 대하여는 앞서 본 바와 같이 처벌할 수는 없다(대법원 2014. 1. 16. 선고 2013도12308 판결).

● 여행을 마치며

식품위생법과 같이 매우 복잡한 행정사항들을 규정하고, 또 위반행위를 형사처벌하는 법들은 수시로 개정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입법자가 처벌의 공백이 생기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처벌규정의 근거가 되는 행정규정들을 삭제하거나 개정하는 바람에 관련 위반행위를 처벌할 수 없는 일이 종종 생기게 된다. 이러한 문제점이 드러나면 부랴부랴 법을 개정하지만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기존 위반행위를 처벌할 수는 없게 된다.

이 사건에서도 우연히 ‘식품제조·가공업’을 영위하기 위한 절차였던 신고제를 등록제로 바꾸는 과정에서, 무등록 영업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지 않는 바람에 A의 일부 범죄사실이 무죄가 되었다. 식품위생법과 같이 복잡한 법의 경우 설령 잘못을 하였더라도 진짜 처벌되는 것인지 세심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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