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쌀·콩 식문화 한반도 기원설 유력
[기고] 쌀·콩 식문화 한반도 기원설 유력
  • 이철호 명예교수
  • 승인 2020.10.19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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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명예이사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이철호 명예이사장
△이철호 명예이사장

독립문명을 자랑하는 국가들은 그들의 음식문화에 대한 기원설을 발굴해 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고학을 비교적 일찍 발전시켜온 유럽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밀과 보리가 처음 재배되었으며, 염소, 양, 소 등도 이 지역에서 처음 길들여졌다고 주장한다.

러시아의 식물육종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Nikolai I. Vavilov, 1887-1943)는 쌀의 기원지를 인도라고 주장하였으나, 고고학 연구를 유럽보다 1세기 정도 늦게 20세기 초에 시작한 중국에서 여러 고고학 자료와 문헌 근거를 제시하여 중국이 인도보다 앞서 쌀 재배를 시작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Ping-Ti Ho, 1975: Liu & Chen, 2012). 인도의 가장 오래된 고대쌀 유적은 기원전 1700년으로 기록되며(야생종인지 재배종인지 구분이 안 되는 탄화쌀은 기원전 3000년대의 것이 보고된 적이 있지만), 기원전 1000년에 쓰여진 인도의 가장 오래된 산스크리트어 책 ‘Rig-Veda’에는 밀과 보리는 언급되어 있으나 쌀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에는 상(商, 기원전 1600-1046)대의 신탁이나 주(周, 기원전 1050-256)대의 문헌에서 쌀과 쌀술에 대한 기록들이 여럿 발견되고 있으며, 고고학적으로도 기원전 4000년 경의 재배벼(인디카 계열)가 양자강 유역 하모도 유적에서 발굴되고, 기원전 3300년의 양저문화 유적에서도 장립벼와 단립벼가 함께 발굴되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이나 중국보다 고고학 연구가 반세기나 늦게 출발한 한반도에서 기원전 12,500년경으로 추산되는 재배벼 소로리 볍씨(단립벼)가 발굴되면서 쌀의 재배기원이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리고 있다(이융조, 2014). 신용하(2018)는 단립벼의 재배 기원지는 한강유역의 고조선문명이라고 주장한다.

콩의 재배는 다른 곡물(쌀, 기장, 조, 수수)보다 훨씬 늦은 기원전 2000년경에 시작된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보고 있다. 콩의 원산지에 관해서도 많은 설이 있었다, 일본의 후쿠다(福田, 1933) 박사는 야생콩의 분화가 많이 된 곳이 원산지라는 주장을 토대로 만주와 한반도를 원산지로 보았다. 미국의 하이모위츠(Hymowitz, 1970)는 중국 주나라의 시를 수록한 시경(詩經, 기원전 11-6세기)에 콩 숙(菽)자가 있다는 근거로 중국을 원산지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권신한(1985)은 한국 재래종이 현재까지 세계 각국에서 보고되어 있는 콩이 지니는 각종 특성을 모두 보유하고 있어 한국이 콩의 원산지라고 결론지었다.

콩을 재배하고 이용한 확실한 증거는 신석기 중기 이전의 유적에서는 발견된 것이 없다. 중국에서는 용산문화기(기원전 3000-2000년)와 상(商)나라 시대까지의 유적에서 콩이 다수 발견되었으나, 최근 미국 오레곤주립대학의 이경아(2012) 교수는 한·중·일 삼국에서 신석기시대에 발굴된 949개의 탄화콩에 대한 크기를 측정하여 비교한 결과 한반도 초기 무문토기시대(기원전 1600-600년)의 탄화콩들이 길이(L)와 넓이(W)가 뛰어나게 큰 대두(大豆)임을 확인하였다. 이로써 중국의 양사오, 용산문화 유적에서 출토된 탄화콩들은 대부분 야생콩이며 재배콩은 기원전 2000년경의 한반도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유력해 진다.

기원전 6세기에 쓰여진 일주서(逸周書)에는 중국 동북지역의 콩이 처음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는 ‘산융(山戎)은 동북이이(東北異夷)다. 융숙(戎菽)이 나는데 큰콩(巨豆)이다’라고 쓰여있고, ‘서주(西周, 기원전 7세기)가 상(商)을 정벌하고 조공을 받는 과정에서 산융에서 보내온 콩, 융숙(戎菽)을 받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일주서의 내용과 비슷한 기록들이 사마천의 사기와 중국 고전 관자(管子)에도 나온다. 홍콩대학의 호핑티(何炳棣, 1975) 교수는 이에 근거하여 재배 콩은 지리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볼 때 퉁구스족에서 유래하였다고 주장한다.

대한해협의 원시토기문화시대(기원전 8000-5000년)를 거치면서 한반도의 원주민들은 어로 채집과 지역에서 자생하는 벼, 기장, 조를 비롯한 곡류채식문화를 점진적으로 발전 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기마 유목민족이었던 북부지역의 퉁구스족이 한반도로 들어와 농경 정착을 하면서 가축을 많이 기를 수 없게 되므로 고기를 대체할 안정적인 단백질 급원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필요에 의하여 그들은 이 지역에서 자생하던 콩을 재배하여 물에 불린 후 토기에 담아 삶아 냄으로서 트립신인히비터와 같은 영양 저해인자를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했을 것이다. 따라서 동이(東夷) 예맥족(濊貊族)은 인류사상 최초로 콩을 음식으로 이용한 사람들로 여겨진다. 동북아시아인의 주식인 쌀과 콩의 기원지가 한반도일 수도 있다는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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