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식품의 등장과 식품시장의 변화④:정제(精製) 식품-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250)
신(新)식품의 등장과 식품시장의 변화④:정제(精製) 식품-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250)
  • 하상도 교수
  • 승인 2021.04.05 0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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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등 불순물 뺀 정제 식품 거부감 왜 그럴까
안전성·위생 측면 우수한 프리미엄 가치 지녀

예전 SBS 일요특선 다큐멘터리 ‘정제란 무엇인가?’가 충격을 준 데 이어 아직도 인터넷에는 많은 천연(天然) 찬양, 정제(精製) 비하 글들이 난무하고 있다. “정제 밀가루는 통밀로부터 여러 공정을 거치면서 영양성분이 많이 빠져나가 소량 섭취는 우리 몸에 나쁘지 않지만, 과도하게 섭취하면 비만, 성인병, 당뇨 등 악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라는 엉터리 이야기도 있고, “정제염은 나쁜 인공(합성) 소금, 천일염은 좋은 자연(천연) 소금”이라는 괴담도 있다. 주로 엉터리 쇼 닥터나 쉐프들이 하는 이야기다.

△하상도 교수
△하상도 교수

표준국어 대사전에 ‘정제(精製)’는 “정성을 들여 정밀하게 잘 만듦”, “물질에 섞인 불순물을 없애 그 물질을 더 순수하게 함”이라고 정의돼 있다. 위키백과에서도 ‘정제 식품’을 “가공, 도정 등을 통하여 불순물과 색소, 속꺼풀 따위를 제거한 식품을 말한다.”로 정의돼 있고 흰 설탕, 흰 밀가루, 흰 조미료, 흰 소금 등이 있다고 한다. 즉, 정제는 영양소가 제거되거나 나쁜 물질이 혼입되는 과정이 아니라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원물로부터 불순물이나 독(毒), 위해 인자를 제거하거나 원물을 보호하던 껍질, 색소 등 핵심적이지 않은 부위를 제거하는 행위로 원물의 가치(價値)를 높이는 과정이다. 즉, 원물을 하얗게 만드는 행위는 고급 제품을 만드는 것이므로 나쁘다고 할 수가 없다고 본다.

정제(精製)라는 단어를 영어로 살펴보면 refine, purification이다. 한 마디로 이물질을 제거해 깨끗하게 만들어 고급화한다는 좋은 의미다. 과거 일본에서 정제 식품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이는 깨끗하고 귀한 프리미엄 식품으로 선망의 대상이 됐었다고 한다. 무엇이든 비싸고 희소해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최근 식품가공 기술의 발달로 쉽고 싸게 정제된 음식을 접하게 되다 보니 너무나 흔해져서 그 가치가 평가절하 돼 버린 것이다. 오히려 바로 먹기 어렵고 저장도 쉽지 않아 잘 유통되지 못하던 천연 원재료 자체가 희소성과 향수 마케팅에 편승해 오히려 프리미엄 식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합성(合成)과 정제(精製)는 완전히 다른 말인데, 많은 사람들이 둘을 같은 의미로 묶어 버린다. 합성은 “둘 이상의 것을 합쳐서 하나를 이룸”이라고 정의돼 있어 합성은 더하기인 붙이는 것이고 정제는 나쁜 것을 제거해 핵심만 남기는 빼기 과정인데도 말이다.

돈을 들여 힘들게 정제한 식품임에도 불구하고 천연 그대로보다 천시 당하고 있는 대표적 음식이 바로 설탕과 소금이다. 백설탕은 원당, 흑설탕을 정제한 것이고, 정제소금은 바닷물을 사용해 부유물을 제거한 후 이온교환막을 통해 중금속과 불순물을 걸러내고 증발관으로 끓여 만든 소금이라 염화나트륨을 제외한 미네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천일염은 개펄인 염전에서 해수를 증발시키고 바닥을 긁어 얻기 때문에 토사(土沙)로부터 대부분 유래되는 미네랄이 많다. 어떻게 보면 염화나트륨의 농도가 높은 순수한 정제염이 진짜 소금이라 봐야하는데도 말이다.

안전성과 위생 측면에서는 당연히 ‘정제염’이 천일염보다 더 우수하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개펄이 오염돼 불순물과 유해 물질 우려 때문에 천일염이 지난 45년간 식용 불가능한 ‘광물’로 분류됐었다. 그러나 13년 전인 2008년 3월에야 식약처가 천일염의 중금속, 토사 등 식품으로서의 안전 기준규격을 설정하면서부터 다시 식품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우리 민족은 유독 ‘천연(자연)’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다. 반면 ‘정제(精製)’에 대해서는 인공적이라 거부감을 갖는 경향이 있다. ‘천연’제품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의 무분별한 노이즈마케팅이 분명 한몫했다고 본다. 물론 ‘천연’이 좋은 점도 있으나 기능이나 영양적 측면에서 인체에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다.

소비자는 천연이라는 제품에 효과 대비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비자들은 “천연은 자연 그대로!”, “정제는 천연상태의 원재료를 더 깨끗하고 순도 높게 만든 고급!”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알았으면 한다. 과학적 측면에서 실질적 제품의 가치를 평가해 보면 천연에 비해 정제가 프리미엄이라고 봐야 한다.

중앙대학교 식품공학부 교수(식품안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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