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원료 고집하는 지리적 표시제, 물만난 ‘K-푸드 세계화’에 걸림돌
국산 원료 고집하는 지리적 표시제, 물만난 ‘K-푸드 세계화’에 걸림돌
  • 이재현 기자
  • 승인 2021.11.23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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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방식 “다른 지역 원료 끌어와 스코틀랜드서 증류·숙성하면 ‘스카치 위스키’로 표시”
현행 제도는 수출 적고 WTO 대응 국내 농산물 보호 우선한 장치
국내 원료 가격 변동성-대량 납품 측면 취약…안정적 조달 어려움
원료 부족 해소·현지화 전략상 PGI와 PDO로 구분 운용 필요
국산 김치, 국가인증제로 보호 않을 땐 저가 중국산에 시장 뺏겨
가공식품엔 탄력 운용 병행 외국과 통상 협약 시 표시제 포함해야
△임정빈 교수(좌장)
△임정빈 교수(좌장)

1999년 국내 지리적표시 도입 이후 현재까지 등록된 가공식품은 녹차, 인삼, 떡, 한과, 장류, 주류 등 14건에 불과하다. 수산물까지 범위를 넓혀도 20건에 그친다. 무늬는 유럽의 PGI지만 형태는 PDO(원산지명칭보호)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산업협회 주최로 개최된 ‘가공식품 지리적표시제의 발전방향’ 세미나에서 토론자들은 가공식품의 경우 신선농산물과 다양한 가공용 농산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원산지 규정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 식품의 고유성을 확보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가공식품의 지리적표시제 보호는 지역 고유 식품의 명성을 유지하고 지역 가공식품산업의 발전과 가공업체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제도적 규제요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박재홍 교수
△박재홍 교수

박재홍 영남대 교수=국내 지리적표시제를 적용받는 품목에 대한 인증마크를 보면 PGI를 병기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PDO 개념을 준용하고 있다. PGI로 쓰고 PDO로 읽는 상황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둘을 혼용·사용하면서 오해가 발생하고 있다.

1999년 지리적표시제 도입 당시에는 WTO와 FTA 등에 따른 수입농수산물에 대응해 국내산 농수산물을 보호하는 성격이 강하게 작용했던 시기로, 우리 농식품 수출에 대한 고려가 그리 크지 않아 PGI와 PDO가 혼용·사용하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현재는 K-푸드의 위상이 높아지고 외국과의 교역이 증대돼 지리적표시제의 보다 명확한 구분과 정의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대표적인 예로 2010년 이후 10여 년 동안 지리적표시제 등록이 어려웠던 영광굴비에 대해 정부에서는 농수산물 품질관리법 시행령 15조 지리적 표시의 등록 거절 사유의 세부기준에 “국내에서 생산된 회유성 어류를 주원료로 해 대상 지역에서 가공한 경우에는 제외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것은 지리적표시제가 유럽의 PGI를 표방하는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가공식품은 다양한 원료를 사용하는 제품이 다수다. 한식의 세계화와 K-푸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현지화 전략도 필요하다. 만약 한식당의 해외 진출 시 원료에 대한 부분을 국내산으로 규정하게 되면 이들 업체가 과연 해외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제도적으로 PGI와 PDO를 구분해 제도를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국내산 원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도 진정한 한국 식품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반론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가공식품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원료에 국내산 사용에 대한 규정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지속돼야 한다.

△조상우 센터장
△조상우 센터장

조상우 풀무원기술원센터장=2020년 8월 정부는 김치에 대한 국가명 ‘지리적표시보호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김치를 한국 영토에서, 한국 원료로, 한국방식으로 제조하면 ‘한국김치(Korea Kimchi)’로 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외국산김치가 한국산으로 둔갑하는 것을 막고 국산김치 수출의 활성화를 위한 것이지만 법률의 시행령이 앞으로 PGI마크 표시허가조건을 김치제조에 사용되는 원료 100% 모두를 한국산으로 쓰는 경우로 엄격히 제한한다면 한국 김치산업 발전에 독이 될 수 있다.

값싼 외국산에 맞서 한국 김치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리적표시 선진국인 유럽의 PGI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스카치위스키의 경우 증류와 숙정과정이 스코틀랜드에서 이뤄지면 위스키 원료가 모두 스코틀랜드산이 아니더라도 스카치위스키로 표시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국내에서 부족한 원료가 있다 하더라도 지역적 특성과 역사적 정통성에 기반한 지리적표시 상품을 대량생산함으로써 세계화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농산물품질관리법에 의해 주원료가 국내산이면 지리적표시가 가능하도록 돼 있고, 김치산업진흥법에서는 김치의 주원료는 무게 순으로 3순위까지를 주원료로 한다고 정의돼 있다.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공급이 가능한 배추, 무, 양파, 마늘 등 농산물을 주원료로 사용할 경우 고춧가루 등 공급이 불안해 가격변동률이 큰 양념인 부원료는 해당 지리적표시 대상지역이 아닌 곳에서 생산하더라도 해당지역에서 생산한 품질기준을 만족한다면 허용을 할 필요가 있다.

국내산 원료 100%로 제조한 김치에만 지리적표시제를 부여한다면 세계 수출시장 확대를 위한 지리적표시 인증 김치의 생산은 해법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의 우리나라 지리적표시제도 역시 유럽식으로 이원화해 모든 원료가 해당지역에서 생산됐는지, 아니면 주원료만 해당지역에서 생산됐는지에 따라 PDO와 PGI와 같이 ‘원산지보호표시’와 ‘지리적보호표시’로 지리적표시의 정의를 개선해야 한다.

한류 확대 및 코로나19 여파로 우리나라 김치가 세계시장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미국 등 해외의 현지인 대상 김치 판매가 한인대상 판매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으나 그 확장세는 매우 급속히 증가하고 있으며, 인구동태학적 기반으로 본다면 시장성장 가능성은 한국 시장의 100배까지도 가능할 것이다.

김치 세계화를 위해 대한민국에서 생산한 김치를 국가인증제로 보호해 주지 않으면 김치가 일본의 스시와 같이 한국의 대표 식품으로 자리매김할 수는 있으나 저가 중국김치나 현지생산 김치에 시장을 빼앗긴다면 우리나라 김치산업의 활성화는 보장될 수 없다.

이제는 우리나라 지리적표시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 국내 산업발전과 고용창출 및 세수확대를 통한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안현구 부장
△안현구 부장

● 안현구 CJ제일제당 부장=최근 일본 유력 경제매체인 니혼게이자이의 스즈키 쇼타로 서울지국장은 ‘오징어 게임이 보여주는 일본의 잔영’이라는 칼럼을 통해 드라마에 나오는 놀이의 원조는 일본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오징어게임’ 등 우리나라 근현대 놀이 문화 중 상당수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부터 전파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드라마라는 콘텐츠에 녹여 세계인이 열광하게 한 것은 우리 대한민국이다. 이 같은 사례로 봤을 때 지금의 시대는 원류(origin)를 따지기보다는 그것을 실제로 이슈화 시키고 부흥시키는 주체가 중요한 시대이다.

최근 3년간 농식품 수출현황을 살펴보면 2018년 69억 25000만 달러, 2019년 70억 2500만 달러, 2020년 75억 64000만 달러로 매년 중가하고 있고 올해도 3분기까지 62억 달러로 연말까지 81억 달러를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이중 가공식품의 비중은 올해 기준 83%이다.

이러한 가공식품 수출증가세에도 정부는 국산농산물만을 이용해야 현행 지리적표시제에 해당이 된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식품산업은 아직까지 인력 투입이 많고 하방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국산농산물을 이용하지 않고 수입산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국가 산업에 긍정적인 측면이 크다. aT가 발간한 2020 식품산업 원료소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식품기업이 국산 농산물을 사용하기 어려운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원가측면과 일시에 대량으로 납품이 어려워서다.

최근 배춧값과 마늘, 쪽파 등의 김치 원재료의 가격이 폭등했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매년 불안정안 수급으로 인한 가격 변동성 때문에 대량 생산을 하는 식품기업에서 국산 농산물 사용하는 것은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가공식품의 지리적표시제’를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주원료로 한정하는 현행 제도에서 유럽의 PGI와 같이 생산, 가공이 어느 한 가지 공정만 해당지역에서 이뤄진 경우에도 인정하는 제도의 확대가 필요하다.

최근 가공식품 수출을 지역별로 보면 일본·중국·미국 3개국에 편중됐던 수출시장이 신남방·유럽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특히 신남방 지역은 작년 최초로 일본을 제치고 최대 수출권역으로 부상했다. 올해도 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 등에서는 1.8%의 높은 수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고, 유럽 지역 역시 라면·음료·김치 등 수요 확대로 11.1% 성장세를 지속했다.

코로나19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 김치와 인삼은 14.1%, 22.9% 증가했고, 장류도 16.5% 증가했다. 가공식품의 주력 품목인 한국산 라면은 8.6% 증가하는 고무적인 상황이다.

이러한 데이터는 향후 우리가 어느 품목에 지리적표시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지리적표시제 보호를 위해 어느 나라와 무역 통상 협약 시 관련 내용을 전략적으로 넣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FTA,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CPTT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협정 시 ‘지리적표시제’ 관련 협약을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병조 센터장
△이병조 센터장

● 이병조 샘표식품 센터장=현행 지리적표시제는 당해 지역 농수산물만을 취급하고, 가공·생산돼야만 하는 한계와 제한으로 인해 농수축산물의 식량자급 또는 지역 생산 자급률의 상황이 고려되지 않아 명성과 역사성을 보유했더라도 그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구조다.

지금은 기후변화 또는 환경규제, 지역개발 등으로 인해 원산지의 주원료 생산이 어렵거나 농산물의 생산지역이 변화할 가능성이 높아 이에 대한 다각적인 방향을 모색해야 된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지역적 특성의 우수한 또는 명성이 있는 식품을 편의와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믿고 소비할 수 있도록 범위를 확대 시켜야 한다. 지리적 표시 상품의 특수성과 가치를 소비자가 인정해 구매가 일어나고 생산자는 더욱 엄격히 품질을 관리하는 구조가 전개돼야 한다.

국내 지리적표시제는 원산지표시와의 혼동이 있고, 국산 또는 외국산 구분을 짓는 원산지표시와 달리 원산지를 해당 지역으로 국한하고 그 상품의 역사와 지리적 특성을 포함한 특성화 부분으로 한정돼 있어 향후 지리적표시 확대와 제대로 된 식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보호의 구분을 나눠 관리하고 인증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내산 원료 확보가 쉽지 않은 가공식품의 경우에는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전통적 제조방식을 현대적인 과학기술로 재해석해 과학적으로 제조됐다면 이 역시 가공식품 지리적표시제에 유럽 PGI 방식이 적용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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