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균팩을 종량제 봉투에?"…종이팩 재활용률 높이기 해법 잘못 찾은 정부
"멸균팩을 종량제 봉투에?"…종이팩 재활용률 높이기 해법 잘못 찾은 정부
  • 이재현 기자
  • 승인 2022.10.04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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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 수거함' 설치가 해답임에도 멸균팩 재활용 품목 제외…자원 낭비 불 보듯
일반팩 재활용률 늘리려 근본 대책 외면하고
L모 의원 멸균팩 알루미늄 표시 법안 발의
절반 차지하는 멸균팩 종량제 봉투 들어갈 판
환경부도 동조…자원 재활용 개정안이 개악

“멸균팩을 종량제 봉투에 버리라고요? 플라스틱을 대체할 다른 대안이 있습니까? 국회와 정부가 자원 낭비를 부추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네요.”

플라스틱 대체제로 각광받으며 전 세계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는 멸균팩을 재활용 품목에서 제외하고 함유된 알루미늄을 별도 표기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돼 논란이 되고 있다. 알루미늄박이 부착된 멸균팩이 일반 종이팩의 재활용을 왜곡한다는 이유에선데, 종이팩 분리배출 전용 수거함 설치 등 분리 체계의 대대적 개편이 아닌 종이팩 재활용률 저조의 원인을 멸균팩에게 덮어씌우려는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종이팩 재활용률 개선을 위해 멸균팩을 재활용 품목에서 제외하고 알루미늄 함유 여부를 표기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된 가운데 업계는 이를 탁상공론이라고 지적하며 반발에 나섰다.
△종이팩 재활용률 개선을 위해 멸균팩을 재활용 품목에서 제외하고 알루미늄 함유 여부를 표기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된 가운데 업계는 이를 탁상공론이라고 지적하며 반발에 나섰다.

지난 8월 L모 의원 외 10인은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며 멸균팩(알루미늄박이 부착된 종이팩) 여부 표시와 알루미늄층 함유 여부를 표시하도록 명시했다.

또 지난달 20일 환경부는 ‘포장재 재질‧구조 등급표시 기준’ 일부개정고시안을 행정예고하며 재활용이 용이한 대체 재질이 존재하는 포장재를 평가 결과 멸균팩을 표시 적용 예외 대상에서 삭제했다.

즉 알루미늄이 부착된 멸균팩 출고량이 갈수록 증가하자 종이팩 재활용률이 저조하다는 것이 국회와 정부의 주장이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 따르면 2017년 22.5%에 달하던 국내 종이팩 재활용률은 2021년 기준 약 14%로 급격히 감소했다. 시민들 대부분이 분리배출을 하지 않고 폐지에 섞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시민들이 종이팩을 폐지에 섞어 버릴까? 이유는 간단하다. 종이팩은 환경부 훈령인 ‘재활용가능자원 분리수거 지침’에 의해 별도의 종이팩 전용 수거함에 배출해야 하지만 대부분 공동주택 시설에는 종이팩 전용 수거함을 거의 미설치하고 있다.

공동주택의 재활용품은 자체 계약업체가 처리한다는 이유로 해당 지자체에서 종이팩 전용 수거함 설치 책임을 공동주택에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작 국회와 정부는 종이팩 재활용률 저조의 원인을 멸균팩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다.

플라스틱 대체 포장재로 주목받는 멸균팩은 식품을 외부 산소나 미생물, 빛, 습기를 완전히 차단해 주기 때문에 30℃ 안팎의 높은 온도에서도 내용물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어 그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실제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 따르면 2014년 1만6744톤(종이팩 출고량 중 25.3%)이던 멸균팩 출고량은 작년 전체 종이팩 출고량 중 42.9%까지 증가했으며 오는 2025년이면 멸균팩의 출고량이 전체 종이팩 51.3%를 차지하며 일반 종이팩 출고량을 앞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알루미늄이 함유된 종이팩을 멸균팩이라 정의하고 있으면서 멸균팩 여부와 알루미늄 함량까지 표시하라는 것은 이중규제”라며 “법률상 종이팩 등 포장재는 몸체에 있는 주성분을 갖고 포장재의 종류를 구분·표기하고 있고, 뚜껑이나 라벨, 빨대 등 부자재는 별도 표기하고 있다. 멸균팩 몸체에서 4~5%에 불과한 알루미늄까지 별도 표기하라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지적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갈수록 멸균팩의 출고량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재활용 수거 체계에 대한 고민이 아닌 단순 일반팩의 재활용을 위해 이러한 법안을 발의했다는 것은 시장 상황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라며 “종이팩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각 지자체에서 종이팩을 의무로 회수하고, 선별해 재활용업체로 보내 자원순환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자원의 순환적 이용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현재 멸균팩 제조업체에서 알루미늄 대체재를 구해 상업 론칭을 앞두고 있다. 업계의 이러한 노력을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자원의 순환적 이용을 도모하기 위해 법률을 개정한다는 이유가 멸균팩이 일반팩의 재활용을 왜곡한다는 것은 억지”라며 “일반팩, 멸균팩 모두 소중한 자원임을 명시해 각각의 회수와 재활용 체계를 만드는 것이 국회와 정부의 역할임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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