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세계 곡물 시장…식품 인플레이션 재발 우려
요동치는 세계 곡물 시장…식품 인플레이션 재발 우려
  • 배경호 기자
  • 승인 2023.07.31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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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밀 수확 감소에 흑해곡물협정 종료 선언 파장
러시아 식량 무기화 통해 서방 제재 완화 협상 노려
공급 불확실성 고조로 중·장기적 가격 상승 압력

미국의 기후 위기와 러시아의 식량 무기화 전략이 이어지면서 최근 국제 밀 가격이 다시 급등하는 등 세계 곡물 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원료가 상승으로 인한 식품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트라 뉴욕무역관에 따르면, 7월 19일 시카고상품거래소(CBT)의 9월물 국제 밀 선물 가격은 이날 하루에만 전일 대비 8.5% 상승한 부셸당 7.28달러에 거래됐다. 이는 작년 2월 러-우 사태 이후 일일 기준 최대 상승 폭이다.

이 상황에 대해 외신들은 트레이더들이 식량안보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2년 동안 이어진 미국 가뭄으로 밀 수확량이 크게 떨어지면서 국제 밀 가격이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는 가운데 최근 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 종료 선언과 함께 우크라이나 중요 항만시설 공격을 재개하면서 세계 식량 공급의 불확실성이 더욱 확대된 것이다.

△세계 5대 밀 수출국인 미국의 밀 생산이 고평원 지역의 가뭄으로 인해 큰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에 러시아가 식량 무기화를 본격화함에 따라 식품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곡물 재고가 크게 부족하지 않은 상황이기에 당장의 가격 상승 여파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공급 불확실성 고조로 가격 상승 압력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진=pixabay)
△세계 5대 밀 수출국인 미국의 밀 생산이 고평원 지역의 가뭄으로 인해 큰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에 러시아가 식량 무기화를 본격화함에 따라 식품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곡물 재고가 크게 부족하지 않은 상황이기에 당장의 가격 상승 여파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공급 불확실성 고조로 가격 상승 압력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진=pixabay)

● 60년 관측 이래 최악의 밀 수확

미국 고평원 지역의 가뭄으로 미국의 밀 생산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월 17일 미국의 대표적인 밀 생산지인 캔자스주가 2년 연속 이어진 가뭄으로 인해 60년 관측 이래 최악의 밀 수확량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캔자스주 겨울 밀 경작 지역의 93%가 가뭄을 겪고 있으며, 절반가량은 그 정도가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 농무부도 캔자스주에서 경작 중인 겨울 밀의 절반 이상이 하급품 혹은 그 이하이며, 수확량은 에이커당 29부셸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2021년 에이커당 52부셸이 수확된 것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에 대해 현지 농민은 “지금쯤이면 금색으로 물들며, 허리까지 키가 자라야 하는 밀이 무릎 높이에도 미치지 못해 90% 이상이 수확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또 “수십 년 동안 농사를 지어왔지만, 올해가 최악의 해”라며 “수확 예상량이 너무 적어 추수 비용이 더 많이 지출돼 수확을 포기하는 농부가 많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캔자스대학의 한 교수도 “5~6월에 있었던 집중 호우가 옥수수, 수수 등 지금부터 파종하는 작물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지만 지금이 수확 철인 겨울 밀은 어떠한 혜택도 받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작년에도 가뭄이 들었으나 토양이 머금고 있던 수분을 흡수하며 밀 경작이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올해는 그마저도 없어 식물이 전혀 성장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의 밀 수출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미 농무부의 7월 밀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밀 수출 예상량은 7억2500만 부셸로, 지난해 7억5900만 부셸보다 4% 감소했다. 이는 1971년 이후 최저치다. 특히 캔자스주의 주생산 품종인 경질 적색 겨울 밀은 1억9000만 부셸로 전년 대비 3400만 부셸 감소했다.

미국은 세계 5대 밀 수출국으로 전 세계의 빵 바구니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밀 생산량 감소, 러시아와 동유럽의 밀 과잉 수출, 높은 철도 및 운송 비용, 달러 강세 등으로 세계 밀 시장에서 미국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어 현지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유럽 밀을 수입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 러시아의 식량 무기화

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 연장 거부를 계기로 식량 무기화를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7월 17일, 러시아는 흑해곡물협정 만료를 몇 시간 앞두고 돌연 협정 종료를 선언했다. 흑해곡물협정은 러-우 사태로 중단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재개를 위해 작년 7월 체결된 협정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가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 하에 흑해 항로를 통해 양국 곡물 및 비료를 안전하게 수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체결된 이후 협정은 120일 기한으로 계속 연장해 오다 지난 5월 러시아의 요구로 기한이 60일로 축소됐으며, 7월 17일 만료 몇 시간 전 러시아가 그동안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협정 연장을 거부한 것이다.

이와 함께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거점인 흑해 연안의 항구 도시 오데사에 대한 공습을 계속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따르면, 러시아는 곡물 관련 시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러시아의 이 같은 행보에 UN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인류를 인질로 잡고 있다”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가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대비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산 곡물을 러시아가 대체할 수 있다”라며 식량 무기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외신들은 러시아의 속내가 서방 경제 제재 완화에 있기에 식량 무기화 행보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우크라이나 식량 수출을 막기 위해 흑해를 드나드는 화물선을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은, 이 지역을 기피 지역으로 만든 다음 곡물 수송량을 크게 줄여 곡물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뒤 서방과 제재 완화 협상에 나서길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현재 세계적으로 곡물 재고가 그렇게 부족하지 않기에 흑해를 통한 수출길이 막혀도 당장 식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진 않을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계속되는 작황 악화와 세계에서 가장 싼 밀을 수출할 수 있는 러시아가 이를 무기화한다면 중‧장기적으로는 가격 상승 압력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우려 속에 7월 25일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파기로 인해 곡물가가 최대 15%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는 흑해곡물협정에 당분간 복귀할 뜻이 없음을 거듭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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