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가공식품 비소 기준 설정 논란-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113)
쌀가공식품 비소 기준 설정 논란-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113)
  • 식품음료신문
  • 승인 2018.05.28 01: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중 규제로 명분 약해…검사 비용 부담도
영·유아식품 등 한정된 제품에 규격 설정을

식약처가 식품안전관리 강화의 일환으로 쌀과 톳, 모자반을 함유한 영유아용 식품 등에 무기비소 규격을 신설해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적용하는 것에 대해 식품업계, 특히 쌀가공업계의 반발이 매우 거세다. 이는 이미 작년 12월 식약처가 예고한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영유아용 조제식, 성장기용 조제식, 영유아용 곡류 조제식, 특수조제식품, 과자, 시리얼, 면류 등은 무기비소 기준 0.1mg/kg, 기타식품은 1.0mg/kg이 적용된다.

△하상도 교수
△하상도 교수

정부의 ‘무기비소(砒素) 규격 강화 시책’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실행하기 쉽지 않은 안전관리 정책이어서 소비자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판단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식품 원료인 쌀에 대한 중금속 기준(0.2mg/kg 이하)이 이미 설정돼 있음에도 쌀가공식품에 무기비소 기준(0.1, 1.0mg/kg 이하)을 신설한 것은 이중규제라고 볼 수 있다.

해당 식품의 위해성평가 결과 심각한 건강상 위해가 인정되면 이중이 아니라 삼중 규제라도 만들 수가 있지만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위해성평가 결과를 보더라도 평균섭취로 인한 국민 전체 위해도는 인체노출안전기준 대비 2.1%로 안전한 수준이다. 결국 이번 규제 신설은 위해성이 미미하고 원료 쌀의 무기비소가 이미 별도로 관리되고 있는 만큼 그 명분이 약해 보인다.

물론 취약계층인 영·유아가 주로 섭취하는 이유식 등에는 이중 규제라도 그 필요성이 인정되나 일반 쌀가공식품에 원료 쌀보다 5배나 더 높은 무기비소 기준(1.0mg/kg 이하)을 적용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본다.

일반 가공식품의 경우엔 기준치 이하의 쌀을 원료로 사용한다면 당연히 신설된 기준을 넘을 수가 없어 불필요한 기준이다. 물론 농축제품의 경우 가능할 수도 있으나 원료 쌀보다 5배나 높은 기준을 초과할 정도의 농축제품은 극단적 예외라 봐야 한다. 정책 수립 시 보편타당하지 않고 예외적인 경우를 고려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쌀 가공업체들은 대부분 영세하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까지 늘어나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당 15만 원 전후의 검사비용 부담까지 가중돼 쌀 가공업체들의 반발이 더욱 크다고 생각된다.

물론 밀가루를 주식으로 하는 미국의 경우 소비자단체들이 무기비소 등 쌀의 위험성을 자주 제기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에게는 쌀로 만든 시리얼과 파스타를 한 달에 두 번 이상 섭취하지 말 것과 공복에 쌀로 만든 시리얼을 먹이지 말라”는 구체적인 지침과 함께 제한적으로 섭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코덱스(CODEX)에서도 아직까지 쌀의 무기비소 허용기준치(0.2㎎/㎏)만을 설정하고 있을 뿐 쌀 가공품에 대한 무기비소 기준은 설정하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EU)이나 미국도 마찬가지다.

비소의 안전성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떠들썩한 것은 사실이다. 밀가루를 주식으로 하는 나라는 물론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인도, 방글라데시와 같은 저개발국의 쌀 비소오염 문제가 특히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물에서 자라는 벼가 다른 작물보다 비소를 10배나 잘 흡수하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비소는 과거 전쟁과 독살에 자주 사용되던 독성이 강한 중금속이다. 특히 무기비소는 농약 살포, 채광, 제련, 화석연료 연소, 목재 처리 등의 과정에서 땅에 스며드는데 비산 납, 비산 석회, 비산 석회분제 등이 대표적이다. 비소화합물은 장기간 노출 시 피부, 폐, 간, 신장, 방광 등에 암을 유발하며, 방부제, 살충제, 살서제(殺鼠劑) 등으로 사용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정부는 모든 쌀가공식품을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영·유아식품 등에 한정된 현실적인 쌀가공식품 무기비소 기준규격 설정을 재검토하길 바란다. 소비자들도 쌀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 쌀을 안전한 완전 식으로 맹신해 왔을 것인데, 쌀도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모두 갖고 있는 여러 음식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어떤 식품도 안전성에 관한 한 100%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란다.

중앙대학교 식품공학부 교수(식품안전성)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