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의 주범 설탕 아닌데…‘설탕세’ 도입 반발
비만의 주범 설탕 아닌데…‘설탕세’ 도입 반발
  • 이재현 기자
  • 승인 2021.03.29 0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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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분의 칼로리가 지방으로 쌓인 것…비만 1위 중국 1인당 설탕 소비 세계 절반 수준
세제 개편, 설탕 값 상승 속 소비자 가격에 영향
업계 저당 노력 불구 세금 부당…인공감미료 조장
선진국 실패 사례 참고를…캠페인·계몽이 효과적
식품산업협회 의견 수렴 발의한 의원실에 제출

국회의 ‘설탕세’ 도입 방안이 식품업계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국민 건강을 위한 조치라고는 하지만 특정 산업 군에 부담금을 매기는 것은 타 산업 군과 비교해 형평성에 어긋나며, 설탕이 함유된 식품을 죄악시하는 사회 풍토 조성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사례에서도 설탕세 도입이 비만 등을 예방하는 정책 효과가 크게 없음에도 가격을 올릴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지속적인 설탕 원당 가격 상승에 따른 악재 상황 속에서 이 같은 조치는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라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달부터 실수요 대리점이 국내 제당 3사에게 납품받는 설탕값이 kg당 50원가량 인상됐다. 이런 상황에서 가공식품에 설탕세까지 부과할 경우 소비자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며 “현대의 소비자들은 스스로 당의 많고 적음을 선택해 스마트 소비를 하고 있다. 시장의 논리는 소비자 선택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최근 원자재와 인건비 상승으로 가격을 올린 상황에서 일괄적으로 세제 개편이 마련되면 소비자 가격에도 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고려하기에는 부담스럽다”면서 “이럴 경우 결국 정부가 설탕을 대체하기 위한 인공감미료의 무분별한 사용을 조장하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업계는 선진국들의 실패 사례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탕세 도입이 (비만 예방에) 궁극적인 해결은 아니라는 것.

가장 먼저 설탕세를 도입한 덴마크는 식품 가격의 상승과 식품업체의 폐업이 이어지자 도입 1년 만에 폐지했고, 핀란드도 업계의 반발로 설탕세 일부가 폐지되는 등 유럽 내에서도 찬반이 분분한 상태다. 미국도 도입을 추진했던 뉴욕 등이 서민 증세라는 비난 속에 실패로 돌아가 현재는 몇 개 주에서만 도입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식품업계는 이미 당분을 줄이거나 아예 없앤 무당·저당 제품을 출시하며 나름대로 당 저감을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업계의 이러한 노력은 외면한 채 특정 산업 군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은 코로나19로 부족한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불순한 의도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비만’의 주범을 설탕으로 단정 지은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하상도 중앙대 교수는 “비만은 몸에서 에너지로 쓰고 남은 여분의 칼로리가 지방의 형태로 몸에 축적된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이 여분의 칼로리는 설탕의 당 성분만 아니라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 등 모든 영양분에 의해 만들어진다. 비만의 주범은 엄밀히 말해 설탕이 아니라 초과 섭취된 칼로리, 그리고 적은 칼로리 소비량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실제 중국은 전 세계 비만 1위 국가이지만 국민 1인당 설탕 소비량은 전 세계 평균(24kg) 절반 수준인 2016년 기준 11kg에 불과하다. 중국의 높은 비만 문제는 설탕 때문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양의 식사, 기름진 음식, 생활습관 등 다양한 요인들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문백년 식품기술사는 “설탕세 부과가 당류 섭취율과 비만율 감소의 해결책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과일도 당 함량이 높은 것들이 많다. 정책적으로 효과를 내기 쉬운 가공식품에만 세금을 부과해 해결하려다 보면 일시적인 감소 효과가 나타날 수 있겠지만 이로 인해 저소득층의 생활비 부담만 가중될 수 있다는 점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비만 예방을 위해선 국민 스스로가 생활 속에서 당 섭취를 줄이도록 유도하는 캠페인이나 계몽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상도 교수는 “당 섭취량을 줄이자는 취지에는 공감하나 당 자체를 나쁜 성분으로 규정짓고 가공식품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가공식품의 당 줄이기가 단기적으로는 비만 예방 정책의 성과를 가져다주겠지만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비만의 원인, 모든 식품의 당 함량, 당의 주요 섭취원 등을 소비자에게 정확히 알리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제과협회 한 관계자는 “설탕세 도입에 실패한 뉴욕시는 식품 조달법을 제정해 지역 식재료와 친환경 먹거리 구입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라며 “설탕세 등과 같은 정책보다는 건강한 먹을거리를 정부가 제공하고, 경고 문구 등 캠페인성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게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식품산업 협회는 회원사 의견을 수렴하고, 설탕세 부과가 비만 등을 예방하는 정책 효과가 크지 않다는 글로벌 사례 등을 취합해 해당 법안을 입법 발의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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